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다문화]납팔죽에 담긴 고향의 겨울과 새해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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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다문화]납팔죽에 담긴 고향의 겨울과 새해의 소망

  • 승인 2026-02-04 08:55
  • 신문게재 2026-02-05 9면
  • 황미란 기자황미란 기자
차인순
차인순 명예기자 제공
설을 앞두고 있으면 집집마다 명절 준비로 분주해진다. 떡국 재료를 챙기고, 가족의 건강과 한 해의 평안을 기원하는 마음은 한국 설이 지닌 가장 큰 의미다. 이런 풍경 속에서 중국에서 자라온 필자에게는 자연스럽게 납팔절(腊八节)이 떠오른다.

납팔절은 음력 12월 8일로, 설(춘절)을 앞두고 가장 먼저 찾아오는 중국의 겨울 명절이다. 한국에서 동지가 설의 시작을 알리는 계절의 문턱이라면, 중국에서는 납팔절이 "이제 곧 새해가 온다"는 신호처럼 여겨진다.

납팔절의 가장 큰 상징은 납팔죽(腊八粥)이다. 찹쌀과 팥, 대추, 밤, 콩, 땅콩 등 여러 곡물과 견과류를 넣어 오랜 시간 끓인 이 죽에는 풍년과 건강, 액운을 막고 새해를 잘 맞이하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 "재료가 많을수록 복도 많다"는 말처럼, 한 그릇의 죽에는 가족의 소망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는 설날 떡국 한 그릇에 새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한국의 풍습과도 닮아 있다.

납팔절은 불교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기 전, 고행으로 지쳐 쓰러졌을 때 한 여인이 올린 죽으로 기운을 차렸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이로 인해 납팔절은 단순한 명절을 넘어, '새 출발과 다짐'을 상징하는 날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에도 중국에서는 학교와 직장, 이웃 간에 납팔죽을 나누며 따뜻한 인사를 건넨다. 설을 앞두고 마음을 가다듬고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한국 설을 준비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설을 앞둔 지금, 납팔절과 한국 설은 서로 다른 문화 속에 있지만 모두 한 해를 무사히 보내고 다가올 새해를 잘 맞이하고 싶다는 같은 마음에서 비롯된 명절이다. 상차림은 달라도 그 안에 담긴 바람만큼은 닮아 있다.

다가오는 설, 떡국 한 그릇과 함께 각자의 방식으로 새해의 평안과 건강을 기원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필자 역시 납팔절을 맞아 납팔죽을 끓였다. 죽을 저으며 지금의 삶을 돌아보고, 무사히 한 해를 건너게 해 달라는 작은 다짐과 바람을 마음속에 담아 보았다. 이 한 그릇의 온기가 나만의 기억에 머무르지 않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의 새해 길목에도 닿기를 바란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같은 마음으로, 평안과 건강, 그리고 소소한 기쁨이 이어지는 한 해가 되기를 조용히 기원해 본다.

차인순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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