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 그렇게 외로우셨나요?

  • 오피니언
  • 우난순의 필톡

[우난순의 필톡] 그렇게 외로우셨나요?

  • 승인 2016-11-17 09:54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 그림= 우난순 기자
▲ 그림= 우난순 기자

고립무원(孤立無援). ‘고립되어 구원받을 데가 없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님의 상황이 이런 거겠죠.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요. 당신이 느끼는 이 처참한 감정은 처음이 아니었을 겁니다. 1974년 8.15 광복절 행사에서 어머니가 문세광의 총탄에 돌아가시고 79년 심복 김재규한테 아버지마저 잃었으니까요. 당신은 자서전에서 당시의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가까이에서 비위 맞추고 아부하던 사람들이 외면하고 만나는 것조차 꺼렸다고요. 그때 느낀 배신감과 분노의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웠다고 했지요. 그게 세상사 인심입니다.

사실 어머니의 품만큼 따스하고 마음의 위안이 되는 건 없죠. 저도 어릴 적 학교 갔다 집에 오면 엄마부터 찾았으니까요. 낮에 졸려 잘 때도 바느질하는 엄마 옆에 바싹 붙어 엄마 냄새를 맡으며 자곤 했죠. 그렇게 믿고 의지하던 어머니가 비명횡사했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겠어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음을 충분히 짐작합니다. 구중궁궐에서 이 나라 절대권력자인 아버지의 보호아래 공주처럼 살던 분이었으니까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의존했겠지만…
 
  거기다 아버지마저 그렇게 되자 당신의 불안과 두려움은 극에 달했을 겁니다. 믿었던 사람들은 다 떠나고 그 빈틈을 이용해 최태민 부녀가 비집고 들어와 당신을 현혹했습니다. 아마 그런 상황에선 누구라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어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그렇지만 당신은 어느정도 분별력이 있으면 지금 이 지경이 되진 않았을 겁니다. 동생인 근령, 지만씨가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탄원서까지 올리며 ‘최태민을 엄벌하고 언니를 구출해 달라’고 까지 했는데요.
  그것도 모자라 최태민의 딸 최순실이 바통을 이어받아 당신을 꼭두각시, 아바타로 만들어 국정을 농단했으니 누가 당신 편을 들어주겠습니까. 당신은 최순실과의 관계가 ‘순수한 마음’으로 ‘신의’를 지킨 결과라고 하시지만, 톡 까놓고 말해서 최순실한테 농락당한 것밖에 안됩니다. 명성황후를 등에 업고 온갖 패악을 저지른 무당 진령군이나 제정 러시아 말기 황제 니콜라이 2세 밑에서 전횡을 일삼은 라스푸틴과 다를 게 뭐 있나요.

이제와서 이런 말씀 드리는 건 아무 소용 없지만 당신은 정치에 발을 들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냥 ‘비운의 공주’로 연민과 동정을 받으며 조용히 살았더라면 그레타 가르보처럼 신비의 대상으로 남았을 지 모릅니다. 사악한 인간들에 떠밀려 정치에 발을 들여놨어도 어쨌든 선택은 당신이 했으니까 남 탓 하지 마십시오.

  당신을 뽑은 국민들 잘못도 큽니다. 목욕탕에 가면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 얘기를 듣게 되는데요. 그분들은 “우리 불쌍한 박근혜 대통령을 야당 놈들이 왜그렇게 괴롭히는 겨”, “국민들 잘살게 하려고 얼마나 애 쓰는데…”라며 당신에 대한 무한 사랑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민낯이 까발려진 지금, 국민들의 배신감이 더 큰 겁니다. 당신이 대통령으로서 능력이 없다는 걸 국민들은 왜 진작에 알지 못했을까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남편, 자식이 없으니까 적어도 가족들의 비리는 없겠다 싶었던 게지요.
 
 미련 버리고 내려오는 게 최소한의 살 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회견 하는 걸 볼 때마다 전 참 부러웠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에 거침없는 달변으로 자신의 의견을 좔좔 풀어내는 걸 보며 우리 대통령은 왜 늘 종이에 쓰여진 것만 읽고 바로 내려오는 걸까, 안타까웠습니다. 최순실이 그렇게 시켰나요? 아니면 당신의 부족한 능력을 들킬까봐서요?

  국격을 땅에 떨어뜨리고 국민을 분노케 한 당신을 보면서 진정한 의리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있습니다. 소나무, 잣나무 몇 그루와 집 한 채가 덩그러니 있는 황량한 그림 말입니다. ‘세한도’의 탄생 배경은 가슴 뭉클합니다. 정쟁에 휘말려 제주도로 유배간 추사는 절친한 친구와 아내를 저 세상으로 보낸 것은 물론, 평소 교분이 있던 사람들도 자신을 멀리해 외로움이 뼈에 사무쳤습니다. 그런데 역관(지금의 통역관) 이상적은 추사가 유배 가기 전이나 유배간 뒤나 언제나 똑같이 대했습니다. 추사는 감동을 받아 걸작 ‘세한도’를 그렸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최순실의 의리와 이상적의 의리가 같을까요?

  ‘고립무원’. 박근혜 대통령님! 당신은 지금 아무한테도 도움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지금 여기서 진정으로 외로움과 불안, 두려움을 극복하고 독립된 자아로 설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대통령으로서 ‘무능하고 자질 없다’는 말을 듣는 건 수치 아닙니까. 더 이상 허약한 정신으로 누구의 아바타로 살지 마십시오. 더 이상 그 자리에 미련을 갖지 마십시오. 그것이 최소한 당신을 살리는 길입니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45년 방치 공간의 변신…김해 수안마을 수국축제 열린다
  2. 국세청, "국세 징수 넘어 통합 재정수입 기관" 도약
  3. [대전의 숨은 이야기] 대전에서 연시은 따라잡기! '약한영웅 Class 2' 성지순례
  4. 반도체 생산 고순도 중수소암모니아 국산화 기술 개발
  5. 대전 초등생 피살사건 유족 손배소 일부 승소…명재완·대전시 공동배상
  1. 대전·세종 교권보호위원회 평교사위원 '0'명
  2. "망상 등 청소년 조기정신증, 조기 개입 효과 뚜렷"
  3. 이태호부터 황인범까지 대전 출신의 월드컵 영웅들
  4. [한화에어로 참사] 화약 찌꺼기 제거 중 폭발 가능성에 경찰 "확인 필요"
  5. 충청권 지역의사제 사실상 '수시 전형'…의대 입시전략 바뀐다

헤드라인 뉴스


충청권 벤처 잠재력 최대인데… ‘돈·사람’은 여전히 서울로

충청권 벤처 잠재력 최대인데… ‘돈·사람’은 여전히 서울로

충청권 벤처기업 생태계가 수도권을 제외한 비수도권 중에서 가장 높은 잠재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자본과 인재, 투자 등의 벤처 생태계 핵심 인프라는 여전히 수도권에 집중돼 지역별 잠재력을 고려한 균형성장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11일 벤처기업협회가 발표한 '지역 벤처기업 현황 및 지원정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 중 벤처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0.2%로 집계됐다. 권역별로는 수도권(11.5%)과 충청권(10.7%)이 평균을 웃돌았으며, 이 외의 비수도권 지역은 6~9%에 머물렀다. 특히..

대전 출신 황인범 체코전서 `멀티 공격포인트`, 북중미 월드컵 첫승 견인
대전 출신 황인범 체코전서 '멀티 공격포인트', 북중미 월드컵 첫승 견인

2026 북중미 월드컵에 나선 태극전사들이 대전 출신 황인범(페예노르트)과 오현규(베식타시)의 후반 연속골로 체코에 역전승을 따냈다. 홍명보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2일(이하 한국시간) 멕시코 사포판의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1차전에서 체코에 2-1로 승리했다. 한국은 후반 14분 라디슬라프 크레이치(울버햄프턴)에게 먼저 실점했으나 후반 22분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의 도움에 이은 황인범의 동점 골, 후반 35분 오현규의 역전 골로 승점 3을 챙겼다. 특히 황인범은 오현규의 골을 돕기도..

충청권 지역의사제 사실상 `수시 전형`…의대 입시전략 바뀐다
충청권 지역의사제 사실상 '수시 전형'…의대 입시전략 바뀐다

2027학년도 지역의사제 시행을 앞두고 충청권 의대 입시의 무게중심이 수시로 이동하고 있다. 충북대를 제외한 충청권 6개 의대가 지역의사제 모집 인원을 전원 수시에서 선발하기로 하면서 수험생들의 입시 전략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11일 교육계와 종로학원에 따르면 지역의사제는 지역 의료인력 확충을 위해 일정 기간 해당 권역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할 인재를 선발하는 제도로, 2027학년도 대입부터 처음 도입된다. 충청권에서는 충북대 39명으로 가장 많고 충남대 27명, 순천향대 18명, 단국대 천안캠퍼스 15명, 건국대 글로컬캠퍼스 7명, 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

  • ‘더 빠르게 접근한다’…무인수난구조보드를 활용한 인명구조 ‘더 빠르게 접근한다’…무인수난구조보드를 활용한 인명구조

  • ‘건강한 치아를 위해’ ‘건강한 치아를 위해’

  • 북중미 월드컵 개막 D-2…‘어디서 응원하지?’ 북중미 월드컵 개막 D-2…‘어디서 응원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