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옥가실의 아름다운 가을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기고]옥가실의 아름다운 가을

김천환 (재)농어촌환경기술연구소 고문

  • 승인 2014-10-19 13:03
  • 신문게재 2014-10-20 16면
  • 김천환 (재)농어촌환경기술연구소 고문김천환 (재)농어촌환경기술연구소 고문
▲김천환 (재)농어촌환경기술연구소 고문
▲김천환 (재)농어촌환경기술연구소 고문
칠갑산 끝자락 부여군 은산면에 옥가실(玉佳室)이란 마을이 있다. 풍광이 뛰어나지는 않아도 옥구슬 같이 아름답다는 이름값을 확실히 하는 마을이다. 땅이 기름지고 물(지하수)도 많고 깨끗하다. 아름답고 유연한 지형지세 때문인지 마을사람들은 온순하고 부지런하며 인정이 많다. 마을회관마당에 100년은 넘어 보이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2그루가 형제처럼 서있는데 마을의 상징이며 오고가는 사람들의 휴식처요 사랑방이다. 나는 밤나무가 100여 그루 있는 시골집을 몇 년 전에 옥가실에서 구했다.

이른 아침 새와 벌레들의 노래 소리가 시작되면 동녘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해가 붉다 못해 누렇게 이글거리며 희망찬 옥가실의 아침을 열어준다. 생동감 넘치는 환상의 해돋이와 함께하는 옥가실은 축복이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지천(之川, 금강의 지류)에서 아침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망월산과 꾀꼬리봉을 바다위의 섬처럼 만들면서 강물 따라 금강 쪽으로 서 있는 듯 천천히 흘러간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동양화 같다.

하루에 한번 아침 8시 반에 버스가 마을회관까지 들어온다. 이 버스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아들집, 딸집에 직접 가지고 가거나 택배로 부치러 가는 짐들이 바리바리 많다. 올해 수확한 참깨도 있고, 고추도 있고, 묵직한 밤 자루와 콩도 있다. 시골의 부모들은 가을에 자식들에게 주려고 텃밭에 이런저런 농사를 짓는단다. 허리가 아프고 무릎관절로 농사일이 힘들지만 자식들을 위한 본능이고 보람이기 때문에 즐겁고 행복할 뿐이란다. 인정이 넘치고 순박한 삶의 모습이다.

마을주변 산에는 모두 밤나무가 심어져 있어 농가의 대부분이 밤농사를 짓고 있다. 밤농사는 일반적으로 해마다 가지치기를 해주고 두 번 정도의 거름을 준다. 병충해예방을 위하여 항공방제를 하지만 필요하면 농가에서 추가방재도 한다. 추석 전후에 밤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한 달 정도 밤 수확을 한다.

밤 수확은 다른 과수와 다르게 알밤이나 밤송이가 떨어지면 줍기만 하면 되지만 밤 줍기는 밤농사의 마지막 작업이면서 클라이맥스다. 밤은 크고 무거워야 값이 나가고 변질되거나 벌레 먹은 밤은 값을 못 받기 때문에 떨어진 밤을 빨리 주어서 수매(收買)해야 한다. 하지만 밤 줍기에 일손이 모자라 마을에 사는 남녀노소 모두가 밤 줍기에 나서야하고 인근 지역이나 도시에서 일꾼을 조달하기도 한다. 마을에서 일꾼을 구할 수도 없지만 우리 밤 밭은 규모가 작아서 일꾼을 사서 밤 줍기를 할 정도가 안 되어 나와 아내가 직접 수확을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한 해 동안 땀 흘려 얻는 수확의 기쁨은 체험에서만 느낄 수 있다. 아마추어농사꾼도 익숙하지 않은 육체노동이라 몸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살아 있는 자연 속에서 땀 흘리며 일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흐뭇한 성취감도 느낀다. 가을 내내 옥가실 사람들의 얼굴이 밝고 활기찬 모습은 풍성한 수확의 기쁨으로 행복하기 때문일 것이다. 해 뜰 무렵 밤을 줍다가 숲속에서 이름도 모르는 새가 노래를 한다.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처럼 지저귀는 노래 소리가 신비롭게 아름답고 상쾌하다.

노래의 소절(?)마다 소리의 강약이나 높낮이가 서로 다른 3개의 소절로 된 노래를 한다. 그리고 같은 노래를 3~4회 반복한다. 세 소절로 된 유행가를 세 네 번 반복해서 부르는 것 같았다.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서 운다는데 아침 먹으러 가자고 짝을 부르는 언어 같다는 생각도 되지만 지친 내 몸에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옥가실의 가을이 깊어지면 마을회관 마당에 있는 느티나무꼭대기부터 짙은 녹색잎사귀가 노란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느티나무단풍은 점점 나무 아래로 내려오면서 노란느티나무로 바뀌어 간다. 설악산 단풍이 산꼭대기에서부터 물들기 시작하여 산 아래로 내려오듯 말이다. 노란단풍이 가장 낮은 가지의 잎사귀까지 내려올 무렵 느티나무 꼭대기의 노란 단풍잎은 갈색으로 변하고 갈색 잎이 나무 아래로 조금씩 내려오면서 풍성했던 옥가실의 가을은 쌀쌀한 겨울바람에 밀려 막을 내린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동구, 동심으로 물든 하루 '2025 어린이날 큰잔치'
  2. K리그1 1·2위 맞대결…대전하나시티즌vs전북현대 승자는?
  3. 6연승의 한화이글스, 리그 선두 도약까지 이제 한 걸음
  4. 천안시, '안심보안캠 설치 지원' 1인 가구 청년 지원자 모집
  5. 대전시 올해 첫 모내기, 유성구 교촌동에서 시작
  1. 천안시복지재단, 제2회 어린이 나눔 공모전
  2.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건설현장 체불임금 9억원 전액 청산
  3. 천안시 서북구, 상반기 지방세 미환급금 일제 정리 기간 운영
  4. 천안희망쉼터, 부처님오신날 맞아 '희망한줌, 연꽃한송이'나눔 행사 펼쳐
  5. 국힘 세종시당, '이재명 대선 후보' 사퇴 촉구

헤드라인 뉴스


대통령실·국회 세종시 완전이전 대선 화약고 부상하나

대통령실·국회 세종시 완전이전 대선 화약고 부상하나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 이슈가 20여 일 앞으로 다가온 6·3 대선 최대승부처인 금강벨트 민심향배를 판가름할 화약고가 될 전망이다. 각 후보마다 장밋빛 공약으로 충청에 구애하고 있지만, 각론에서 견해차가 큰 데다 워낙 휘발성이 큰 사안으로 본선 과정에서 충돌을 배제할 순 없기 때문이다. 국가균형발전 백년대계이자 560만 충청인의 염원인 이 사안이 또다시 정쟁의 소용돌이로 휘말릴 우려가 크다. 지금까지 윤곽을 드러낸 대진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김문수, 무소속 한덕수,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격돌이 점쳐진다. 김문수 후보와..

국힘 중앙선대위 출범…충청권 인사 빠졌다
국힘 중앙선대위 출범…충청권 인사 빠졌다

국민의힘이 제21대 대통령 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를 공식 출범한 가운데 주요 보직에서 충청권 인사가 제외되면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본격적인 본선레이스 돌입을 앞두고 충청권 핵심현안을 대선 공약에 반영해야 할 시점에서 중앙선대위에서 지역의 목소리가 뒷전으로 밀리는 것 아니냐는 걱정 때문이다. 6일 국힘에 따르면 전날 오후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비상대책위원회 회의 후 브리핑을 통해 중앙선대위 및 시도당선대위 구성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김문수 후보가 지난 3일 당내 경선에서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지 이틀 만이다. 중앙선대위 주요 인선에는..

[사상 초유 대대대행 체제] 지역 경제계 컨트롤 타워 부재 우려감
[사상 초유 대대대행 체제] 지역 경제계 컨트롤 타워 부재 우려감

사상 초유의 '대통령 권한 대대대행 체제'에 돌입하면서, 지역 경제계에서 컨트롤 타워 부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가 잇따라 사퇴하면서 2일 0시부터 국무위원 서열 4위인 이주호 사회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이어받게 됐다. 이에 따라 당장 미국의 통상압박을 어떻게 풀어나갈지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어떻게 관리할지가 이주호 대행의 중대한 과제가 됐다. 다행인 점은 이주호 권한대행의 과거 주요 이력이다. 이 대행은 서울대에서 무역학 학사·경제학 석사를,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한화이글스 공동 1위…야구장은 매진 행렬 한화이글스 공동 1위…야구장은 매진 행렬

  • 제21대 대선 선거인명부 작성 제21대 대선 선거인명부 작성

  • 물총 싸움으로 연휴 즐기는 시민들 물총 싸움으로 연휴 즐기는 시민들

  • 산책과 물멍으로도 힐링이 되는 ‘명상정원’ 산책과 물멍으로도 힐링이 되는 ‘명상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