[오늘과내일] 한.중관계사를 통해본 명분과 실리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내일] 한.중관계사를 통해본 명분과 실리

김덕균 중국산동사범대학 한국학연구소장

  • 승인 2026-01-11 16:35
  • 신문게재 2026-01-12 19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김덕균균
김덕균 소장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서로 통하지 아니하니..." 한글 창제의 목적을 설명한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이다. 여기서 중국을 두고 엉뚱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선시대 중국은 명나라였기 때문에 이때 중국이란 표현은 국가 의미가 아니라 '나라 안에서(國中)'란 뜻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일부는 중국 대륙이 고대 한국의 영토였다는 엉뚱한 주장으로 다음 말을 이어간다. 역사에 참으로 무지한 사람들이고 그로인한 국가적 불이익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중국을 국가의 의미로 사용한 용례는 조선왕조실록 곳곳에 나온다. 시경, 서경, 춘추는 물론 각종 사서에서 중국을 중원, 중심, 천자의 나라로 표현한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중화사상에 입각한 중국이란 표현이었기 때문에 사이(四夷), 이적(夷狄)과 대비됐다. 특히 춘추에서는 "오랑캐(夷狄)가 중국을 다스리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족(漢族) 중심의 선민의식과 문화민족의 강한 자부심이 묻어난다.

그만큼 당대 중국은 강력했고 문화적 자존심도 대단했다. 이런 중국을 대하는 주변국들의 생존방법도 제각기 달랐다. 그런데 존망에 따른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힘으로 대항한 나라들의 말로는 대개 망하거나 중국에 동화됐고, 약함을 인정하고 관계를 평화롭게 설정한 나라들은 독립된 국가로 존립했다는 점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맹자가 제시한 사대(事大), 사소(事小)에 있다. 비록 수직적 질서이기는 하나 상호 사대, 사소로 대하며 싸움대신 평화를 선택한 나라는 조선이 대표적이고, 이를 무시하고 철저히 무력을 사용하다 멸망한 나라는 흉노와 말갈 등 서북쪽의 여러 소수민족이고, 몽고와 만주는 중원을 정복했지만 중국에 동화됐다. 이렇듯 사대는 당시 약소국의 평화적 생존방법이었고, 그로 인한 부담(조공)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선진문물을 접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사대 사소의 명분 속에 경제적 실리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조공무역이란 말도 나왔다. 사대에 따른 조공은 명분이고 강대국의 사소는 생존과 경제적 이득으로 돌아온 것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명분보다 실리를 선택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지는 해인 원나라와의 사대명분을 지키다가 떠오르는 명나라에 등져서 좋을 게 없다는 실리 선택이다. 사대명분으로 중국과 다른 글자 만드는 작업을 집요하게 반대했던 관료신하들의 의견을 물리치고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판단도 백성들의 실익을 먼저 고려한 선택이었다. 조선후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경우도 명분과 실리가 함께 작용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조선의 생존을 위협하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는 군대를 보내 조선을 도왔다. 사대 사소관계에 따른 원조라는 명분이 따랐지만, 이면에는 자국보호라는 실리가 작용했다. 당시 일본의 궁극적 목적은 대륙정복에 있었고, 이를 간파한 명나라가 군대를 파견한 것은 그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라를 구한 조선은 명에 대한 사대의 예를 강화했지만, 중원의 주역은 청나라로 바뀌고 있었다. 조선은 명에 대한 사대의 명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결국 병자호란을 자초했고, 또 한 번의 치욕을 당했다. 실리보다 명분만 추구하다 벌어진 굴욕사건이다. 비슷한 잘못은 구한말 또 일어났다. 존화양이(尊華攘夷)의 명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쇄국으로 일관하다 결국 자생적 근대화라는 실익을 놓친 일이다.

예나지금이나 국가 간의 관계는 명분과 실익이 늘 따라다닌다. 그런데 명분만 있고 실익이 없다면 명분은 오래가지 못한다. 복잡하고 냉혹한 국제관계 속에서 명분보다 실익이 중심이 되고 있음은 최근 미국의 패권행보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미들파워 반열에 있는 한국의 외교적 선택이 실리에 있어야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외교의 필수가 실리임은 이미 오래전 얘기다. 이웃한 중국과의 관계 속에 근거 없는 허황된 이야기나 잘못된 역사인식이 얼마나 큰 불이익이 되는지를 심각하게 돌아보며 국가적 실익을 생각할 때이다.



/김덕균 중국산동사범대학 한국학연구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해수부 산하 공공기관 이전...실효적 대책 절실
  2. 슬럼화 우려 문화동 국방부 부지… 정부 기조 변화에 개발 전환점 맞나
  3. 충남대·국립공주대 통합 본격 논의… 5월 통합신청서 제출 예정
  4. 대전시, 먹거리 안전 확보 위한 수사 협력체계 강화
  5. BK21 우수 참여인력 37명 장관상… 충남대 송준엽·권오훈 씨 등 선정
  1. 통합특별법 제동에 대전교육감 진보단일화 어떻게?… 3월 초 전원회의서 최종 결정
  2. '공원 수목 종합 관리체계 개선'정책간담회
  3. 이공계 박사도 임금 양극화… 출신 따라 연 3천만원 격차
  4. 한수정, 세종시 숲의 숨결 찾기...25일 전시회 개막
  5. 세종시 보건환경연, 환경과학 체험 프로그램 성료

헤드라인 뉴스


TK까지 올라탄 행정통합 열차…대전·충남만 골든타임 놓치나

TK까지 올라탄 행정통합 열차…대전·충남만 골든타임 놓치나

광주전남에 이어 대구경북(TK)도 행정통합 열차에 탑승한 가운데 대전 충남만 통합 무산이라는 결과를 받아들고 지역 백년대계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타 지역 정치권은 꽉 막힌 행정통합 정국 속에도 활로를 찾으며 미래 성장 시계를 다시 돌리는 반면, 충청 여야는 자기 주장만 되풀이하면서 시간만 허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발전 동력 창출을 위한 입법 경쟁에서 뒤처진 무능함을 노출한 것인데 특별법 처리를 위한 마지노선인 2월 국회 마지막 주말 초당적 결단이 나올지 주목된다.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2월 국회 회..

대화와 타협 사라진 정치, 여의도에 다시 등장한 ‘운정 김종필’
대화와 타협 사라진 정치, 여의도에 다시 등장한 ‘운정 김종필’

김종필기념사업재단과 백제개발문화연구원을 통합한 ‘김종필문화재단’이 26일 공식 출범하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극에 달한 정치권을 향해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강조했다. 2025년 통합한 재단은 이날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통합 후 처음으로 공식 행사인 ‘김종필문화재단 새출발, 재도약 다짐 오찬’을 열고 정식 출범을 알렸다. 행사에는 조부영 재단 이사장과 김희용·나경원 부이사장, 추재엽 사무총장을 비롯해 96세인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상과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국회의원 등 JP를 기억하는..

분양 성수기 본격 `개막`…3월 충청권 분양 6631세대 공급
분양 성수기 본격 '개막'…3월 충청권 분양 6631세대 공급

분양 성수기인 봄을 맞아 전국 아파트 분양 시장이 활기를 띨 전망이다. 당장 다음 달 충청권에서는 6600여 세대가 신규 공급이 예정돼 실수요자들의 관심이 쏠린다. 26일 부동산R114에 따르면 3월 충청권 아파트 분양 예정 물량은 충남 4853세대, 충북 1351세대, 대전 427세대 등 총 6631세대다. 세종은 예정된 분양이 없다. 충청권 주요 공급 단지를 보면 충남에서는 '천안 아이파크시티 5단지' 882세대, '천안 아이파크시티 6단지' 1066세대, '천안 업성2구역(계룡)' 1267세대, '아산탕정자이 메트로시티(A3)..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태극기를 게양합시다’ ‘태극기를 게양합시다’

  • 파크골프 인기에 파크골프장 주변 불법주정차 극성 파크골프 인기에 파크골프장 주변 불법주정차 극성

  • 특이민원 대응 모의훈련 특이민원 대응 모의훈련

  • 장 담그기 가장 좋은 시기 장 담그기 가장 좋은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