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 不(아니 불) 事(일 사/ 섬길 사, 정치하다) 二(두 이) 君(임금 군/ 주권자)
출처 : 司馬遷(사마천)의 史記(사기) 田單列傳(전단열전)
비유 : 충성(忠誠)스러운 신하(臣下), 또는 환경, 상황, 등 여건이 어려워도 오직 자기가 종사하는 직장이나 상관을 위해 위기(危機)를 함께하는 의리(義理) 있는 행동
파행(跛行)을 거듭하고, 말도 많았던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人事聽聞會)가 끝났다.
한마디로 지저분한 인사청문으로 모두가 떫은 감을 씹은 개운치 못한 심정이다.
여당, 야당, 국민,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임명되면 안 된다는 표정들이다.
결국은 임명권자의 임명철회라는 한발 양보에 따라 국민들의 차가운 감정을 추스렸다고는하나. 임명권자는 국민들로부터 인사분야의 신뢰성(信賴性)에 대한 불신(不信)을 면할 수 없고, 후보자 본인의 입지(立地)는 말할 수 없이 추락(墜落)한 상태이다. 그는 이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겠는가? 거기다가 남아 있는 부정의 의혹은 또 어찌 감당할 것인가!
후보자는 애시당초 부정의 의혹보다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는 도덕적 철학을 내팽개친 행위를 지탄받았지만 결국 부정 의혹까지 짊어지는 참으로 힘겨운 삶이 되었다.
불사이군(不事二君)은 중국에서 발생 된 고사성어로서,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충신(忠臣)의 상징처럼 쓰이던 말이다. 이 말과 관련된 고사(故事)로는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왕촉(王燭)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연(燕)나라의 장수 악의(樂毅)가 제(齊)나라를 정벌하였을 때, 제나라의 화읍(畵邑)에 왕촉(王燭)이라는 현자(賢者)가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악의(樂毅)는 왕촉(王燭)에게 항복을 유도하기 위해 그가 거처하는 화읍(畵邑) 주변의 30리 안으로는 진군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왕촉(王燭)에게 사람을 보내어 연(燕)나라에 귀순하여 장수가 되면 1만 가구를 봉하겠노라고 제안하였다. 왕촉(王燭)이 거절하자 연나라 악의(樂毅)장군은 왕촉(王燭)이 말을 듣지 않으면 화읍(華邑) 사람들을 모두 학살하겠다고 협박까지 하였다.
그러자 왕촉(王燭)은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정숙한 여인은 지아비를 두 번 바꾸지 않는 법이다(忠臣不事二君, 貞女不更二夫/충신불사이군 정녀불갱이부). 나라가 이미 망(亡)하였는데, 내가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지금 또 군대로써 위협하여 장수가 되라고 하는데, 이는 폭군(暴君) 걸왕(桀王)을 돕는 일이나 마찬가지이다. 살아서 의(義)로움이 없을 바에는 차라리 삶겨져 죽는 것이 낫다."라고 답하고는, 스스로 나무에 목을 매 자결하여 죽음으로 충의(忠義)와 선비의 도덕성을 지켜 후세까지 두 임금을 섬기지 않은 만고(萬古)의 충신(忠臣)으로 길이 남게 되었다.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에 이어진 정녀불갱이부(貞女不更二夫)는 열녀불갱이부(烈女不更二夫)와 같은 뜻이다. 이는 흔히 한 문장처럼 같이 쓰이는데, 여기에는 전제군주(專制君主) 시대에 신하의 충성(忠誠)을 강조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의 복종과 수절을 미덕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다.
불사이군(不事二君)과 불갱이부(不更二夫)의 정신은 선비들과 정녀(貞女)들의 절대적인 정신사상의 깊은 근본이요 도덕적 가치를 넘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덕목(德目)이 되었다.
고려말의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조선 개국초기 때 두문동(杜門洞)의 72명의 의인(義人), 태종의 스승인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을 비롯한 고려의 충신들은 물론 조선 초기 계유정란(癸酉靖亂)으로 왕이 된 세조(世祖)를 왕으로 인정치 않고 목숨을 바친 사육신(死六臣)과, 은거(隱居)로 일생을 마친 생육신(生六臣)의 충의(忠義)를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잘 알고 있다.
이ㅇㅇ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부귀(富貴)보다 충의(忠義)를 더 숭상했던 선조들의 정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또 임명이 철회된 현재 상황에서 본인의 처지는 얼마의 후회로 세월을 감당할 것인가, 궁금해진다. 그처럼 당당하던 모습이 가련(可憐)하기 까지하다. 차라리 처음부터 거절했더라면 혹 대장부다운 여성 정치인이 되었을 수도 있었는데….
불사이군(不事二君)은 정치권 사람들에게만 제외된 단어인 것 같다. 자기 유리한 입장으로 이리저리 옮기며 권력의 달콤한 것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철새라는 별명이 항상 그들을 따라다니겠는가!
자기 군주(君主)를 배반한 정치인이 한둘이 아니지만 요즈음 들어 더 난무(亂舞)하는 듯하여 더욱 씁쓸하다.
"권력이 좋기는 좋은가보다."
장상현/전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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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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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