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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김성욱 기자 |
나쁜 줄 알면서도 사이버 불링에 방관자로 머물고, 정직한 노력 대신 AI의 힘을 빌려 과제를 채우는 유혹에 쉽게 굴복한다.
이제 우리 교육은 '무엇을 아느냐'를 넘어, 도덕적 해이와 자극적인 중독을 뿌리치고 스스로를 지켜내는 '이기는 정신'에 주목해야 한다.
현대 사회는 아이들에게 독이 돼 유혹하는 것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문제는 아이들이 이를 몰라서 당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숏폼 콘텐츠가 뇌를 자극에만 반응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인지해 행동하려 해도, 즉각적인 쾌락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단톡방의 언어폭력이 인격을 깎아먹는 행위임을 알면서도 또래 문화에서 배제될까 두려워 비겁한 동조자가 돼버린다.
이는 개개인이 스스로를 통제하고 분별해낼 내면의 정신력이 약해졌음을 방증한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의 괴리가 깊어질수록, 지식은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박제된 정보에 불과해진다.
선(善)이 무엇인지 알고도 행하지 않는다면, 그 지식은 오히려 삶의 모순을 증명하는 도구가 될 뿐이다.
우리는 흔히 수만 가지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이 교육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정작 삶을 움직이는 것은 화려한 수사나 방대한 정보가 아니다.
타인을 가르치기 위해 스스로 깊이 고뇌하고 얻어낸 단 다섯 마디의 진실한 깨달음이, 뜻도 모른 채 읊는 일만 마디의 말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결코 말로만 전달되지 않는다. 가르치는 자가 스스로를 먼저 가르치며 살아낼 때, 비로소 그 언어에 생명력이 깃든다. 남은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가르치지 못하는 모순된 태도는 교육의 권위를 무너뜨린다.
지배하고 군림하는 자세가 아니라, 스스로 삶의 본(本)이 돼 묵묵히 앞장서는 뒷모습만이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자녀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은 교육의 주체인 우리 모두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부모와 교사가 먼저 유혹을 이겨내고 가치 있는 것을 행하는 삶의 본을 보일 때, 아이들은 비로소 '이기는 법'을 체득한다.
이제 교육 공동체는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단순히 지식의 양을 늘리는 교육이 아니라, 유혹 앞에서 당당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르쳐야 한다.
교육은 머리를 채우는 과정이 아니라, 가슴을 단단하게 만들어 삶을 지켜내는 방패를 쥐여주는 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세상의 거센 유혹 속에서도 당당히 자신을 지켜낼 수 있도록, 이제 '앎'을 '승리'로 바꾸는 실천적 인성 교육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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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