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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 2>, 마티스, 1909~1910 |
평소에 '몸치'라며 춤추는 데 나서질 않던 사람도 흥이 오르면 절로 어깨를 들썩이거나 손가락을 까딱인다. 심지어 주변의 시선이나 스스로의 부끄러움도 잊고 온전히 자기 춤에 취하기도 한다. 그래서 필자는 춤이 인간의 본능을 표출하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예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어떤 도구도 필요 없이 흥겨운 마음과 몸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나 발휘할 수 있는 예술 아닌가. 이 춤의 원시성을 가장 잘 나타낸 화가 중 한 명이 바로 야수파의 거장, 마티스다.
마티스를 비롯한 야수파 화가들의 거칠고 강렬한 원시주의적인 작품들은 처음엔 평론가들의 조롱을 받았다. '야수파'라는 이름 역시 조롱조의 성격이 강했으나, 야수파 화가들의 명성이 높아지고 작품성을 인정받으면서 야수파는 하나의 미술 사조를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잡았다.
마티스가 야수파 화가로서 국제적인 입지를 굳히고 있을 때, 마티스의 후원자였던 세르게이 슈추킨이 자신의 대저택에 장식할 두 점의 작품을 의뢰하는데, 그 두 점의 작품이 <춤1>과 <춤2>다.
<춤2>는 빨강, 초록, 파랑 3가지 색만으로 작품을 완성시킨 점이 가장 큰 특징으로 손꼽힌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어떠한 의미나 뛰어난 묘사가 아닌 강렬한 색채다.
나무도, 강도 없는 그림 속의 공간에는 원을 이루며 춤을 추고 있는 다섯 인물들만 존재하고 있을 뿐 어떤 서사적 의미도 찾아볼 수 없다. 붉은색이 주는 원초적인 힘은 춤 자체에 에너지를 더하고 있다. 선도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그림자도 없어 원근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여자의 웃는 얼굴, 나체임에도 부끄러움 따윈 없이 춤추는 사람들. 다들 흥겨움에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마티스는 '춤'이라는 인간의 본능적이고 순수한 행위의 아름다움을 강렬한 원색으로 대담하게 표현했다. 이들이 왜 춤을 추는지 궁금할 법도 하지만 그림 속 붉은 물결을 보고 있자면 그러한 의문보다는 색채의 아름다움, 춤의 역동성에 빠져들어 의문은 뒷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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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 마티스, 1910 |
비슷한 색채를 사용했지만 느낌이 확연히 다른 작품으로는 <음악>이 있다. 이 역시 <춤> 시리즈와 동시에 슈추킨의 의뢰를 받아 만든 작품이다. <춤> 시리즈 속 역동적인 인물들과 다르게 여기에서는 가만히 앉거나 서서 악기를 다루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마티스가 제시한 음악의 이미지는, 궁정 속 화려한 음악이 아니라 원시시대에나 있었을 법하다. 갈대피리와 조잡한 깽깽이, 살결을 두드리는 손장단 등은 연극과 붓, 금관악기와는 너무도 달랐다. 특히 이때 당시에는 사회 각계각층의 문화생활에 음악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모스크바와 페테르스부르그에서 음악은 가장 뛰어난 예술로 각광받고 있었다. 각종 사회적 모임의 필수요소였던 화려한 현대 음악과 대조적으로 마티스는 음악의 원초적인 성격을 노출시킨 것이다.
마티스는 색채에서 에너지를 발견했다. 색깔을 선택하는 것은 음악에서 악기를 고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색채에는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림에서도 음악에서처럼 음색을 잘 보존하는 게 중요하다." 음악에서 장조·단조를 태양과 그림자에 비유하기도 한 마티스는 각각의 음이 모여 화음을 이루듯 그는 그림에서도 색채가 한데 어우러진 앙상블을 만들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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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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