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톡] '땅끝마을'에서 얻은 것들

  • 오피니언
  • 여론광장

[공감 톡] '땅끝마을'에서 얻은 것들

김소영/수필가

  • 승인 2020-02-14 14:25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남편은 예전부터 해남 땅 끝 마을에 한번 가고 싶다고 했었다. 그래서 얼마 전 무작정 우리 두 사람은 해남으로 향했다. 그 날은 하필 매우 추웠고 1박 2일로 짧았지만 모처럼 둘이서 떠나는 여행이라 기분은 매우 좋았다.

다음 날 아침 7시 30분에 바닷가에서 일출을 보고 차를 타고 산 위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전망대는 문을 열지 않았고 옆에 땅끝탑 500m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땅끝탑까지 500m면 가볼만하네. 땅끝마을에 왔으면 땅끝탑은 보고 가야지."

'땅끝탑'이란 우리나라 땅 끝에 있는 탑이다. 500m라면 남편 말대로 가볼만한 거리라고 생각하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조금 내려가자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너무 힘든지 욕 비슷한 소리까지 했다. 우리 두 사람은 의아했다.



'500m인데 뭐 저렇게까지 힘들어하지?'

그러나 조금씩 계단을 내려가며 그들이 왜 그랬는지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꼭대기에서 밑까지 직선거리 500m이었고 실제로 계단은 구불구불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내려만 가는데도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갔다가 다시 올라올 생각을 하니 더 힘들었다. 남편은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땅 끝은 보고 가야 한다며 필자를 이끌고 내려갔고 그렇게 남편의 팔을 의지한 채 한없이 내려갔다. 그렇게 겨우 우리나라 땅 끝에 도착했고 땅 끝에서 바라본 바다는 남달랐지만 다시 오를 생각을 하니 아득했다.

하지만 어차피 올라야 할 길이기에 생각을 고쳐먹고 쉬엄쉬엄 천천히 다리를 풀어주며 한 계단씩 오르기 시작했다. 잠깐 갔다 올 생각으로 아침도 먹지 않고 시작한 일이었기에 속도 쓰리고 어지럽기까지 했다. 아까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욕 비슷한 소리를 하며 올라오던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오르다 보니 조그만 샛길이 보였다. 갈 때는 몰랐는데 중간에 샛길이 있었다. 산 중간에서 땅 끝과 전망대로 갈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 길은 계단이 아니라 그냥 산길로 계단보다는 조금 수월해 보였다.

"난 차 때문에 어차피 전망대까지 가야 돼. 이 길이 조금 덜 힘들 거 같으니 당신이라도 이리로 가서 중간에서 기다리고 있어. 그럼 내가 차를 가지고 그리로 갈게."

남편 말에 잠깐 고민은 했지만 함께 가는 길을 택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다시 함께 힘겹게 오르고 시작했고 갑자기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우리 두 내외은 결혼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남편을 의지하며 인생의 밑바닥까지 갔다가 다시 함께 위를 향해 힘겹게 오르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힘겨워하는 아내를 위해 조금이라도 수월한 샛길을 권했고 아내는 힘들지만 남편과 동행하는 길을 택했다.

사람들은 우리 부부를 잉꼬부부라고들 하지만 이것은 아내를 존중하고 아끼는 남편 덕분이다. 서로 존중할 때 진짜 부부가 된다는 것을 갈수록 느낀다. 우리 부부 사이에도 부부싸움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서로의 잘못을 나무라지 않으며 포용하는 자세로 대한다면 오히려 좋은 시너지(synerg)를 낸다.

여러 생각에 잠겨 가다보니 아주머니 한 분이 인사를 건넸다 . 그녀는 자신을 전망대 문지기 아주머니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아침마다 전망대 문을 열기 위해 매일 산을 오른다고 했다. 물론 중간에 있는 샛길을 통해 오르시는 것이지만 매일 그 많은 계단을 오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 남았으니 힘내세요. 아니, 전망대에서 내려갔다 다시 오른다고요? 아이고, 사람들한테 좀 물어보고 오시지. 중간 길도 있는데… 많이 힘드셨겠네요. 하지만 조금 남았으니 힘내세요. 저는 먼저 가서 전망대 문 열어놓고 기다릴게요"

그렇다. 아주머니 말씀대로 먼저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알아봤다면 중간 샛길로 왔을 것이고 덜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지금처럼 많은 것을 얻진 못했을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올라가서 그런지 어느새 꼭대기가 보였고 힘들긴 했어도 남편과 함께 오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땅끝마을 여행은 조금 힘들긴 했지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꽤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김소영/수필가

김소영 최종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내방] 구연희 세종시교육청 부교육감
  2.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6년 장애예술 활성화 지원사업 공모 접수 시작
  3. ‘사랑 가득한 김장 나눠요’
  4. 재난위기가정 새출발… 희망브리지 전남 고흥에 첫 '세이프티하우스' 완공
  5. 수능 앞 간절한 기도
  1. [한 장, 두 장 그리고 성장] 책을 읽으며 사람을 잇고 미래를 열다
  2. 고물가에 대전권 대학 학식 가격도 인상 움직임…학생 식비부담 커질라
  3. 대전 2026학년도 수능 응시자 1만 6131명… 교육청 "수험생 유의사항 필독해야"
  4. "일본 전쟁유적에서 평화 찾아야죠" 대전 취재 나선 마이니치 기자
  5. 충남 청년농 전용 '임대형 스마트팜' 첫 오픈… "돈 되는 농업·농촌으로 구조 바꿀 것"

헤드라인 뉴스


"일본 전쟁유적에서 평화 찾아야죠" 대전 취재 나선 마이니치 기자

"일본 전쟁유적에서 평화 찾아야죠" 대전 취재 나선 마이니치 기자

"일본에서도 태평양전쟁을 겪은 세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80년이 지났고, 전쟁의 참상과 평화를 교육할 수 있는 수단은 이제 전쟁유적뿐이죠. 그래서 보문산 지하호가 일본군 총사령부의 것이었는지 규명하는 게 중요합니다."일본 마이니치 신문의 후쿠오카 시즈야(48) 서울지국장은 5일 대전 중구 보문산에 있는 동굴형 수족관 대전아쿠아리움을 찾아왔다. 그가 이곳을 방문한 것은 올해만 벌써 두 번째로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의 종결을 앞두고 용산에 있던 일본군 총사령부를 대전에 있는 공원으로 옮길 수 있도록 지하호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학생·학부모 10명 중 8명 "고교학점제 폐지 또는 축소해야"… 만족도 25% 미만
학생·학부모 10명 중 8명 "고교학점제 폐지 또는 축소해야"… 만족도 25% 미만

올해 고1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고교학점제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 시행 첫 학기를 경험한 응답자 중 10명 중 8명 이상이 '제도를 폐지하거나 축소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학생들은 진로 탐색보다 대학입시 유불리를 기준으로 과목을 선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종로학원은 10월 21일부터 23일까지 고1 학생과 학부모 47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5.5%가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6일 밝혔다. 반면 '만족한다'는 응답은 4.3%, '매우 만족한다'는..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 개장 한달만에 관광명소 급부상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 개장 한달만에 관광명소 급부상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이 개장 한 달여 만에 누적 방문객 22만 명을 돌파하며 지역 관광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6일 대전시에 따르면 갑천생태호수공원은 9월 말 임시 개장 이후 하루 평균 7000명, 주말에는 최대 2만 명까지 방문하는 추세다. 전체 방문객 중 약 70%가 가족·연인 단위 방문객으로, 주말 나들이, 산책과 사진 촬영, 야간경관 감상의 목적으로 공원을 찾았다. 특히 추석 연휴 기간에는 10일간 12만 명이 방문해 주차장 만차와 진입로 혼잡이 이어졌으며, 연휴 마지막 날에는 1km 이상 차량 정체가 발생할 정도로 시민들의..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과학기술인 만남 이재명 대통령 과학기술인 만남 이재명 대통령

  • ‘사랑 가득한 김장 나눠요’ ‘사랑 가득한 김장 나눠요’

  • 수능 앞 간절한 기도 수능 앞 간절한 기도

  • 국민의힘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 국민의힘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