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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캠벨 수프>, 워홀, 1962 |
6월 6일부터 9월 27일까지 DDP에서 열리는 <앤디 워홀 라이브>는 국내 최대 규모 앤디 워홀 전시회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워홀의 고향 피츠버그에 있는 앤디 워홀 미술관의 소장 작품이 대거 공개된다. 유년시절과 자화상 사진부터 <캠벨 수프> 시리즈. 실크스크린 작품들과 영화까지 약 400여 점이 전시되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여러 군데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오브제는 역시 붉은 캠벨 수프였다.
매표소부터 전시관 내부까지 곳곳에 자리 잡은 캠벨 수프는 1960년대부터 워홀이 시작한 프로젝트 중 하나로, 그는 코카콜라 병이나 지폐 등 이미 유명한 상품을 실크스크린 판화로 제작하였다.
그가 선택한 작품 주제는 잡지나 슈퍼의 진열대에 있는 것으로 워홀은 그것을 그의 스튜디오인 ‘팩토리(The Factory)’에서 조수들과 함께 대량 생산했다. 페루스 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그는 캠벨 수프 깡통을 그린 37점의 회화를 전시했다. 이 시기에 제작한 작품들은 대량생산되어 번호가 매겨지는 미국 문화의 어떤 속성, 특히 넘쳐나는 상품과 유명인 에 대한 논평이었다. 예를 들어 <캠벨 수프> 그림은 상품화에 대한 점점 더 늘어나는 무관심함에 대한 언급이며, 마릴린 먼로를 그린 <마릴린>은 번지르르하게 포장된 미국 문화의 천박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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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릴린>, 워홀,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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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의 작품은 미술의 전통적인 개념과 일상생활을 통합하는, 대중미술의 파생물인 팝아트 전제를 입증한다. 팝아트는 상업주의와 소비주의에 깊이 물들은 사회에 관해 이야기한다. 워홀은 “대상을 너무 오래 바라보면 그것의 의미를 모두 잃게 될까봐 두렵다”고도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대량생산이 특징인 이 문화를 받아들여 기계를 이용해 작업하는 실크스크린으로 작품을 생산했다. 그는 작업실의 조수들도 작품 제작에 참여시킴으로써, 의식적으로 완성작에서 미술가의 손길을 지워버렸다.
팝아트로 방향을 전환하기 전에 삽화와 무대 디자인을 맡기도 했었던 워홀은 <첼시의 소녀들>, <나의 허슬러>와 같은 아방가르드 영화에도 손을 뻗어 다양한 영역을 개척했다. 또한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 와 가수 겸 배우, 모델인 니코와 함께 레코드 작업에도 참여했으며, 1969년에는 미디어와 오락문화에 관한 잡지 『인터뷰(interview)』를 공동 창립하기도 했다. 『인터뷰』는 현재까지도 발행되고 있다.
워홀은 생전에 이미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전설이 된 그는 동시대 문화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과 이를 시각화해내는 직관을 가지고 있었다. 워홀은 자신의 예술을 ‘세상의 거울’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기계이기를 원했던 워홀은 기계와 같은 미술을 만들어냈고 기계를 통해 무한히 복제되는 세계 속에서 그의 이미지도 명성과 함께 증식을 거듭하고 있다.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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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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