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김효중 고창농업정책과 농촌인력 팀장.(사진=고창군 제공) |
외국인 계절 근로자 제도가 참 빠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2019년 3천여 명이던 계절 근로자가 올해는 1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이제 농촌에서 외국인 계절 근로자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농업인력이 되었습니다. 농촌 마을에 가면 "노인 반, 외국인 반"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그만큼 우리 농촌의 현실이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많아진 만큼 현장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도 함께 늘어나고 있습니다.
임금은 제대로 지급되고 있는지, 근로시간은 지켜지고 있는지, 숙소는 괜찮은지, 폭 염 속에서 무리하게 일하고 있지는 않은지, 농가와 근로자 사이에 갈등은 없는지, 혹시 누군가 중간에서 부당하게 돈을 받고 있지는 않은지….
현장에서 계절 근로자 업무를 하다 보면 하루에도 여러 가지 일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은 서류만으로는 알기 어렵습니다.
농가에 직접 가보고, 근로자를 만나보고, 전화를 받아 이야기를 들어보고, 필요하면 늦은 시간이라도 현장에 나가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저 역시 이 일을 하면서 자주 느낍니다.
결국 사람의 문제는 사람을 만나야 풀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최근 중앙정부에서는 급격하게 늘어난 계절 근로자 제도를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법무부는 중앙 전문기관을 운영하고, 광역지자체에도 전문기관을 지정해 수요조정, 고용주 교육, 현장점검, 인권침해 대응 등을 담당하도록 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다만 현장에서 이 제도를 직접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한 가지 걱정이 있습니다.
"전문기관을 만든다고 해서 현장의 문제가 정말 해결될 수 있을까?"
현장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어제까지 아무 문제가 없던 농가에서 오늘 갑자기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근로자 한 사람의 작은 불편이 농가와의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출입국 문제나 인권 문제로까지 커지기도 합니다.
전화 한 통으로 해결되는 일도 있지만, 직접 찾아가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눠야 풀리는 일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문기관을 만드는 것 자체보다 중앙정부, 광역지자체, 기초지자체, 전문기관이 현장에서 어떻게 역할을 나눌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기관이 지방정부의 역할을 대신하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중앙정부는 제도와 기준을 만들고 필요한 전문성을 지원하고, 광역지자체는 시·군의 수요를 조정하고 광역적인 교육과 지원을 담당하며, 기초지자체는 농가와 근로자를 직접 만나 현장을 책임지는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전문기관은 지방정부를 대신하는 기관이 아니라, 통역·노무·교육·상담 등 행정이 부족한 전문성을 보완하는 든든한 파트너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한때는 외국에서 일했습니다.
어려웠던 시절, 우리 부모님 세대는 독일로 가 광부와 간호사로 일했고, 중동의 뜨거운 건설현장으로 떠났습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서 가족을 위해 땀 흘려 일했습니다.
그분들이 낯선 땅에서 느꼈을 두려움과 외로움, 그리고 가족을 위해 더 나은 삶을 만들어보겠다는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농촌을 찾아오는 계절 근로자들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가족을 위해,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낯선 나라에 온 사람들입니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를 보면 사람에게는 먹고사는 문제와 안전뿐만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합니다.
계절 근로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왔지만 안전하게 일하고 싶고,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고, 아프면 도움을 받고 싶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존중받고 싶을 것입니다.
결국 사람답게 일하고 사람답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국적이 다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중앙정부에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계절 근로자 수를 늘리는 정책만큼이나, 늘어난 사람을 어떻게 관리하고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도 함께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지자체의 관리능력을 평가해 근로자 배정 규모를 결정하겠다면 그에 맞는 인력과 예산, 권한도 함께 주어야 합니다.
전문기관을 지정하라고 한다면 단순히 "전문기관을 지정하라"는 지침만 내려보낼 것이 아니라,
누가 맡을 것인지,
어떤 인력으로 운영할 것인지,
예산은 누가 부담할 것인지,
현장에서 어떤 권한을 가지고 움직일 것인지까지 함께 설계해 주셨으면 합니다.
최근 지방정부 국장급 간담회에서도 여러 광역지자체가 전문기관 확보와 인력·예산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야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농협은 새로운 업무 부담을 걱정하고, 대학이나 민간기관은 전문기관 지정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기관이 마땅히 없는데 기관을 지정하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현장이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좋은 취지의 제도라면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가 사람과 예산, 제도적 기반까지 함께 마련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기초지자체의 역할도 믿어주셨으면 합니다.
현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곳은 결국 기초지자체입니다.
농가의 사정도 알고, 근로자의 상황도 알고, 어느 지역에서 어떤 문제가 반복되는지도 압니다.
물론 모든 일을 행정이 직접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통역도 필요하고, 노무도 필요하고, 교육과 상담에도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이런 부분은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현장의 최종적인 책임과 판단까지 외부에 맡겨버린다면 오히려 대응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계절 근로자 제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지금은 더욱 그렇습니다.
행정이 현장을 직접 관리하면서 문제를 축적하고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그리고 제도가 안정된 이후 전문성이 필요한 부분부터 전문기관과 역할을 나누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인 계절 근로자는 숫자가 아닙니다.
3,000명, 10만 명이라는 숫자 뒤에는 각각 한 사람의 삶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습니다.
농민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해 농사를 좌우할 만큼 절박한 마음으로 근로자를 기다리는 농가가 있습니다.
농민에게는 소중한 일손이고, 근로자에게는 소중한 일자리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한쪽만 보호해서도 안 됩니다.
농민도 보호하고, 근로자도 보호하고, 지역사회도 함께 지킬 수 있는 제도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계절 근로자 정책이 이제는 단순히 '사람을 데려오는 정책'에서 '사람을 제대로 관리하고 함께 살아가는 정책'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중앙정부가 큰 틀과 기준을 만들고, 광역지자체가 지역을 조정하고 지원하고, 기초지자체가 현장에서 책임 있게 일할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전문기관은 그 과정에서 지방정부가 더 잘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보태주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책임만 지방에 내려보내지 말고, 그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권한과 사람과 예산도 함께 내려주십시오.
좋은 제도는 책상 위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농가의 논밭에서, 근로자의 숙소에서, 그리고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저는 오늘도 현장에서 그 답을 찾고 있습니다.
부디 현장의 목소리가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 꼭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농촌을 지키는 일이면서, 낯선 땅에서 우리 농촌을 찾아온 사람들을 제대로 대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효중 고창농업정책과 농촌인력 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전경열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