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이형우 명인회(名人會) 회장을 만나다

  • 사람들
  • 휴먼

[휴먼] 이형우 명인회(名人會) 회장을 만나다

'40년 외길' 서각에 새긴 민족혼… 전통에 움을 틔우다

  • 승인 2016-06-23 14:02
  • 신문게재 2016-06-24 22면
  • 한성일 기자한성일 기자

15개 분야 명인 19명 '온고지신'
옛것+현재의 조화로 새 작품 탄생
1년 6차례 모여 전시계획 구상해
전통문화문화산업 발돋움 노력
공예미술지침서 만드는게 최종 꿈


40년간 오롯이 한길을 걸으며 서각(書刻)에 평생을 바친 장인인 명인회(名人會) 이형우 회장이 지난 4월 26일부터 5월 2일까지 KBS 대전방송총국 전시실에서 전통혼을 이어가는 명인회 展을 열었다.

우리의 고유 전통을 이어나가는 일에 사재를 털어가며 헌신해 온 이형우 회장을 지난 11일 오전 중구 대사동 보문산 자락에 위치한 그의 자택에서 만나 서각에 바쳐온 일생과 명인회를 이끌어가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이 회장님, 이번 전시의 의의에 대해 말씀해주실까요?

▲전통을 잇는 명인회 전시는 새로운 것들에 묻힌 전통의 움을 틔워 성장해 거목이 되는 희망을 상징합니다. 말로만 전통 잇기를 떠들기보다는 실천해보려고 이번 도록엔 새로운 시도를 해봤습니다.

눈으로만 보고 가는 일회성 전시가 아닌 한 가지라도 알아가는 전시, 오랜 상식이 될 수 있는 전시가 되도록 꾸며봤지요. 상식을 알 수 있고, 교육적 효과가 있는 전시도록으로 오래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전시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신 대전문화재단과 중구문화원, 그리고 장소 협찬을 해주신 KBS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작품을 출품해주신 명인회원들과 도록 작업을 함께 해주신 문원 임효빈 작가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견딤의 시간을 지나 온 새싹들처럼 전통 혼을 잇는 명인회 회원들은 전시회를 통해 전통 혼의 새싹을 틔워주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더러 무관심과 소외에 잊힘이라는 긴 동면을 훌륭한 작품으로 깨워 전통 예술 거목으로 가는 출발에 함께 해주신 명인회 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전통이란 말은 누구나 쉽게 입에 올리지만 그 의미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쩐지 낯설게 여겨집니다. 어디에선가 들여온 새로운 것이 보다 멋스럽고 세련된 것이고, 우리의 옛것은 어르신들이나 즐기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명인회원들은 우리의 전통이 세계 어떤 문화보다도 아름답고 훌륭한 것임을 확인시켜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전통문화를 아끼는 것은 내 혈통과 가문의 대를 잇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명인회원들의 작품을 더 많은 이들과 즐기고, 느끼고, 알기를 희망합니다. 대전시민 모두 전통문화 사랑꾼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명인회원들의 전시는 끊임없이 계속될 것입니다.

전통혼을 이어가는 명인회 회원들의 전시회는 밀고 끄는 자연의 섭리와 같습니다. 보이고, 알리고, 이어가는 제대로의 전통을 펼쳐보이는 전시입니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서 마련한 도록은 새로운 지평을 연 의미있는 시도입니다.

보고 느끼던 것에서 나아가 배우고 알아가는 전시회로 만들어주신 명인 회원들과 오래오래 책꽂이에 꽂아둘 도록을 만든 이번 전시는 우리가 애쓴 만큼 모든 관람객들이 우리 것을 가슴에 새기는 기회가 됐을 것으로 봅니다.

세상은 넓고 배울 것도 많아 평생을 공부해도 부족하다고 합니다. 우리 것을 조금 더 알아간다면 스밈과 퍼짐, 확장의 기회가 더욱 풍부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 큰 세계로 나갈 승화의 바탕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배우고 알아가는 '도록 전시회'
전통문화 보존은 가문의 대 잇는것
스밈과 퍼짐, 확장의 기회 풍부해져
회원 작품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파
우리 것 가슴에 새기는 기회 됐으면


-회장님, 명인회에 대해 소개해주실까요?

▲5년 전 발족한 명인회는 대전을 기반으로 전통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명인회 회원들은 지금까지 25회에 걸쳐 꾸준히 전시를 해오면서 전통문화가 문화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전통문화가 공존할 수 있도록 회원들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서각, 한지공예, 단청, 규방공예, 전통한복, 지승공예, 전통붓공예, 압화, 전통도예, 쇠부리대장간, 천연염색, 전통자수, 옻칠공예, 민화, 서예, 대목장, 전통폐백, 수채화 명인들이 참여하고 있지요.

명인회 회원이 되려면 대학에서 그 분야 학문을 전공하거나, 그 분야에 뛰어난 재능이 있거나, 무형문화재거나 명인자격이 있거나 명인이 될 가능성이나 소질이 있는 사람이 참여하게 되는데요. 지금 명인회는 15개 분야에서 19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명인은 그쪽 분야의 달인들인데요. 왜 선조들이 그 분야를 만들었는지 이해를 하는 사람들에게 자격이 부여됩니다.

명인들은 옛것과 현대를 조화시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죠. 명인회는 한해에 10회의 전시를 한 적도 있는데요. 그렇게 자주 전시를 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알려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주 전시를 갖습니다.

명인회원들은 1년에 6차례 모여 친목을 다지고 전시계획을 구상하는데요. 올해 나온 도록을 더 보충하고 보완해 앞으로 누구나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공예미술지침서를 만드는게 최고의 꿈이죠.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동시에 알려줄 수 있는 지침서를 통해 세상에 명인회의 존재를 알린다는 데서 큰 자부심과 긍지를 느낍니다.

-회장님이 일평생 혼신의 힘을 다해 이뤄오신 서각(書刻)의 세계에 대해 설명해주시지요.

▲'각자(刻字)', 즉 '서각(書刻)'은 문자 이전에도 기록의 역할을 했지만 종이가 등장한 후에는 인쇄의 수단으로 인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죠. 수만년을 이어오고 있는 인류의 역사는 화석이나 벽화 등을 통해 추적 분석하는데요.

벽화나 암각화 등은 인류의 역사뿐 아니라 생활상과 환경까지 알 수 있어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수만년 전 그 시대의 유일한 기록방법은 바위에 새기는 것이었죠. 우리나라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나무에 제대로 된 글자를 새기게 된 시기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 목각판인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지는 등 사찰을 중심으로 최전성기를 이뤘죠. 백제시대 유물인 향로가 출토되면서 나무에 새기는 '목간'이 함께 발전했습니다. 글자를 반대로 새겨 인쇄방식에 따라 인쇄하는 과정을 '각자'라 하는데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각자장' 또는 '각수'라 합니다.

서각이 가장 발달한 나라는 단연코 우리나라이고 중국과 일본이 그 뒤를 잇습니다. 나라별로 각의 특징이 달라 우리의 각은 가장 난이도가 높고 예술성이 뛰어난 45도각의 양각을 쓰고, 중국은 음양각, 일본은 매우 날카롭고 공격적인 90도각의 양각을 써왔죠. 우리의 45도 수비형인 양각과 달리 외침을 많이 해온 일본의 공격성을 보면 그 나라의 문화는 민족의 혼이란 말을 다시금 실감하게 됩니다.

이 양각의 각도는 우리의 전통예술에서 다양하게 쓰였는데요. 건축 양식에는 지붕 처마의 곡선으로, 한복의 소맷부리나 버선, 그리고 일상에서는 인사를 하는 각도조차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각도를 썼으니 우리나라의 민족성이 얼마나 품이 넓고 공손한 예의를 갖춘 동방예의지국인지 알 수 있지요.

-회장님, 양각은 서각 기법의 으뜸이라지요?

▲예. 양각은 글자 모양만을 남기고 나머지 나무를 모두 깎아내는 과정에서 글자 획이 잘 깨져 오래 숙련되지 않으면 실패하기 일쑤랍니다. 난이도뿐만 아니라 양각의 각도, 깊이 등으로 예술성을 높이 평가 받지요. 그야말로 조각(미술)과 글씨(서예), 과학이 어우러진 수준 높은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회장님의 대표적인 서각 작품이 '천부경(天符經)'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까요?

▲서각이 전통예술로 자리잡아 꽃을 피우는 사이 기계가 인간의 영역을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장인의 손길에서 나오는 깊은 시간의 숨결을 어찌 자동화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겠는지요. 저는 모든 작품에 혼을 바쳐 작업을 합니다.

그중 우리 민족의 경전중 최고의 경전인 '천부경'은 81자에 담긴 엄청난 의미를 알기에 작품이 아닌 마치 신앙과 같은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천부경이 우리에게 전해진 과정 또한 진귀한 이야기들입니다.

천부경은 고려 말까지 전해오다 중국과 얽힌 이유로 금서가 되어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당시 최고인줄 알았던 중국의 역사와 사상을 뛰어넘어 우주의 창조와 원리가 담겨 있는 어마어마한 경전임을 중국이 시기한 때문인데요. 이는 중국에서도 진경(眞經)임을 인정했다는 반증이 되겠지요.

이후 책으로 전할 길이 없자 통일신라의 고운 최치원이 묘향산의 바위에 새겨 넣었다 합니다. 깊은 산중 바위에 긴 세월과 함께 묻혀버려 천부경의 실체는 없지만 그 존재를 아는 학자들은 끊임없이 연구를 이어갔죠.

그러던 1917년 천부경을 연구하던 계연수 선생에 의해 우연한 기회에 발견이 되어 드디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시원이라 할 천부경을 새기는 것은 시종일관 우리 선조를 모시는 것과 같은 신성함이었습니다. 그 옛날 목숨 걸고 천부경을 바위에 새겨 놓지 않았다면 우리는 영원히 뿌리를 모른 채 살아갈 것입니다.

-회장님, 서각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전해주시지요.

▲역사와 전통, 맥을 잇기 위해 우리의 조상들은 목숨을 바쳐왔습니다. 알려진 이보다 이름 석자 남기지 못한 누군가가 전하고 또 전해 오늘에 이른 우리의 모든 것들에 담긴 것은 민족혼입니다. 장인의 조각에는 바로 그 혼이 담겨 있습니다.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은 긴 세월 무뎌지며 세운 자존심이 밴 장인의 조각칼이고, 나무를 읽는 눈이고, 핏줄을 잇는 뿌리입니다.

날로 발전하는 문명과 디지털화에 세계가 하나인양 삭막한 도시의 풍경은 어디서든 있죠. 그런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아름다운 우리의 서각 작품을 만날 수 있다면 분명 따뜻한 정서가 살아있는 도시가 될 것입니다.

문득 초고층 빌딩 현관에서 멋들어진 전서체를 흘리고 있는 가죽나무의 향기를 발견한다면 지친 현대인의 마음도 잠시 편해지지 않을까요? 우리의 전통예술, 서각의 힘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독자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 이형우 회장은 누구?
1945년 대전 삼성동 출생. 작품 사진 작가로 10여년간 활동 후 서각을 배워 40년째 서각 작가로 활동. 2012년 시정 9호 '平易根民' 제작, 팔공산 일문정 현판제작, 충청남도 역사문화원 현판 제작, 대둔산 지장암 현판제작. 서대산 국사관 대형 천부경 제작. 보문미술대전 초대작가. 뿌리축제 대전, 제1회 효실천운동본부 기획초대전, 10월 문화의 달 서대전역 전시, 엑스포광장 전시 등 다수의 전시회 가짐.

대담·정리=한성일 취재4부장(부국장)
사진=이성희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도심 캠핑' 인프라...2024년 한층 나아진다
  2. [독자칼럼]국가 유산청 출범을 축하 한다.
  3. 월드비전 위기아동지원사업 전문 자문위원 위촉
  4. 2024 금산무예올림피아드 임원 출정식
  5. [인사]대전 MBC
  1. [인터뷰]91세 원로 시인 최원규 충남대 명예교수
  2. 연이은 직장 내 괴롭힘 논란에 한국가스기술공사 근절 대책 밝혀
  3. 대전서부경찰서, 여름철 자연재난대비 대책회의
  4. 산내종합사회복지관과 월드비전 대전세종충남사업본부 협약
  5. 월드비전 대전세종충남사업본부-대전M치과의원 복지증진 위한 협력

헤드라인 뉴스


세종시 `도심 캠핑` 인프라...올해 한층 나아진다

세종시 '도심 캠핑' 인프라...올해 한층 나아진다

세종시 '도심 캠핑' 인프라가 2024년 한층 나아진 여건에 놓일 전망이다. 2023년 홍수 피해를 입은 세종동(S-1생활권) 합강캠핑장의 재개장 시기가 6월에서 10월로 연기된 건 아쉬운 대목이다. 그럼에도 호수공원과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상설 피크닉장'이 설치되는 건 고무적이다. 17일 세종시 및 세종시설공단(이사장 조소연)에 따르면 합강캠핑장 복구 사업은 국비 27억여 원을 토대로 진행 중이고, 다가오는 장마철 등 미래 변수를 감안한 시설 재배치 절차를 밟고 있다. 하지만 하천 점용허가가 4월 18일에야 승인되면서, 재개장 일..

[WHY이슈현장] `충청의 5·18`, 민주화 향한 땀방울 진상규명은 진행형
[WHY이슈현장] '충청의 5·18', 민주화 향한 땀방울 진상규명은 진행형

5·18민주화운동을 맞는 마흔 네 번째 봄이 돌아왔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온전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5·18민주화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1980년 5월 민주화 요구는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뜨거운 열기로 분출되었는데, 대전에서는 그동안 교내에서 머물던 '계엄령 해제'와 '민주주의 수호' 시위가 학교 밖으로 물결쳐 대전역까지 진출하는 역사를 만들었다. 광주 밖 5·18, 그중에서 대전과 충남 학생들을 주축으로 이뤄진 민주화 물결을 다시 소환한다. <편집자 주> 1980년 군사독재에 반대하며 전개된 5·18민주화..

`27년만의 의대증원` 예정대로… 지역대 이달말 정원 확정
'27년만의 의대증원' 예정대로… 지역대 이달말 정원 확정

법원이 의대증원 처분을 멈춰달라는 의대생·교수·전공의·수험생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27년 만의 의대 증원'이 예정대로 진행될 전망이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7부(구회근 배상원 최다은 부장판사)는 의대교수·전공의·수험생 등이 보건복지부·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의 항고심에서 1심과 같이 '각하'(소송 요건 되지 않음)했다. 다만 의대생들의 경우 "집행정지를 인용할 경우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기각(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음) 했다. 법원 판단에 따라 의료계가 재항고할 것으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무성하게 자란 잡초에 공원 이용객 불편 무성하게 자란 잡초에 공원 이용객 불편

  • 대전 발전 위해 손 잡은 이장우 시장과 국회의원 당선인들 대전 발전 위해 손 잡은 이장우 시장과 국회의원 당선인들

  • 의정활동 체험하는 청소년 의원들 의정활동 체험하는 청소년 의원들

  • 불기 2568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요식…관불의식 하는 신도들 불기 2568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요식…관불의식 하는 신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