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라이프] 대전 중구 R경로당의 숨겨뒀던 이야기

  • 사람들
  • 뉴스

[실버라이프] 대전 중구 R경로당의 숨겨뒀던 이야기

  • 승인 2019-08-21 18:44
  • 한성일 기자한성일 기자
도시의 아파트 경로당에는 생각이나 습관, 직업 등이 서로 다른 회원들이 모여 있다. 따라서 외식이나 자체급식에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고 작은 다툼이 예상밖의 큰 사건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회장이나 임원들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회장님, 건의 좀 하것시유." A회원이 말을 꺼낸다. 요약해 보면, 현재 우리 경로당에서 요리하는 자체급식이 맛이 없다는 회원이 있고, 어느 땐가는 싱거워서 소금을 더 탔다며, 앞으로 대여섯 달 만이라도 요리를 B회원에게 맡겨보자는 것이었다. 몇 사람의 의견을 자기가 대변한다는 말을 덧붙이기까지 하였다.



" 그 건의에 답을 드리기 전에 먼저 우리 경로당 급식 실태를 설명 드리겠습니다." 회장의 설명이 이어진다.

이 경로당의 자체급식 요리사는 젊었을 때 천렵을 즐겼던 같은 경로당 회원으로, 이미 1년 6개월 동안 회원들의 칭찬을 들으며 무보수 봉사활동으로 해 오고 있던 터였다. 처음 시작할 때는 부인과 같이 시장을 보았으나 부인과 의견 차이로, 지금은 혼자서 혹은 경로당 임원과 같이 식재료를 준비한다. 식재료의 신선도를 높이고자 자체급식 바로 전날 구입하므로 우천이나 폭염도 피할 수 없다.



자체급식을 하는 날 회원들의 출석률이 외식을 할 때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보아 회원들이 자체급식을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외부의 요리사를 쓸 경우 매월 부담해야 되는 급식도우미 봉사료를 절약하게 되어 자체자금이 빈약한 이 경로당에 적지 않은 재정적 기여를 해 오고 있음을 역설한다.

이어서 몇 가지 질문을 덧붙인다. 첫째, B회원에게 요리를 맡겼을 때, 현재보다 맛없다는 사람이 더 많이 나올 경우 대처할 묘책이 있는가? 둘째, 대여섯 달이 지나서 현재의 '맛없다고 쫓겨 난?'요리사가 다시 봉사하게 할 자신이 있는가? 셋째로 B회원이 몸이 약해 반년 정도 요리를 해 보겠다고 하는 건데, 요리를 도맡아 하다가 건강이 더 악화되면 어쩔 것인가?

이런 몇 가지 질문에 책임 있는 해결책을 주시면 언제라도 요리사를 교체하겠다고 선언한다. 또 오늘의 건의를 다음과 같이 바꿔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한다.

" 회원들 대부분이 맛있다고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간 준비하고 요리하느라 고생하셨으니, 활력을 충전하기 위해 몇 달간 B회원에게 맡기시고 푹 쉬신 후에 더 맛 있는 음식 만들어 주시면 어떨까요?"

이런 대화가 오간 뒤에 서로의 마음을 열고 점심 식사를 했고 오후 간식 시간에는 A회원이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며, 복숭아 두 상자를 기증해서 할아버지방이나 할머니방 모두 활짝 웃는 가운데 복숭아 잔치를 벌였다. 웃는 경로당에 복이 온다고, 회원들이 함께 고민하던 '설거지 도우미'를 자청한 봉사자도 벌었다.



황영일 명예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부산 광안리 드론쇼, 우천으로 21일 변경… 불꽃드론 예고
  2. 천안시, 맞춤형 벼 품종 개발 위한 식미평가회 추진
  3. 천안시 동남구, 빅데이터 기반 야생동물 로드킬 관리체계 구축
  4. 천안도시공사, 개인정보보호 실천 캠페인 추진
  5. 천안의료원, 공공보건의료 성과보고회서'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1. 천안법원, 지인에 땅 판 뒤 근저당권 설정한 50대 남성 '징역 1년'
  2. 충청권 부동산 시장 온도차 '뚜렷'
  3. 천안시, 자립준비청년의 새로운 시작 응원
  4. "마을 앞에 고압 송전탑 있는데 345㎸ 추가? 안 됩니다" 주민들 반발
  5. 백석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협력…지역 창업 생태계 활성화 기대

헤드라인 뉴스


[지방자치 30년, 다음을 묻다] 대전·충남 통합 `벼랑끝 지방` 구원투수 될까

[지방자치 30년, 다음을 묻다] 대전·충남 통합 '벼랑끝 지방' 구원투수 될까

지방자치 30년은 성과와 한계가 동시에 드러난 시간이다. 주민과 가까운 행정은 자리 잡았지만, 지역이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구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제도는 커졌지만 지방의 선택지는 오히려 좁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인구 감소와 재정 압박, 수도권 일극 구조가 겹치며 지방자치는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지금의 자치 체계가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 아니면 구조 자체를 다시 점검해야 할 시점인지에 대한 질문이 커지고 있다. 2026년은 지방자치 30년을 지나 민선 9기를 앞둔 해다. 이제는 제도의 확대가..

대전 충남 통합 내년 지방선거 뇌관되나
대전 충남 통합 내년 지방선거 뇌관되나

대전 충남 통합이 지역 의제로선 매우 이례적으로 정국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내년 지방선거 뇌관으로 까지 부상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정부 여당이 강력 드라이브를 걸면서 보수 야당은 여당 발(發) 이슈에 함몰되지 않기 위한 원심력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6월 통합 단체장 선출이 유력한데 기존 대전시장과 충남지사를 준비하던 여야 정치인들의 교통 정리 때 진통이 불가피한 것도 부담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8일 대전 충남 민주당 의원들과 오찬에서 행정통합에 대해 지원사격을 하면서 정치권이 긴박하게 움직이..

정부, 카페 일회용 컵 따로 계산제 추진에 대전 자영업자 우려 목소리
정부, 카페 일회용 컵 따로 계산제 추진에 대전 자영업자 우려 목소리

정부가 카페 등에서 일회용 컵값을 따로 받는 '컵 따로 계산제' 방안을 추진하자 카페 자영업자들의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매장 내에서 사용하는 다회용 머그잔과 테이크아웃 일회용 컵 가격을 각각 분리한다는 게 핵심인데, 제도 시행 시 소비자들은 일회용 컵 선택 시 일정 부분 돈을 내야 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2026년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2027년부터 카페 등에서 일회용 컵 무상 제공을 금지할 계획이다.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최근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컵 따로 계산제를 탈 플라스틱 종합 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 신나는 스케이트 신나는 스케이트

  •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