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도베르만의 우울

  • 오피니언
  • 프리즘

[프리즘] 도베르만의 우울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승인 2019-04-16 08:42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임숙빈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TV 속 비쩍 마른 개가 휴일 오후 이리저리 채널을 눌러보던 손을 멈추게 하였다. 여러 해 전에 방영되었던 프로그램을 다시 방송하는 듯했는데 내용인즉 먹어도 먹어도 자꾸만 말라가는 개에 관한 것이었다.

딱히 애완동물에 관심이 없는 필자이지만 등줄기를 따라 마디마디가 불거지고 군데군데 원형탈모증(?)까지 있는 개의 모습은 무슨 일인가 싶은 궁금함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주인공 개가 도베르만 종이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윤기가 흐르는 어두운 색깔의 짧은 털에 귀를 쫑긋 세운 채 경찰이나 군인들과 함께 수색에 참여하는 날렵한 모습의 도베르만은 강인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날 화면 속의 개는 수색은커녕 제 한 몸 추스르기도 힘에 부치는 듯 늘어져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가 걱정을 하며 특별식을 만들어주자 엄청 잘 먹고 많이 먹었다. 그렇게 먹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마르니까 방송에 나왔나보다. 병원에서도 특별한 병은 없다 하고, 아주머니의 걱정이 깊어지는 동안 전에 키우던 아주머니의 아들이 오자 도베르만은 비척거리면서도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웃의 민원 때문에 단독주택인 어머니의 집에 맡겨두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 수의사도 심리적인 것 같다고 하자 전에 살던 아파트로 도베르만을 다시 데려가니 살이 오르고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도베르만은 우울에 빠져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방송이 끝나고 검색을 해보니 이 개의 특성은 정이 많고 한 주인만을 섬기는 종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게다가 출연 당시 한 살이었으니까 평균 수명이 12-3년이라고 할 때 체격이야 어떻든 아직 어린 강아지라고 하겠고, 운동을 좋아하는데 집에서만 지내는 것도 견디기 어려웠을 수 있다. 살던 곳과 주인을 떠난 상실감이,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자꾸 먹어대는 반응으로, 그러면서도 제대로 살찌지도 못하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 아니겠는가.



도베르만의 우울을 보다 보니 수업시간에 못내 신경 쓰이던 얼굴이 떠오른다. 분명히 출석해서 강의실에 앉아있지만, 몸만 와 있는 듯한 느낌으로 아침부터 지쳐 보이고 표정의 변화도 별로 없는 채 수업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 전날 피곤한 일이 있었나 생각되기도 하지만 번번이 반복되는 이런 모습은 걱정을 불러일으킨다. 전공 교과목들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학년이 되자 대부분의 학생들이 힘들고 고단해하면서도 수업에 집중하는 태도는 부쩍 좋아졌기에 그렇지 못한 경우 더 눈에 띈다. 잘 지내라고 격려도 한 차례 했던 것 같은데 그 것조차 너무 가볍지 않았나 싶다.

살아가면서 때로 기쁘고 때로 울적한 날들이야 누구나 경험하는 상황이지만 그 우울감이 일시적이 아니고 계속된다면, 그리고 자기 나름 벗어나려고 애를 써 봐도 잘 안되고 무력감이나 허망함에 빠져 괴롭다면 혹시 질병 수준이 아닌지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대학생들의 우울은 만만치 않은 건강 이슈이다. 이미 보도를 통해 알려졌듯이 대학의 건강센터나 상담실을 찾는 학생들의 많은 수가 이런 문제들로 온다.

학교라는 데를 다니기 시작한 이래 끊임없이 공부압박 속에서 살았지만 자기결정능력은 턱없이 부족하고, 부모 권유에 밀리고 취업 조건에 밀린 채 들어와 마주하는 전공은 자기 것이 아닌 것 같은 상태에서 교우관계라도 삐끗하면 밀려드는 스트레스에 우울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질병 수준의 우울인 경우 원인이야 어떠하던 몹시 힘들다는 점이다. 혼자 힘으로 이겨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교수로서도 학생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전문가에게 의뢰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바라노니 우울이 깊어지기 전에 도움을 청하는 용기를 내달라는 것이다. 서로를 살필 수 있을 때, 서로를 거들 수 있을 때 돕도록. 벚꽃잎이 흩날리는 화사한 봄날, 도베르만의 우울이 마음 한 자리를 차지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월요논단]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 이번에는 대전이다
  2. 김동연 경기지사, 반도체특화단지 ‘안성 동신일반산단’ 방문
  3. 대전 갑천변 수놓은 화려한 불꽃과 드론쇼(영상포함)
  4. 갑천습지 보호지역서 57만㎥ 모래 준설계획…환경단체 "금강청 부동의하라"
  5. [2025 보문산 걷기대회] 보문산에서 만난 늦가을, '2025 보문산 행복숲 둘레산길 걷기대회' 성황
  1. '교육부→복지부' 이관, 국립대병원 교수들 반발 왜?
  2. 12·3 계엄 1년 … K-민주주의 지킨 지방자치
  3. 쿠팡 개인정보 유출 2차 피해 주의보… 과기정통부 "스미싱·피싱 주의 필요"
  4. [기고] '우리 시대 관계와 소통'에 대한 생각
  5. [인터뷰] 이동진 건양사이버대 총장 "책임교육 통해 학생들의 나침반·든든한 동반자 될 것"

헤드라인 뉴스


내포 농생명 클러스터 ‘그린바이오산업 육성지구’ 지정

내포 농생명 클러스터 ‘그린바이오산업 육성지구’ 지정

내포 농생명 융·복합산업 클러스터가 농림축산식품부의 '그린바이오산업 육성지구'에 1일 자로 최종 지정·고시됐다. 충남도에 따르면 이번 지정은 농식품부가 그린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해 추진한 것으로, 전국 11개 시도가 신청했고 최종 7곳이 선정됐다. 육성지구로 지정되면 국비 기반 공모사업 참여 자격과 기업 지원사업 가점 부여, 지자체 부지 활용 특례 등의 혜택을 받는다. 위치는 예산군 삽교읍 삽교리·상성리 일원 내포 농생명 융·복합산업 클러스터 부지로 지정 면적은 134만 2976㎡(40만 평) 규모이며, 오는 2030년 2028년까지..

`안전 지식왕`은 바로 나… 지난해 이어 2연패 퀴즈왕에 이목집중
'안전 지식왕'은 바로 나… 지난해 이어 2연패 퀴즈왕에 이목집중

충남 안전골든벨 왕중왕전을 향한 마지막 지역 예선전인 '2025 논산 어린이 안전골든벨'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논산 퀴즈왕은 지난해에 이어 2연패를 달성한 학생이 차지하면서 참가학생과 학부모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논산시와 중도일보가 주최하고 논산계룡교육지원청, 논산경찰서·소방서가 후원한 '2025 논산 어린이 안전골든벨'이 27일 논산 동성초 강당에서 개최됐다. 본격적인 퀴즈 대결에 앞서 참가 학생들은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본격적인 문제풀이에 돌입하자 침착함을 되찾고 집중력을 발휘해 퀴즈왕을 향한 치열한 접전이..

대통령실 “대통령 사칭 SNS 계정 확인… 단호히 대응”
대통령실 “대통령 사칭 SNS 계정 확인… 단호히 대응”

SNS에 대통령을 사칭한 가짜 계정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범죄 정황이 확인돼 대통령실이 각별한 주의를 요청했다. 전은수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1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최근 틱톡(TikTok), 엑스(X) 등 SNS 플랫폼에서 제21대 대통령을 사칭하는 가짜 계정이 확인돼 국민 여러분께 각별한 주의를 요청드린다”고 전했다. 가짜 계정들은 프로필에 '제21대 대통령'이라는 직함과 성명을 기재하고 대통령 공식 계정의 사진·영상을 무단 도용하고 있으며, 단순 사칭을 넘어 금품을 요구하는 등 범죄 정황도 포착됐다고 전은수 부대변인은 설명했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청설모의 겨울나기 준비 청설모의 겨울나기 준비

  • ‘사랑의 온도를 올려주세요’ ‘사랑의 온도를 올려주세요’

  • 대전 갑천변 수놓은 화려한 불꽃과 드론쇼 대전 갑천변 수놓은 화려한 불꽃과 드론쇼

  • 대전 제과 상점가 방문한 김민석 국무총리 대전 제과 상점가 방문한 김민석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