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 헝가리 부다페스트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 오피니언
  • 중도시평

[춘하추동] 헝가리 부다페스트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오지희 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 교수

  • 승인 2019-07-09 14:37
  • 신문게재 2019-07-10 22면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오지희 음악평론가
오지희(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 교수)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에서 발생한 사고의 상흔이 헝가리 부다페스트 오케스트라 내한 연주와 함께 조금씩 봉합되고 있다. 6월 말 서울, 부산, 대구, 대전의 주요 공연장에서 직접 부른 추모 노래와 감동적인 연주는 많은 사람에게 크나큰 위로와 희망을 주었다. 보이지 않는 음악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새삼 입증한 뜻깊은 음악회였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 주목한 것은 레퍼토리 선정이었다. 이반 피셔 지휘자가 이끄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오케스트라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을 중심으로 두 갈래의 레퍼토리를 선정했다. 하나는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과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 베토벤 교향곡 7번이었고, 다른 하나는 멘델스존 한여름밤의 꿈 서곡과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1번, 브람스 교향곡 1번이었다. 멘델스존과 브람스도 등장하고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지대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번 연주회의 주인공은 베토벤으로 다가온다. 특히 베토벤 작품만으로 구성된 연주회 프로그램이 주는 인상이 강렬했다. 왜일까?

음악회의 포문을 연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은 괴테의 에그몬트 비극에 붙인 음악이다. 서곡 제목에 등장하는 귀족 에그몬트(1522~68)가 네덜란드 독립과 자유를 위해 항거한 실존 인물이다. 괴테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에그몬트를 스페인에 항거해 독립을 주도하다 목숨을 잃은 영웅적인 인물로 창조했다. 음악이 우리의 지식세계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이끌고 마음을 위로하는 효과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던 베토벤은 에그몬트 서곡에 그러한 의미를 집어넣으려 노력했다. 시작부터 범접할 수 없는 전율을 느끼게 하고 금관악기가 뿜어내는 빛나는 환희로 마무리되는 이 영웅적인 서곡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다.

베토벤은 이미 1798년부터 청력을 잃기 시작했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 여름 숙소에서 머물렀다. 그 해 가을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격정적으로 토로하며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작성했다. 오로지 예술만이 자신을 고통에서 끌어낼 수 있음을 항변하며 스스로 극복한 유서였다. 그 후 4년이 지나 안정된 상태에서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작곡했기에 4번은 이전 협주곡과 달리 밝은 분위기를 내비춘다. 특이하게도 피아노가 오케스트라보다 먼저 시작하는 파격을 보이는 등 기존 관습을 뛰어넘는 상상력이 확대됐다. 1악장에서 차분하게 운명의 동기를 이끈 악상은 2악장에서 비장한 숭고미를 내비춘다. 그러나 3악장은 경쾌함과 발랄한 리듬으로 지나온 비극성을 떨쳐내고 새로운 세계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

1809년 나폴레옹 군대가 빈을 습격하고 퇴각하기 전까지 베토벤 본인은 물론 후원자들까지 피난을 가야 하는 혼란스런 시기가 있었다. 베토벤은 교향곡 7번을 전쟁의 큰 상처가 지나가고 어수선한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을 때 작곡했다. 3번 영웅이나 5번 운명 교향곡처럼 전쟁의 참상이 주는 고통을 극복하고 삶과 창작에 대한 작곡가의 강한 의지가 철저하게 반영된 작품이다. 특히 주목할 악장은 2악장으로 장송행진곡을 연상시키는 엄숙함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교향곡 7번이 마지막 악장에서 폭풍같이 분출하는 힘에 의거해 마치 춤을 추듯이 교향악 전체가 들썩인다. 이제는 어두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광명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온 교향악 울림으로 알리듯이 말이다.

그렇다. 베토벤 자신이 고통을 딛고 위대한 음악의 성인이 됐듯이 베토벤 음악을 통해 슬픔에서 벗어나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오케스트라가 선택한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피아노 협주곡 4번, 교향곡 7번 이 세 작품은 공통적으로 비극적 속성을 승화시켜 기쁨의 세계로 향하는 확고한 의지가 가득했다.

/오지희 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아산시, 국화로 물들다", '제26회 아산시 국화전시회 개최'
  2. 대전 유성국화축제 한창…13만 분 가을꽃 물결
  3. 세종시 대평동 '상가 공실' 전환점 맞나… '라면 페스타'가 온다
  4. 세종시행 '중앙행정기관' 임시 둥지, 2027년 어디로?
  5. 온통대전, 11월부터 월 최대 9만 1000원 캐시백 받는다
  1. 제주관광공사, 인천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송도점 팝업 '성료'
  2. 대덕구의회 사퇴 촉구 빗발치지만 주민소환은 '그림의 떡'
  3. 2026년 육군본부 국정감사
  4. 김찬술 대덕구청장 결국 병원행…區의회는 또 원구성 무산
  5. 대덕대교 부분 통제 첫 날…차로 통제에 병목현상

헤드라인 뉴스


김장 앞두고 배춧값 내렸지만… 농가도 소비자도 웃지 못한다

김장 앞두고 배춧값 내렸지만… 농가도 소비자도 웃지 못한다

본격적인 김장철을 앞두고 배추와 무 가격이 지난해보다 떨어졌지만 생산 농가와 소비자 모두 마냥 반기기 어려운 상황이다. 농민들은 생산비 상승과 농산물 판매가격 하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걱정하고, 소비자들은 새우젓 등 일부 양념 재료의 가격 급등으로 김장비용 부담을 느끼고 있다. 김장 물가 안정에도 농가와 가계의 서로 다른 고민이 자리한 셈이다. 20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전날 기준 배추 1포기 소매가격은 5463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8% 하락했다. 무도 1개당 2251원으로 7.5% 내..

세종시로 이전하는 `국가기관`… 종사자 주거 안정 대책은
세종시로 이전하는 '국가기관'… 종사자 주거 안정 대책은

중앙행정기관의 대규모 이전을 앞둔 세종시에서 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성공적이고 원활한 이전을 끝마치기 위해선 이전 기관 종사자들의 정주여건 안정화가 필요충분조건이란 판단에서다. 당장 내년 2000여 세대의 임대주택을 비롯해 3년간 1만 세대의 입주가 가시화된 상태인데, 공급 물량을 더욱 확대하고 인허가 기간 단축 등 주택 수급에 힘을 실을 전망이다. 20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에 따르면 내년 중 법무부와 성평등가족부를 비롯한 27개 중앙행정기관, 종사자 기준 3000명에 육박하는 인원이 세종으로 자..

은행서 잠자는 계좌 3억 4000만개... 장기 미거래 계좌 해마다 `급증`
은행서 잠자는 계좌 3억 4000만개... 장기 미거래 계좌 해마다 '급증'

금융권에서 장기간 거래가 없거나 휴면 상태인 '잠자는 계좌'가 3억 4000만개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당국과 금융회사들이 숨은 금융자산을 찾아주고 있지만, 장기 미거래 계좌 등은 해마다 늘고 있다.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말 장기 미거래·미청구 계좌와 휴면금융자산 계좌는 총 3억 4191만 개로 나타났다. 2021년 말(2억 6440만개)보다 7751만개(29.3%) 증가했다. 장기 미거래 계좌는 통상 3년 이상 거래가 없는 계좌를 의미한다. 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사람 키보다 높게 쌓인 건설폐기물 사람 키보다 높게 쌓인 건설폐기물

  • 국회 과방위 국감장에 등장한 휴머노이드 국회 과방위 국감장에 등장한 휴머노이드

  • 가을비에 바빠진 발걸음 가을비에 바빠진 발걸음

  • 대덕대교 부분 통제 첫 날…차로 통제에 병목현상 대덕대교 부분 통제 첫 날…차로 통제에 병목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