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엄마의 마음

  • 오피니언
  •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엄마의 마음

  • 승인 2020-02-05 16:26
  • 수정 2020-07-19 10:22
  • 신문게재 2020-02-06 22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며칠 전 취재 현장에서 '엄마들'을 만났다. 대전 유성구에 사는 이 엄마들은 지역에 있는 원자력시설에서 인공방사성핵종인 세슘이 누출됐다는 사실에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전문가와 시민 대표가 모여 사건 이후 대책에 대해 논의하는 대전원자력안전협의회 회의에 엄마들은 지역 주민 자격으로 참관했다. 오후 2시 시작한 회의는 1시간 30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한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발언하기 시작했다. 회의 진행자는 발언을 자제해 달라고 했지만 이제 아이 데리러 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꼭 할 말만 하고 가야겠다고 했다. 이 엄마는 관평동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는데 세슘이 누출되면 어떻게 되겠냐고 분개했다. 아이들이 생태계 체험을 위해 산과 하천에 가는데 누출된 세슘으로 피해를 입으면 누가 책임질 거냐고 말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것처럼 하나마나한 탁상공론을 할 게 아니라 당장 컨트롤타워를 세워야 하고 소리쳤다.

또 다른 엄마도 입을 열었다. 6년 동안 이 시설과 관련한 이슈에 관심 갖고 활동하고 있지만 '네버엔딩스토리'처럼 반복되는 사고와 사건에 대해 분노했다. 아이까지 맡겨놓고 참관한 회의 내용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자조 섞인 목소리로 부끄럽지 않냐고 따져 물었다. 동네 아줌마가 집에서 살림만 하게 해 달라고 했다. 이 엄마는 일전에 다른 취재 현장에서도 본 적이 있다. 일본에서 탈핵 활동가가 방문해 탈핵 활동을 공유하는 자리였는데 발표에 대한 소감을 공유하던 중 이 엄마가 눈물을 보였다. 일본 후쿠시마에 있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흐느끼면서도 아이들을 포기하지 말자고 했던 엄마다.



엄마가 아닌 나는 이들의 마음을 다 알진 못하지만 내 엄마가, 부모가 자주 술 먹는 내 건강을 걱정하는 것 이상으로 이 엄마들이 마음 쓰고 있다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엄마들'의 울먹이던 목소리가 계속 잊히지 않는다. 누출된 세슘이 하천과 흙으로 퍼진 상황에서 숲으로 체험학습 가는 아이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건 당연하다. 막을 수 있었던 일을 막지 못한 시설과 규제기관에 대해 분노하는 것도 응당하다. 내 자식뿐만 아니라 누구의 자식도 지키고 싶은 게 이들의 마음이다.

엄마들을 포함한 지역 시민사회단체 52개가 포함된 핵재처리저지 30㎞연대가 5일 오후 청와대 앞에서 목소리를 높인 것도 이 때문이다. 6년이란 시간을 요구했지만 안심할 수 없는 아이들과 가족들의 건강을 보호해 달라고 말이다. 원자력연구원은 여러 사건 사고 이후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부분이 있다. 최근 조사 결과 밝혀진 세슘 누출 원인은 인재였다. 엄마들이 더 분노하며 더 늦기 전에 안전을 확인하라고 소리 높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을 생각해 달라는 이들의 요구다. 아이와 안심하고 살고 살 수 있게 해 달라는 것. 그게 엄마의 마음 전부다. 임효인 교육과학부 기자



임효인
임효인 교육과학부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 쌍용동 아파트서 층간소음 문제로 살인사건 발생
  2. [이차전지 선도도시 대전] ②민테크"배터리 건강검진은 우리가 최고"
  3. 대전시 2026년 정부예산 4조 8006억원 확보...전년대비 7.8% 증가
  4. 대전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공유재산 임대료 60% 경감
  5. [기고]농업의 미래를 설계할 2025년 농림어업총조사
  1. [문화人칼럼] 쵸코
  2. [대전문학 아카이브] 90-대전의 대표적 여성문인 김호연재
  3. 농식품부, 2025 성과는...혁신으로 농업·농촌의 미래 연다
  4. [최재헌의 세상읽기]6개월 남은 충남지사 선거
  5. 금강수목원 국유화 무산?… 민간 매각 '특혜' 의혹

헤드라인 뉴스


대전시, 산단 535만 평 조성에 박차…신규산단 4곳  공개

대전시, 산단 535만 평 조성에 박차…신규산단 4곳 공개

대전시가 산업단지 535만 평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4일 대전시청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신규 산단 4곳을 공개하며 원촌 첨단바이오 메디컬 혁신지구 조성 확장안도 함께 발표했다. 대전시의 산업단지 535만 평 조성계획은 현재 13곳 305만 평을 추진 중이며, 이날 신규 산단 48만 평을 공개해 총 353만 평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원촌 첨단바이오 메디컬 혁신지구는 유성구 원촌동 하수처리장 이전 부지를 활용한 바이오 중심 개발사업이다. 당초 하수처리장 이전 부지에 약 12만 평 규모로 조성계획이었으나,..

꿈돌이 협업상품 6개월 만에 23억 매출 달성
꿈돌이 협업상품 6개월 만에 23억 매출 달성

대전시는 지역 대표 캐릭터 '꿈돌이'를 활용한 지역기업 협업 상품 7종이 출시 6개월 만에 23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4일 밝혔다. '꿈돌이 라면'과 '꿈돌이 컵라면'은 각각 6월과 9월 출시 이후 누적 110만 개가 판매되며 대표 인기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첫 협업 상품으로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11월 말 기준 '꿈돌이 막걸리'는 6만 병이 팔렸으며, '꿈돌이 호두과자'는 2억 11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며 청년일자리 창출과 사회적경제 조직 상생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이 밖에도 '꿈돌이 명품김', '꿈돌이 누룽지',..

2025년 세종시 `4기 성과` 토대, 행정수도 원년 간다
2025년 세종시 '4기 성과' 토대, 행정수도 원년 간다

2022년 7월 민선 4기 세종시 출범 이후 3년 5개월 간 어떤 성과가 수면 위에 올라왔을까. 최민호 세종시장이 4일 오전 10시 보람동 시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수도를 넘어 미래수도로 나아가는 '시정 4기 성과'를 설명했다. 여기에 2026년 1조 7000억 원 규모로 확정된 정부 예산안 항목들도 함께 담았다. ▲2026년 행정수도 원년, 지난 4년간 어떤 흐름이 이어지고 있나=시정 4기 들어 행정수도는 2022년 국회 세종의사당 기본계획 확정 및 대통령 제2집무실 법안, 2023년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을 위한 국..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추울 땐 족욕이 딱’ ‘추울 땐 족욕이 딱’

  •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

  • 급식 차질로 도시락 먹는 학생들 급식 차질로 도시락 먹는 학생들

  • 양자 산업화 전초기지 ‘KAIST 개방형 양자팹’ 첫 삽 양자 산업화 전초기지 ‘KAIST 개방형 양자팹’ 첫 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