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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티 이미지 뱅크 |
“간다 간다 지하철을 타고 간다 종로에서 시흥까지~ 시청 앞을 지나가면 서울 역 내릴 사람 내리시오 ~ 자리 하나 비었으니 얼른 가서 편안하게 앉아보자 ~ 남영 지나 용산역에 도착하니 탈 사람들 줄을 섰네 ~
신문이요 신문 외치는 정다운 소리 ~ 내일이면 다시 만나게 될 저 사람들 ~ 표를 사고 표를 끊고 계단 밟고 서성대며 기다리다 ~ 짤랑대며 다가오는 지하철을 올라타고 떠나겠지~” <지하철을 타고>라는 가요의 가사이다.
검색을 해보면 왁스가 부른 동명의 노래가 곧 눈에 띈다. 그러나 이 글이 그와는 아무런 상관을 이루지 않는다. 대신 ‘곤주’라는 예명의 여가수가 부른 노래가 이 글에 부합되며 또한 개인적으로도 압권이란 느낌이다. 서울은 자주 가지 못한다.
그러나 이따금 상경하자면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다. 콩나물시루와도 같은 꽉 찬 지하철의 승객들은 기본이며 다들 뭐가 그리도 바쁜지 종종걸음 사람들 일색이다. 하여간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에서, 그것도 지하철에 올라 편안하게 앉아서 신문을 본다는 건 과연 가능할까 싶다.
더욱이 가뜩이나 두 손을 활짝 좌우로 펼쳐서 봐야 하는 신문은 커녕 손에 쏙 들어오는 아담사이즈의 에세이조차 읽지 않으려는 풍조가 만연한 즈음이니 말이다. 신문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마치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물고기와 물의 관계라는 뜻으로, 아주 친밀하여 떨어질 수 없는 사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 수어지교(水魚之交)처럼 공고화된 것은 소년가장 시절부터였다. 그러함에 벌써 50년이 가까워오는 장구한 세월을 기록한다.
당시 신문은 열차에서 하역(荷役)을 해서 천안역에 부려졌다. 그걸 신문사 별로 분류하는 아저씨들 뒤에 서 있다가 A신문 B일보… 이런 식으로 50부를 받아 가슴에 꼈다. 그리곤 역전을 뛰어다니며 신문을 팔았다.
이어선 그 즈음 역 앞에 있던 차부(터미널의 옛 명칭)의 출발 전 시외버스에도 올라가서 소리쳤다. “조간신문 나왔습니다. 신문이요, 신문~”
위에서 인용한 <지하철을 타고>라는 노래에선 ‘신문이요 신문 외치는 정다운 소리 ~’라며 자못 정겨움까지를 드러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신문을 다만 한 부라도 더 팔아야만 홀아버지와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부르짖었던 “신문이요, 신문~”은 당연히 절박한 목소리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동분서주하며 신문을 팔다보면 어느새 여명(黎明)도 얼굴을 환하게 세수하곤 밝은 아침햇살과 함께 빵긋 인사했다.
“신문은 다 판 겨? 그나저나 아침은 먹었냐?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 어서 아침밥 챙겨 먹어.” 어떠한 경우라도 신문을 꼭 한 부는 남겼다. 그리곤 그걸 집으로 가지고 갔는데 아버지가 먼저 보신 뒤, 내가 읽는 수순을 견지했다.
덕분에 중학교라곤 문턱도 넘지 못한 무지렁이였으되 몇 년이 지나자 신문에 등장하는 한자는 얼추 다 줄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지적능력이 발전했다.
바둑의 제왕 이세돌 9단과 로봇 바둑 기사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이 펼쳐져 세계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 바 있었다.
이후 뉴스로 나왔고 세인들의 인구에도 회자되었던 것이 알파고와 같은 로봇으로 인해 사라질 사람들 직업의 거론이었다. 이에 따르면 번역가와 기능공, 청소부와 운전기사가 ‘위험하다’고 했다. 이어 파일럿과 외과의사, 매표원과 은행창구 직원도 거론되었다.
웨이터와 기자 또한 이름을 올렸는데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막연한 추측일 뿐이기에 미래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다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어차피 인간의 직업이란 건 세월의 변화에 따라 그 궤(軌)를 같이 하는 것이란 사실일 게다.
과거 마차 타고 다니던 시절엔 예측조차 못 했지만 자동차가 생기면서 수많은 직업이 생겼듯 그렇게. 자동차는 우선 자동차 판매회사 직원을 만나 구입하는 순서를 거친다. 이어 운행하다가 고장 따위로 인해 자동차 수리점 직원과도 자주 만나게 된다.
수리점에선 또 자동차 부품회사와 거래를 하는 구조 역시 자동차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직업과 직장을 제공하는 셈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특정 여자 연예인이 광고시장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그러다가 모 예능프로에서 안중근 의사를 ‘긴또깡’으로 잘못 대답하는 바람에 인기가 추풍낙엽처럼 하락했다. 이에 따라 광고물량 역시 감소한 것으로 보이는데 여하튼 요즘엔 이세돌 씨가 광고모델로도 자주 얼굴을 비추고 있어 흐뭇하다.
특히나 요즘 선보이고 있는 공익광고에서 “저도 지는 것에 익숙한 선수인지라 이 말을 해주고 싶어요. ‘괜찮아, 넌 잘 하고 있어’(라고)." 라고 하는 멘트는 그 얼마나 시원하고 솔직한 말인가 싶어 금세 친밀감을 느끼게도 된다.
뜻한 바 있어 20년 전부터 습작을 해왔다. 14년 전부터는 시민기자와 리포터 등으로 본격적으로 글을 썼다. 작년엔 책을 발간했으며, 여세를 몰아 모 언론사의 취재본부장으로 발탁되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란 소문이 돌았는지 최근엔 또 다른 언론사에 객원 논설위원으로 위촉되었다. 한데 이건 모두 ‘신문의 힘’이었다. 50년 가까이 살가운 인연을 계속하고 있는 신문을 나는 지금도 손에 들고 있다. 나 또한 ‘잘 하고 있는 중’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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