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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장섭 전 건교부 장관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최측근이면서 복심으로 불린다.
19대 대선에서 충청대망론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크다. |
“충청권 소외·홀대론 치유 위해 보다 강력한 지역개발·발전옵션 필요”
“이제 양반의 탈을 벗어던지고 갓끈도 풀어 제칠 때가 됐다”
오장섭 전 건설교통부 장관(70)은 아직도 젊다. 14,15,16대 의원을 거친 충청권의 대표적 정치인이다. 얼마 전까지 충청향우회 총재로 ‘충청대망론’ 실현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공주 출신인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마지막으로 충청 대선 주자는 19대 대선에서 모두 사라졌다.
오 전 장관에게 충청 정치의 현주소를 물어봤다.
-인사,예산 등 역대정부에서 ‘충청권 홀대론’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원인은 무엇으로 보시는지요?
▲지방자치제가 시행 된 지 벌써 사반세기가 지났습니다.
지방 분권화의 기본적인 제도나 기틀은 어느 정도 잡혔다고 봅니다. 큰 틀에서 볼 때, 국가운영이 중앙집권적 형태를 크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현실이 그렇다 보니 인적 물적 등 한정된 자원의 적정한 분배문제가 늘 논란을 낳게 됩니다.
국가균형발전, 지역균형발전 등 갖가지 논의기구를 대통령직속에 두고 고민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 그럼에도, 실상은 어디 그렇습니까. 철저한 권력 다툼과 지역 논리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이 정치세계라고 봅니다. 더구나 막대한 권한이 집중된 대통령 중심제 아래 어느 지역에서 대통령을 배출하느냐 하는 것은 초미의 관심일 수밖에 없지요.
이 같은 냉엄한 정치현실 속에서 충청권은 늘 ‘아웃 사이더’로 빠져 있던 것입니다. 더구나 전략적이거나 쟁취를 위한 결속력, 결집력도 떨어진다는 게 우리 스스로 느끼고 자책하는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충청권이 경주해야 할 대목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솔직히 말씀드려 제 개인적으로는 충청인과 정치세계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알량한 양반정신, 선비의식 때문이지요. 지난 몇 해 700만 출향충청인 조직인 충청향우회를 이끌면서 느낀 바입니다.
충무공 이순신을 비롯해 김좌진, 윤봉길, 유관순 등 수많은 애국열사의 고장, 국난극복의 매 순간 우리 충청인 빠진 때가 없잖습니까. 좋은 의미에서 ‘멸사봉공(滅私奉公)’ 즉, 큰 뜻을 위해 나를 불살을 줄 아는 우리 충청인 고유의 아름답고 전통적인 미풍양속이며 자손만대 길이 가꾸어 가야 할 고귀한 덕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한 경쟁시대, 영악함과 영민함이 오히려 돋보이는 요즘 시대에 이런 덕목들이 다소 시대에 동떨어진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아닌가 서글픈 생각도 듭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 분연히 일어설 줄 아는 충청인이 필요하고, 평안한 시기에는 충청인이 홀대받는 이중적인 모순구조에 놓여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충청인으로서는 매우 억울한 현실이기도 하지요.
이젠 적극성이나 치열함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체면이나 체통을 따지는 여유 있는 시절도 아니지 않습니까. ‘충청도 홀대론’, ‘무대접을 넘어 푸대접이다’하며 뒤에서 불평만 하면서 개선할 생각은 않습니다. 이제 양반의 탈을 벗어던지고 갓끈도 풀어 제칠 때가 됐습니다.
-고향을 떠난 인사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옳은 말씀입니다. 가까이에선 보이지 않던 것도 멀리 떨어져 보면 보이는 것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특히 충청인으로서 갖는 한계, 이를테면 충청인의 성향이나 지역적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뭉치자!’ ‘목소리를 내자’ 하는 식의 막연한 방식만으로는 안됩니다.
교통 통신의 발달로 재향과 출향의 의미가 다소 퇴색됐다고는 하지만, 발전적인 논리와 기능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향토에서 생산되는 지역특산품이나 농산물 직거래 장터와 같은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요. 지역발전과 연계될 수 있는 일들을 이제 생활 주변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고향발전에 관한 관심은 물론, 상호협조와 신뢰관계를 쌓아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실제로 출향 충청인사회 저변으로 갈수록 동향인끼리 서로 우애가 매우 돈독합니다.
문제는 이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가야 할 리더그룹에서 정작 상부상조가 안 되는 것을 왕왕 볼 수 있습니다. 항상 그 자리, 그 위치에 머물 것 같은 착시현상이죠. 남의 이목을 지나칠 정도로 살피다 보니 밀어주고 끌어주는 미덕이 약합니다. 합당한 범위 내에서 매사에 적극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어요. 이젠 이런 부분을 서로 지적하고 투정하십시다.
-충청정치 발전을 위한 시대정신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죠.
▲사실 충청인은 매우 온유하고 순박한 정서를 가지고 있지요. 남을 먼저 공격할 줄 모르고, 얻어맞아도 보복할 줄도 모르는 것이 충청인들의 보편적인 정서입니다. 그동안 정치적인 면에서 다소 지역성을 드러냈다면 겨우 상대성이지 절대성은 아니었습니다.
동서대립, 다시 말해 영·호남 그들만의 지루한 지역 간 대결구조, 철벽같은 이들의 지역패권주의 틈새에서 스스로 살아남고자 자구책으로 마련됐던 것이 ‘신민주공화당’, ‘자유민주연합’ 등의 이름 아래 우리 지역 정치결사체가 생겨났던 것입니다. ‘지역정당’이라고 손가락질 했지만, 우리나라 정당구조가 지역당 아닌 곳이 어디 있습니까. 그땐 그나마 ‘충청’이란 존재감이라도 있었다고 봅니다.
대의정치, 의회정치의 근본정신이 뭡니까. 제가 집권당 원내 부총무, 사무총장, 국무위원 등 두루 거쳐봤지만, 기존 정치권이 국가와 지역사회의 이해관계를 잘 따져 처신해 주어야만 합니다. 정치는 대민봉사이지 직업이 절대 아닙니다.
지역을 다녀보면, 충청권을 대변할 정치 결사체를 갈구하는 목소리가 유독 높은 게 사실입니다.
특정 정파를 떠나 한동안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안희정 충남지사에 대한 대망론으로 지역적인 기대감이 팽배했습니다.
그 높았던 지역민들의 기대감이 꺼지면서 실의와 실망이 깊다는 반증이겠지요. 벌써 여러 차례 대권 문턱에서 주저앉은 충청 지역 인사들이 많아 더욱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그 많던 지역인사들이 대권 문턱을 넘지 못한 이유를 깊이 있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영남이나, 호남과 같은 절대 지지 기반 세력이 있었더라면 아까운 우리 지역 대권도전 인재들이 그렇게 명멸해가거나, 쉽게 물러날 리가 없지 않았겠어요. 충청인 스스로도 반성할 부분이 많습니다.
지역주의가 사라졌다지만 실질적으로 들여다보면 더욱 뿌리 깊게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대권구도 역시 엄밀히 말해 영호남구도입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양자 간에 호남권을 등에 업으면 다될 것처럼 치열한 구애경쟁을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더구나 이들을 포함한 유력후보 전원이 영남분들이 아닙니까. 왜 우린 인재를 길러내지 못합니까.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충청대망론이 이번 대선에서도 어렵게 됐는데, 그래도 충청권이 대선에서 반드시 얻어 내야 하는 점은 무엇인지요?
▲충청 정치의 진수는 ‘중부권역할론’으로 요약됩니다. 달팽이 뿔 위에서 다투듯이 ‘와각지쟁(蝸角之爭)’ 하는 지역 간의 대결과 불균형을 완충하고 완화할 수 있고, 불편부당함이 없는 국가균형발전을 통해 세계화를 넘어 초일류국가 건설을 이끌 국가적 양심세력이 바로 충청인입니다.
국난 극복의 산증인들이 우리 지역 조상님들 아닙니까. 미래 시대로 나가기 위한 시대적 사명감도 그 연장선이라 생각하고,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우리 스스로 힘을 길러야만 합니다.
흔한 말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고 따집니다. 다선의원을 만들면 뭐하냐, 지역의 이해 도모에 무엇을 얼마만큼 노력했느냐는 등을 논할 때 솔직히 자신 있게 소개할 만한 정치인이 보이질 않습니다. 다선의원들의 역량이 모자라는 것인지, 노력이 저조한 것인지 지역민들의 성원과 기대만큼 기량을 발휘하는 정치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만큼 지역사회발전에 끼치는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말들이 많습니다.
이렇다 보니, 요즘 충청권 향토기업 가운데 기업다운 기업이 뭐가 있습니까. 기껏해야 계룡건설 정도가 힘겹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분입니다. DJP 공동정부 시절을 일례로 봅시다. 건설뿐만 아니라 IT 분야에서도 호남기반의 그 지역 향토기업들이 우후죽순 자라나 지금까지 그 지역의 맏아들, 맏며느리 역할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에 비해 최근 충청지역을 되돌아보면 기업다운 기업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내놓을 만한 향토기업이 무수히 사라져 갔습니다. 고작 해야 계룡건설, 금성백조 등 향토기업으로 겨우 건설업계의 명맥을 이어갈 뿐이지요.
생각해 보자. 왜 충청 지역에는 굴지의 기업 및 경제 여건이 조성 안 되고 기업 유치가 안 되는지를.
충청의 ‘우물 안 개구리 격인 민심’, 정치적인 지도자를 이끌어 내는 못하는 단순한 이유이다. 바로 현시대에 유발 효과를 일으킬 동력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충청지역 내 그나마 충북 오송, 오창 등지에서 첨단의료와 IT산업단지가 조성됐기에 망정이지, 70년대 중반 조성된 우리나라 과학기술산업단지의 매카라 외치던 대전권 상황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경제과학기술산업의 매카라기에는 현주소는 매우 초라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현장을 보자. 세종시 개발에 막대한 투자비가 유입되고, 기업들이 참여했는데 참여 기업의 생태를 파악해 보면 90% 이상이 외지 기업이고 향토기업은 10%에 불과하다. 영호남 같으면 이런 분위기를 이해하고 넘어갔겠는가? 이것이 충청의 현실이다.
-대북관계를 비롯해 안보문제가 대선정국의 중대 변수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 최근 나도는 ‘한반도 4월 위기설’을 되돌아 볼 때 기막힐 일입니다. 국가와 국민의 명운을 좌우할 중대 안보 사안을 놓고 미국, 중국, 일본 등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은 일촉즉발의 초긴장상태에 돌입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정작 우리 문제이고,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우리 스스로는 나그네처럼 뒷짐만 짓고 있지 않습니까.
여야 정치권은 물론 대통령을 하겠다는 대선 주자조차 오직 자기 영리에만 몰두해있으니 개탄할 일입니다. 국민 스스로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 나라가 오늘날이 있기까지 어떻게 이룩된 나라입니까. 국가관, 나라를 지키려는 호국관이 누구보다 투철한 충청인이 총궐기할 때라고 봅니다.
진정한 정치지도자라면 새로운 미래, ‘시대의 리더’로서 많은 고민과 번민이 있어야 할 절박한 시기입니다. 국가안위문제는 물론이고, 장기적인 경제 침체, 청년 실업, 인구 감소, 노령화 사회 진입, 사회복지 불안 등 복합적인 난제가 한꺼번에 몰려 있습니다. 민생고의 무거운 등짐을 지고 가파른 고개를 넘어야 하는 어려운 이 시기에 서민들이 손등으로 땀방울을 훔쳐 내며 떠올릴 수 있는 진정한 정치 지도자가 더 많이 나타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대담 오주영 편집부국장(정치부장), 정리=강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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