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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지도자들이 결혼식에 참석하다>, 페리, 2009 |
예술가들은 특이한 성격이나 외모로 주목받는 경우가 일반인보다 많은 편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현존하는 예술가들 중 영국의 그레이슨 페리만큼 독특한 외모를 한 이도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이성의 옷을 입고 다니는 복장도착(크로스드레싱)으로 공식석상에서 항상 눈에 띄는 그는 그 작품세계마저 독특해 자연스레 감상자들의 눈길을 끈다.
그레이슨 페리는 어렸을 적 어머니의 간통으로 친아버지가 가족을 떠나고 의붓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의붓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숨어있던 지하실에서 그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이때부터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확보해 나가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여리고 섬세한 소녀로 인식하고 10대 때부터 여동생의 옷을 입기 시작한 페리는 ‘클레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여성적 자아를 갖게 되었다.
또한 집을 나간 아버지의 부재와 상실감을 달래고자 ‘알란 미즐즈’ 라는 곰인형과 깊은 교감을 나눴는데, 이때부터 이 곰인형에게 자신의 모든 남성성을 전가하고 새로운 자아로 인식하는 동시에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하고, 악을 물리치는 영웅, 또는 아픈 상처를 치유해주는 성스러운 성직자이자 종교로 인식하였다.
<세계의 지도자들이 결혼식에 참석하다> 속에서 보이는 낡은 곰인형이 바로 작가의 상상 속 ‘알란 미즐즈’다. 작품의 원제는
태피스트리, 초상화, 설치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 작품을 남겼지만 그가 유명해지게 된 것은 도자기 작품들 덕분이다. 멀리서 보면 다른 도자기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모양을 하고 있지만 독특하고 밝은 색을 표면에 칠해 놓았다.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면 예상치 못했던 아동학대, 매춘, 성폭력 등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사회 문제에 이르는 다양한 이슈를 거친 그림과 사진을 콜라주하여 도자기 위해 덧입혀 놓았다. <금빛 유령>에서는 두 손이 잘린 채 피를 뚝뚝 흘리고 있거나 무언가를 상실한 듯 공허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여자 아이들이 등장 한다. 그리고 목가적인 풍경과 대조적으로 작은 관들이 패턴처럼 화면 한편을 뒤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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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빛 유령>, 페리, 2000 |
도자기 위에 채색된 이미지는 가학적인 이야기를 충격적이지만 위트 있게 표현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페리는 2003년 영국의 권위 있는 예술상인 터너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장미와 하트를 예쁘게 수놓은 원피스 차림에 빨간 구두를 신고 공식적인 자리에 나타나는 그는 “내 예술은 어두운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통을 통해 치유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남성이면서도 여성 행세를 하고, 현대미술의 변방으로 밀려난 도예작업을 하며 저급하고 진부한 소재를 예술에 끌어들인 것에 대해 페리는 “스스로 규정한 '이류' 또는 '약자'라는 자기 정체성과 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자 옷을 입은 나 자신마저도 자신의 모든 것이라며 당당하게 내보이고 사랑하는 그의 용기는 더 이상 자신이 이류나 약자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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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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