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기의 행복찾기] 부끄러운 것과 부끄럽지 않은 것

  • 오피니언
  • 여론광장

[박광기의 행복찾기] 부끄러운 것과 부끄럽지 않은 것

박광기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19-09-06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부끄럽지 않게 산다는 것은 정말 가능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끄럽지 않다는 것은 일을 함에 있어서 잘못을 하지 않고, 양심에 거리끼는 일도 없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볼 면목이 없는 상황이 아닌 매우 떳떳하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끄럽지 않게 삶을 사는 것은 어느 하나 떳떳하지 않은 것이 없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양심에 거리끼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니, 아마도 가능하지 않은 것만 같습니다.

일을 함에 있어서 잘못을 하지 않는 것만 보더라도 자기 스스로는 어떤 일을 할 때, 공정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했다고 하더라도, 그 일의 결과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거나, 당장은 옳은 결정이라고 하더라도 나중에 그 판단에 대한 평가가 옳지 않았던 것으로 인정된다면 결과적으로 잘못된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양심에 거리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올바른 것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스스로 양심에 가책이 되는 것을 행하게 되거나 결정을 하게 된다면 그것도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자신에게 불리하고 곤란한 상황에 이르게 할 가능성이 있어서 해야 할 일이나 행동 또는 판단을 하지 않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부끄러운 일은 내 자신의 어떤 행동이나 결정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끄럽게 느끼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지난 달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만나는 많은 분들이 조의와 위로를 해 주셨습니다. 이분들의 위로와 조의를 받으면서 내 자신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부끄러움은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조금이라도 후회되지 않게 모셨다면, 아마도 그 부끄러움을 조금은 줄일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더 크게 느끼는 것입니다.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분들에게 위로를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대신해 조의를 표해 주시고 위로를 해 주시니 정말 부끄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부끄러움은 내 자신의 문제나 상황으로부터 나오는 것 이외에도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으로부터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모 장관 후보자 자신에 대한 문제는 물론이고 가족들에 대한 각종의 의혹을 보면서, 그 의혹들이 사실인지에 대한 여부를 떠나서, 이런 의혹들이 나오고 있는 자체만으로도 대학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학생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사회적 정의를 가르치고 올바른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불거지고 있는 의혹들을 보면 그 진위여부를 떠나서 현실이 그렇지 않고, 바로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이 같은 대학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수년 전 정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음을 새삼 인식하면서 그 동안의 삶을 돌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살아온 삶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흔히 말하듯 처음 대학교수로 임용된 때가 정말 얼마 되지 않고 정년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제 정년까지의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모든 조직이 나름의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듯이, 내가 근무하는 대학 역시 크고 작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속한 조직을 위해 그 동안 무엇을 했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 속에서 나의 능력이나 역할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회피한 것이 아닌가하는 반성을 하면서 동료나 후배 교수, 그리고 다른 구성원들에게 정말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내 스스로의 능력이나 역할이 그리 크지 않고 부족하기 때문에 내가 나선다고 해도 지금의 문제들이나 어려운 상황을 모두 해결할 수는 없고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혹시라도 다른 분들이 이런 어려운 상황이나 문제가 발생할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지적한다면, 정말 내 스스로가 부끄럽지 않게 답을 할 자신이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학교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수차례 보직을 맡아 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내 생각과 뜻이 다르고 학교가 처해 있는 상황이 녹녹치 않았기 때문에 여러 이유를 들어 거절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때 보직을 맡아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조직의 구성원으로 상황을 회피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일들을 생각하고 반성하면서 정말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해서 느끼는 부끄러움도 있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느끼는 부끄러움도 있고, 당당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회피했기 때문에 느끼는 부끄러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과거의 부끄러움은 다시 회복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부끄러움은 그냥 가슴에 묻고 스스로 책임을 질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낯이 붉어질 수밖에 없는 부끄러움을 생각하면서 앞으로의 삶은 정말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게 산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해야만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그냥 지금 당장 해야만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구분해서 공정하게 행동하고 판단하는 것으로는 부족한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비록 법과 제도에 어긋나지 않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게 사는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법과 제도는 인간의 행동이나 판단을 정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것을 누구나가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법을 지키고 제도와 절차에 따라서 행동하고 판단한다고 해서 그 결과가 부끄럽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그 진위여부를 떠나서 불거지고 있는 모 장관후보자의 의혹은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고 부끄러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은 바로 우리 사회의 문제로부터 당사자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부끄러움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부끄럽지 않게 산다는 것이 그래서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부끄러움을 생각하면서 더 이상 부끄러운 삶을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번 주말 낯이 붉어지는 과거의 부끄러움을 진심으로 반성하겠습니다.

행복한 주말되시길 기원합니다.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박광기교수-220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 쌍용동 아파트서 층간소음 문제로 살인사건 발생
  2. 교실 CCTV 설치 근거 생길까… 법사위 심의 앞두고 교원단체 반발
  3. 어깨·허리 부상 잦은 소방공무원에게 물리치료사협회 '도움손'
  4. '대량 실직 위기'…KB국민카드 대전 신용상담센터 노동자 150여 명 불안 확산
  5. 대전교육청 공무직 4일 총파업… 94개 학교 급식 차질
  1. 동구 정다운어르신복지관, 2025년 '정담은 김장나눔'
  2. 4일 밤사이 세종·충남 1~5㎝ 적설 예고
  3. 대덕구노인종합복지관, 김장김치 나눔 행사
  4. "역대 최대 1조 2천억 확보" 김해시, 미래 성장동력·안전망 구축 탄력
  5. [2026학년도 수능 채점] 입시 전문가들이 말하는 정시 전략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탄력받나… 李대통령 "모범적 통합" 언급

대전·충남 행정통합 탄력받나… 李대통령 "모범적 통합" 언급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하면서다. 김태흠 충남지사와 이장우 대전시장은 이 대통령의 긍정적 반응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히며 행정통합 법안 처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5일 충남 천안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첨단산업의 심장, 충남의 미래를 설계하다'라는 주제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5극 3특' 체제를 거론하며 "지역 연합이 나름대로 조금씩 진척되는 것 같다"면서도 "협의하고 협조하는 수준이 아니라 대규모로 통합하는 게 좋다고 생..

충남도, 당진에 2조 원 규모 `AI데이터센터` 유치
충남도, 당진에 2조 원 규모 'AI데이터센터' 유치

충남도가 2조 원 규모 AI데이터센터를 유치했다. 김태흠 지사는 4일 도청 대회의실에서 오성환 당진시장, 안병철 지엔씨에너지 대표이사, 정영훈 디씨코리아 대표이사와 당진 AI데이터센터 건립을 위한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르면, 지엔씨에너지는 당진 석문국가산업단지 내 3만 3673㎡(1만 평) 부지에 건축연면적 7만 2885㎡ 규모로 AI데이터센터를 건립한다. 이를 위해 지엔씨에너지는 디씨코리아 등과 특수목적법인(SPC)을 구성하고, 2031년까지 2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지엔씨에너지는 이와 함께 200여 명의 신규 고용..

11월 전국 민간아파트 평당 분양가 2797만 원 달해
11월 전국 민간아파트 평당 분양가 2797만 원 달해

전국 민간아파트 ㎡당 평균 분양가가 사상 처음으로 800만원을 넘어섰다. 평당(3.3㎡) 분양가로 환산하면 2797만 원에 달했다. 5일 리얼하우스가 청약홈 자료를 분석한 결과, 11월 전국 민간아파트 ㎡당 평균 분양가격은 827만 원이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고치로 1년 새 6.85% 올랐다. 전국 ㎡ 당 분양가는 지난 2021년 530만 원에서 2023년 660만 원으로 오른 데 이어 2024년에는 750만 원까지 치솟았다. 올해 들어 상승 흐름은 더 빨라져 9월 778만 원, 10월 798만 원, 11월 827만 원으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

  • ‘추울 땐 족욕이 딱’ ‘추울 땐 족욕이 딱’

  •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