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감]노인과 아이들이 행복한 나라

  • 오피니언
  • 미디어의 눈

[중도시감]노인과 아이들이 행복한 나라

고미선 편집부장

  • 승인 2014-07-31 14:14
  • 신문게재 2014-08-01 17면
  • 고미선 편집부장고미선 편집부장
▲고미선 편집부장
▲고미선 편집부장
통통거리는 뱃길을 따라 갈매기가 바다의 물살을 갈랐다.

30년전 어느 봄날, 이름모를 항구에서 오륙도 유람선에 올랐던 소녀는 높은 파도가 두려워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동쪽에서 보면 여섯 봉우리가 되고 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가 된다는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버지는 나지막하게 노래를 부른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목메어 불러 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모서리가 너덜너덜해진 사진처럼, 가슴을 물들이는 그날의 짭짤한 바다내음. 딸 아이가 그때의 내 나이가 되고 아버지의 뒷모습이 한없이 작아보이는 오늘, 추억은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가 돼버렸다.

아버지의 존재가 가정의 중심이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시대의 수많은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아내와 자식을 위해 일생을 일해야만 했고 책임감과 삶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 현실은 어떠한가. 가정의 위계질서와 권위가 사라져 가는 사회, 그렇게 당당하던 아버지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가신 것일까.

대전과 충남지역에서 신고된 노인학대가 매년 300여건에 이르고, 학대는 주로 가족에 의해 이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5년 전 행정상 사망자가 된 70대 노인이 대전에서 노숙인으로 발견됐으나, 그의 가족은 아버지를 부양할 의사가 없다며 '행정상 사망처리'조차 바로잡기를 거부해 가족의 품에 돌아가지 못한다는 본보 보도는 이유와 사정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다. '상감님도 늙은이 대접은 한다'는 속담이 있다. 노인을 공경하는 곳이야말로 살 만한 곳이다. 인간은 누구나 노인이 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또 하나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눈물 콧물 쏙 빠지게 야단을 맞던 날. '난 다리밑에서 주워온게 틀림없어. 언젠가는 친 부모가 찾아올거야'라고 위안을 삼았더랬다. 장롱위에 가지런히 놓인 회초리는 '사랑의 매'라는 포장하에 체벌을 객관화했던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회초리는 손이나 발로 아이들을 때리는 것을 막아 주며 감정이 실리지 않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러한 행동은 아이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때려서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르치겠다는 그릇된 교육방식이며 부모에 대한 반발심과 상처를 안겨줄 수 있다. 때리는 사람은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맞는 아이들은 학대일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아동학대의 주체는 친부모가 80%가 넘는다는 통계를 보며 배우 김혜자씨가 전세계 고통받는 아이들을 돌본 뒤 펴낸 책 제목이 생각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우리 주변 등잔 밑 어딘가에서는 지금도 제2의 '울산 서현이 사건'과 '경북 칠곡 계모 사건'과 같은 끔찍한 아동학대가 자행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오는 9월 29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아동학대로 떠들썩 했던 1년 전 분위기가 무색하게도 특례법은 '반쪽' 위기에 처했다. 처벌 강화규정 외에 사후관리 조치 내용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6개월째 묵묵부답이다.

노인학대 예방사업은 더 멀고도 험난하다. 매년 3500건씩 발생하는 노인학대 피해자를 학대 행위자로부터 격리시킬 법적 조항조차 없다는 주장이 쏟아지지만 대응책은 미흡하다. 아동특례법 수준으로 노인복지법을 강화해 재발방지를 위한 교육과 프로그램 마련하고 가해자가 이를 의무적으로 이수하게 만들어야한다는 지적또한 미래가 불투명한 아동특례법과 함께 제자리걸음이다.

우리 사회의 폭력과 학대의 문제는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마음의 문제다. 마음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며 특히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맞고 자란 아이들이 모두 부모들을 때린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분명하다. 아들과 딸에 의한 노인학대에 화를 내기에 앞서 그 아이들이 왜 그렇게 됐을지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 봄직한 이유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중수청, 세종 임시 개청 후 옛 대전세무서 부지로 이전 추진
  2. 칠곡 왜관철교, 주민들 쉼터 역할
  3. 당진시, 청주국제공항 직통 고속버스 신규 운행… 대중교통 이용 편의 대폭 향상
  4. [르포] 선풍기도 없는 40.2도 정산부스… 폭염 속 공영주차장 근로자
  5. 돌아오는 온통대전…자치구 지역화폐와 연계·통합 가능할까
  1. 음주운전 사고 후 경찰관까지 폭행한 60대… 차량 압수
  2. "서산 한우 관광 메카 만든다", 서산 운산 농어촌관광휴양단지 조성 본격 시동
  3. 대덕특구 공동관리아파트 R&D 맞춤형 심사 대상될까…예타 폐지 새기회
  4. 충남 당진 드론공원, 국토부 지정 공원 선정
  5. 금감원·검찰 사칭… 전국 돌며 1억5400만원 수거한 보이스피싱 수거책 검거

헤드라인 뉴스


정부 `산업용 전기료 차등`에 대전 산업계 `촉각`

정부 '산업용 전기료 차등'에 대전 산업계 '촉각'

정부가 산업용 전기요금을 지역별로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대전지역 산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차등 적용의 주요 기준 가운데 전력자립도가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최근 열린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지역별 전력수급 여건을 반영한 산업용 전기요금 차등제를 올 하반기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전국을 4개 권역으로 나눠 전력자립도와 송전비용, 국가균형발전 등을 고려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는 이달 중 공청회를 거쳐 권역 구분과 요금 차등 폭을 확정할 예정이다..

李 `육사 군사쿠데타 강력 성토`… 통합사관학교 강력 추진 지시
李 '육사 군사쿠데타 강력 성토'… 통합사관학교 강력 추진 지시

이재명 대통령은 5일 "군사 쿠데타를 무려 세 번이나 한 중심이 육사인데도 한 번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며 대전 유성구 자운대에 신속하고 강력한 '국군사관학교' 창설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방부와 외교부, 통일부, 국가보훈부 업무보고에서 "지금까지 대한민국 군사 쿠데타가 몇 번 있었나. 다 육군에서 벌어진 일 아닌가.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한 일인데, 거기에 대해 책임을 물은 일이 있나"라며 통합사관학교 반대를 주도하는 육사를 성토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과 관련해 논의하던..

현금만 쓰고, 옷까지 버린 보이스피싱범 안잡힐 줄 알았지? (영상)
현금만 쓰고, 옷까지 버린 보이스피싱범 안잡힐 줄 알았지? (영상)

현금만 쓰고 금융감독원과 검찰을 사칭해 어르신들의 현금을 훔쳐 달아난 20대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대전서부경찰서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 특별법 위반 혐의로 20대 여성 A씨를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습다. A씨는 지난 5월 대전 서구의 한 주택가 우편함에서 70대 피해자가 넣은 현금 1,000만 원을 수거하는 등 전국을 돌며 총 7회에 걸쳐 약 1억 5,400만 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A씨는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교통카드를 수시로 교체하고, 모텔에서 1박씩 투숙하며 옷을 바꿔 입는 등 치밀하게 이동했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충청권 식수원을 보호하라’…대청호 녹조 제거하는 방제선 ‘충청권 식수원을 보호하라’…대청호 녹조 제거하는 방제선

  • ‘전문 간호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전문 간호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 폭염에 도로 위 피어오른 ‘아지랑이’ 폭염에 도로 위 피어오른 ‘아지랑이’

  • ‘폭염에도 일을 쉴 수 없어요’ ‘폭염에도 일을 쉴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