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살롱] 예술 같지 않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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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의 명화살롱] 마틴 크리드_작업 No.227 : 켜졌다 꺼졌다 하는 전등

  • 승인 2016-09-13 11:35
  •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 <작업 No.227 : 켜졌다 꺼졌다 하는 전등>, 크리드, 2000
▲ <작업 No.227 : 켜졌다 꺼졌다 하는 전등>, 크리드, 2000

‘시대를 앞서갔다’고 후대에 평가받는 작품들은 당대에 혹독한 시련을 거치곤 한다. 파격을 넘어 아예 기존의 예술 형식을 파괴하거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작품을 만드는 이들이 그렇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상의 <오감도> 연작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10여 년 전 영국에서도 발생했다. 2001년 영국의 최대 미술상인 ‘터너 상’을 받은 마틴 크리드의 설치미술 작품이 한바탕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빈 벽으로 둘러싸인 갤러리에서 5초 간격으로 불이 켜졌다 꺼진다. 그것이 바로 마틴 크리드의 227번째 작품이자, 터너 상 수상작이다. 언론에서는 ‘미술관의 텅 빈 방은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며 비난했지만 작가가 노린 바가 바로 이것이었다. 마틴 크리드는 미술관을 구성하는 ‘미술품’이라는 구성 요소를 제거하고 ‘미술품’의 배경으로만 쓰이던 ‘벽’에 감상자들을 집중시켰다. 미술관이 미술품의 전시 공간이 아닌 미술품 자체가 되었고, 감상자들은 미술품의 전통적 개념과 의미, 그 목적 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또한 이 작품은 삶에 대한 보편적인 비유를 담고 있다. 불이 켜졌을 때는 탄생을, 불이 꺼졌을 때는 죽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크리드는 다다이즘에서 출발해 초현실주의, 팝아트, 이후 개념주의를 토대로 작업해 왔다. <작업 No.227 : 켜졌다 꺼졌다 하는 전등>은 미니멀리즘과 개념주의를 재치 있게 비틀어 현대 미술의 오만함을 비판했다.

크리드의 작품에는 재치가 빛나는 작품들이 많은데, <작업 No.1686>은 자동차 뒷유리가 사람을 센서로 감지하면 문과 본네트를 포함한 모든 것이 열리고 라디오까지 켜지는 설치미술이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자동차에 호기심을 가진 관객이 다가가면 그때 진가를 발휘하는 역동적인 작품이다. 이외에도 전시장을 빙빙 도는 <작업 No.1092 : 엄마들>은 ‘Mothers’라는 네온 조형물이 전시장에 들어온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크리드는 작품 자체에 큰 의미를 담기보다는 ‘관객과의 소통’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 <작업 No.1092 : 엄마들>, 크리드, 2011
▲ <작업 No.1092 : 엄마들>, 크리드, 2011

2009년 우리나라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렸던 ‘마틴 크리드 개인전’에 갔을 때는 작가의 작업세계를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조각, 설치, 네온, 드로잉, 사운드, 필름 등의 다양한 작품이 관객들을 찾았다. 전시 오프닝에서는 'Work No. 673'을 감상했다. 미술과 음악에 경계를 두지 않는 작업으로서 지휘자와 18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에 의해 베이스 드럼(bass drum)의 최저음(note)에서 시작해 가장 높은 음까지 악기는 크기에 따라 일렬로 위치해 연주된다. 관람객들은 콘서트홀의 일방적 감상구조를 벗어나 설치작품 사이를 연주시간 동안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체험할 수 있었다.

최소한의 작업으로 최대한의 사유를 이끌어 내는 마틴 크리드는 한껏 과장된 현대미술에 반기를 들어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작품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소재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작가만의 치밀한 구성법으로 돋보인다. 그는 반복적인 일상의 삶이 예술과 하나가 되는 작업을 한다. 개념적인 엄격함을 지니고 있음과 동시에 감동적이며 단순하다.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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