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자기실현과 예술

  • 오피니언
  • 세상보기

[세상보기] 자기실현과 예술

장수익 한남대 문과대학장

  • 승인 2018-10-11 08:54
  • 원영미 기자원영미 기자
장수익
장수익 학장
아기는 흔히 그림이나 동요로 예술을 접한다. 더 자라면 동네의 음악이나 미술 학원에 간다. 좀 지난 후 부모가 학원 선생님에게 은근하게 묻는다. "우리 애, 잘해요?" 그러나 아이가 뛰어나기를 기대한 이 질문은 예기치 않은 사태를 만든다.

부모의 기대대로 학원은 아이가 잘하게끔 채근한다. 빨리 선을 바로 긋게 하려 두꺼운 연습장을 채우게 하고, 체르니 단계로 빨리 들어가게 피아노를 실수 없이 치는 숙제를 낸다. 그러나 연습 과정은 지루하고 피곤하며, 아이는 잘 견뎌낼 수 없다. 어느 날 아이는 학원에 있을 시간에 놀이터에서 발견된다. 예술이라면 넌더리가 난 채로 말이다.



예술은 본디 즐기는 것이다. 즐김이란 좋아함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예술 교육에서 남들보다 잘하는 것은 비본질적인 문제가 된다. 오히려 좋아할 때 힘든 것도 참을 수 있고 더 잘하기 위해 애를 쓸 수 있다.

이는 예술에 대한 공식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하나 먼저 전제할 것은 그것이 모든 이를 예술가로 만드는 교육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공식 교육에서는 아이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바탕을 주는 것이 목표가 된다. 그렇다면 예술은 인간다운 삶의 바탕을 어떻게 줄 수 있을까. 그 답은 예술이 아이들에게 자기실현의 경험을 준다는 데 있다.



자기실현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 의의를 스스로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어설프더라도 애써 만든 그림이나 시를 볼 때의 뿌듯한 성취감은 자기실현의 본보기이다. 남들의 평가와 관계없이 스스로 무언가 만드는 힘을 발견한 것인데, 이 힘을 키워가는 경험을 주는 것이 예술 교육인 것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자. 바쁘고 각박한 삶에서 우리는 자신의 존재 의의를 잘 발견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남들보다 잘산다는 것이나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것으로 존재 의의를 발견할 뿐이다. 그러나 이처럼 타인과의 비교를 통한 존재 의의의 발견은 덧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현대처럼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경쟁에서 처진 다수에게 타인과의 비교는 존재 의의의 발견은커녕 자괴감만 낳기 일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은 자기실현을 경험하는 좋은 통로가 된다. 창작이든 감상이든 예술은 스스로 자신의 삶과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돈도 권력도 안 되는 예술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교육의 숱한 문제점 가운데 중요도에도 불구하고 별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이 예술교육의 문제이다. 교육의 모든 체제가 타인과의 비교에 근거를 둔 서열화를 지향하다 보니 정작 인간다운 삶의 바탕을 주는 예술교육은 주변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상급 학년에서는 아예 안 가르치는 과목이 예술 과목인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최근 교육부에서 입시제도를 비롯한 개혁 방안이 논의되었지만 인간다운 삶은 논외인 채 공정 경쟁만 화두가 되었고, 결국 예술교육은 제대로 논해지지 못했다. 그러나 교육이란 잘하게 하는 것만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하게 하는 것도 포함된다는 것을 모두가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바꾸어 묻기로 하자. "우리 애, 좋아해요?"라고 말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양주시, 옥정물류창고 2부지 사업 취소·용도변경 양해각서 체결
  2. [월요논단]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허와 실
  3. 코레일, 환경·동반성장·책임 강조한 새 ESG 비전 발표
  4. 국가철도공단 전 임원 억대 뇌물사건에 검찰·피고인 쌍방항소
  5. "2026년 달라지는 대전생활 찾아보세요"
  1. 성착취 피해 호소 대전 아동청소년 크게 늘어…"기관간 협력체계 절실"
  2. 29일부터 대입 정시 모집…응시생 늘고 불수능에 경쟁 치열 예상
  3. '티라노사우루스 발견 120주년' 지질자원연 지질박물관 특별전
  4. 세밑 주말 만끽하는 시민들
  5. KAIST 비싼 데이터센터 GPU 대신 내 PC·모바일 GPU로 AI 서비스 '스펙엣지' 기술 개발

헤드라인 뉴스


이장우 대전시장 "형식적 특별시는 시민동의 얻기 어려워"

이장우 대전시장 "형식적 특별시는 시민동의 얻기 어려워"

이장우 대전시장은 29일 대전·충남 행정통합과 관련 '형식이 아닌 실질적 특별시 완성'을 강조했다. 이 시장은 이날 주재한 대전시 주간업무회의에서 대전·충남 행정통합(특별시) 관련 핵심 특례 확보에 행정 역량을 집중할 것을 지시했다. 조직권·예산권·세수권 등 실질적 특례가 반드시 법안에 반영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시장은 "대전·충남 행정통합은 법안이 가장 중요하다"며"형식적 특별시로는 시민 동의를 얻기 어렵다"면서 충청권이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는 획기적인 지방정부 모델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를 위해 각..

대전·충남 행정통합, 세종시엔?… "기회이자 호재"
대전·충남 행정통합, 세종시엔?… "기회이자 호재"

대전·충남 행정 통합 흐름은 세종특별자치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지역 정치권과 공직사회도 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대응안 마련을 준비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선 강준현 세종시당위원장(을구 국회의원)이 29일 포문을 열었다. 그는 이날 "대전·충남 행정통합은 세종이 충청 메가시티의 중심축으로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자 호재"라고 말했다. 최근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며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통합시장 배출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가운데, 일각서 제기되고 있는 '행정수도 상징성 약화' 우려와는 상반된 입장이다...

대전 중소기업 16.3% "새해 경영환경 악화될 것"… 비관론 > 낙관론 `2배 격차`
대전 중소기업 16.3% "새해 경영환경 악화될 것"… 비관론 > 낙관론 '2배 격차'

새해 경영환경에 대한 대전지역 중소기업들의 비관론이 낙관론보다 두 배가량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중앙회 대전세종지역본부(본부장 박상언)는 29일 이 같은 내용의 '2026년 대전지역 중소기업 경영환경 전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전지역 중소기업 306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75.2%가 내년 경영환경이 '올해와 비슷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더 악화될 것'이라는 응답은 16.3%로, '나아질 것'이라고 답한 기업(8.5%)보다 두 배가량 많아 내년 경영 여건에 대한 불안 심리가 확산되고 있는..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서북부의 새로운 관문 ‘유성복합터미널 준공’ 대전 서북부의 새로운 관문 ‘유성복합터미널 준공’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세밑 주말 만끽하는 시민들 세밑 주말 만끽하는 시민들

  •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