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이별이 가르쳐준 삶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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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이별이 가르쳐준 삶의 태도

홍인숙 대전웰다잉연구소 소장

  • 승인 2026-02-09 10:27
  • 신문게재 2026-02-10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홍인숙 대전웰다잉연구소장1
홍인숙 대전웰다잉연구소 소장
갑작스러운 이별은 삶의 속도를 단번에 늦추게 한다. 연초에 친자매처럼 가깝게 지내던 육촌 동생의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떴다는 부음을 받고 나는 한동안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그날 소식을 듣자마자 내달려 의정부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마주한 동생의 텅빈 얼굴은 내 마음을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게 했다. 이제 겨우 오십에 들어선 건강하던 남편과 밤사이 이별이라니 그 충격을 어떻게 가늠이나 하겠는가. 그저 손을 마주 잡고 등만 쓸어내려 줄 뿐, 함께 우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얼마 전까지도 안부를 주고받던 사람이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형언할 수 없는 공백으로 남았다. 누구나 한번은 맞이하는 게 죽음이라지만 살아있는 우리에게는 언제나 타자성으로 느껴지는 낯선 두려움이다. 슬픔은 시간이 지나며 모습을 바꾸겠지만, 그날 이후 내 마음 한편에는 삶은 생각보다 훨씬 덧없고 그저 한순간이라는 서글픈 감정에 휩싸이고 말았다. 슬프다는 말로는 다 담지 못할 아픔이었다.



무너질 것만 같은 세계는 야속하게도 어느새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쳐갔다. 다시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게 남은 사람의 몫이지만, 마치 삶의 바닥이 날 것으로 드러난 듯 익숙하던 풍경이 낯설게 다가올 때마다 울컥해진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사물을 보면서도 시간은 이전보다 훨씬 무심하게 흘러가는 느낌이 든다. 그 사이 동생은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 걸까. 이 무거운 부재의 시간을, 마치 너무나 가벼워서 먼지처럼 사라진 존재의 무력감을 말이다. 오래전에 "생때같은 자식을 앞세우고도 내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네요"라며 호곡하던 한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날 장례식장에서 동생과 아쉽게 헤어져 나오면서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해 "언니가 너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하며 안아주는데 "언니 그 말을 왜 이제야 해. 진작 좀 하지"라며 공허하게 웃던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늘 시간이 남아있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때 잘 할 걸, 그때 했을 걸 하는 후회는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해야 할 말과 건네야 할 마음을 다음으로 미루며, 삶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은 그런 확신을 한순간 무너뜨리고 말았다.



삶은 결코 예고된 순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또렷이 각인되었다. 그 순간 죽음은 끝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 하나의 문장이 되어 다가왔다. 그 질문은 곧 삶을 대하는 태도로 이어졌다. 잘 죽는다는 말보다 먼저, 잘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히 자리 잡았다. 삶을 바라보는 눈금이 조금 달라졌다. 오늘을 함부로 지나치지 않는 것, 웰다잉은 그렇게 말보다 먼저 감각으로 다가왔다.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이라면? 하는 묵직한 화두 앞에 멈춰 설 때가 종종 있다. 사소한 선택 앞에서도 조금 더 신중해지려는 태도 속에서 웰다잉은 삶의 한 부분으로 스며들었다. 그것은 마지막을 향한 준비가 아니라, 지금, 이 시간을 더 진실하게 살아가려는 다짐에 가까웠다. 바쁘다는 이유로 건너뛰던 안부 한마디, 언젠가 하겠다고 미뤄두었던 표현들, 스스로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삶은 여전히 분주하지만 말과 행동은 이전보다 조금 더 조심스러워짐을 느낀다. 그렇듯 삶은 큰 결심이 아니라 매일의 태도 속에서 조용히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웰다잉은 특별한 준비가 아니라 오늘을 대하는 행동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더 한층 받아들인다. 혼자 된 동생도 사춘기 아들과 함께 누구보다도 의연하게 삶을 디뎌가겠지. 딸부잣집 네 자매 중 막내인 육촌 동생, '란'아! 우리 더 많이 이야기하고 마음을 나누며 살자꾸나. 미루지 않은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일, 어쩌면 그것이 남겨진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애도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아픈 이별은 잠시 침묵 속에 멈추었지만, 그로 인해 삶은 비로소 제 속도를 되찾아 가고 있었다. /홍인숙 대전웰다잉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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