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므파탈 명화살롱] 히틀러까지 사로잡은 은막의 미녀

  • 문화
  • 백영주의 명화살롱

[팜므파탈 명화살롱] 히틀러까지 사로잡은 은막의 미녀

[백영주의 팜므파탈 명화살롱] 2. 마를레네 디트리히

  • 승인 2017-07-05 00:01
  •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 영화 <모로코>(1930)에서 매니시 룩을 입은 마를레네 디트리히
▲ 영화 <모로코>(1930)에서 매니시 룩을 입은 마를레네 디트리히


[백영주의 팜므파탈 명화살롱] 2. 마를레네 디트리히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특정한 신체부위에 고액의 보험을 드는 것이 지금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1940년대만 해도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다. 독일 출신의 할리우드 배우 겸 가수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본인의 목소리와 양 다리에 각각 100만 달러씩의 보험을 들었다.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넘어오며 더 빛났던 허스키한 목소리와 중년을 넘어서도 유지했던 늘씬한 두 다리는 그의 팜므파탈 이미지 구축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첫 직업은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이후 카바레 가수, 연극의 조연 배우 등을 전전하다 뒤늦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1929년 조셉 폰 스턴버그의 영화 <슬픈 천사>에서 존경받는 교사 때문에 몰락하는 관능적인 카바레 가수 ‘롤라’를 연기하면서부터다. 스턴버그 감독과는 쭉 6편의 영화를 함께 찍었는데, 이때 남자들을 유혹해 파멸시키는 파괴적인 그녀의 영화 속 이미지를 굳혔다. 나른하고 섹시한 제스처와 허스키한 목소리, 그리고 남성용 파티복을 입고 여성과 키스하는 등 모호한 성 정체성 역시 그녀의 매력을 더욱 배가시켰다. 이때 게리 쿠퍼와 찍은 <모로코>는 두 주연 배우를 모두 스타덤에 오르게 했고, 그가 영화 속에서 입고 나온 매니시 룩은 지금까지도 패션계에서 화자 되고 있다.

국경을 막론하고 많은 남자들이 그에게 빠져들었으며, 이는 나치의 수장이었던 히틀러에게도 해당됐다. 하지만 반 나치주의자였던 마를레네는 정부가 되어 달라는 그의 요청을 단호히 거절하고 급기야 1939년에는 그의 복귀 명령을 무시한 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에는 전쟁 채권을 홍보하고, 전선 위문공연을 다녔다. 전쟁이 끝나고 이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을 받기도 했다.

▲ 영화 <상하이 특급>(1932)에 출연한 마를레네 디트리히
▲ 영화 <상하이 특급>(1932)에 출연한 마를레네 디트리히

그가 전선에서 부른 노래 중 가장 잘 알려진 노래는 <릴리 마를렌>이다. 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5년 젊은 군인이 애인 릴리를 생각하며 보초를 서다가 잠시 마주친 간호사 마를렌에게도 설렘을 느낀 것에서 노래는 시작됐다. 청년은 그날 침대에 누워 두 여인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다 둘을 한데 묶어 시를 썼는데, <릴리 마를렌>은 그 시에 곡을 붙여 나치의 군가 작곡가가 만든 노래다. 나치가 만든 군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노래는 다양한 언어별 가사가 번역되면서 유럽 전역에 퍼졌고, 프랑스와 영국군 병사들의 애창곡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계에서는 <악마는 여자다>를 끝으로 스턴버그와 결별한 그는 1939년 <사진(沙塵)>에서 독특한 매력을 뽐내지만 예전만큼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배우로 성공하기 전에 올랐던 카바레 무대로 다시 눈을 돌린 그는 1950년부터 약 20여 년간 세계 최대 카바레 쇼의 진행을 맡았다. 젊은 시절의 몸매를 70대에도 유지하는 등 언제나 그에게 주어진 아름다운 이미지를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1975년에는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와 남편과 사별하는 등 불행을 맞았다. 1979년 데이빗 보위와 함께한 <오직 지골로뿐>의 촬영과 주제가를 부른 것을 끝으로 연기 인생을 마감하고 칩거에 들어갔으며, 1992년 90세를 일기로 숨졌다.

주목받았던 영화 속 배역들과 마찬가지로 실제 삶 속의 그녀 역시 남편과는 40여 년을 별거하며 수많은 이들과 염문을 뿌리는 등 화려한 남성 편력을 뽐냈다. 하지만 스타로서의 당당한 자세와 뛰어난 자기관리, 국적까지 바꾼 정치적 소신 역시 그의 매력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았나 싶다.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유명무실한 대전시·교육청 청소년 도박 중독 예방·치유 조례
  2. GM세종물류 노동자들 다시 일상으로...남은 숙제는
  3. “정부 행정통합 의지 있나”… 사무·재정 담은 강력한 특별법 필요
  4. 성장세 멈춘 세종 싱싱장터 "도약 위한 대안 필요"
  5. 한국효문화진흥원 설 명절 맞이 다양한 이벤트 개최
  1. 충남대병원 박재호 물리치료사, 뇌졸중 환자 로봇재활 논문 국제학술지 게재
  2. [사설] 김태흠 지사 발언권 안 준 '국회 공청회'
  3. 지역대 정시 탈락자 급증…입시업계 "올해 수능 N수생 몰릴 것"
  4. 으뜸운수 근로자 일동, 지역 어르신 위한 따뜻한 나눔
  5. 무면허에 다른 이의 번호판 오토바이에 붙이고 사고낸 60대 징역형

헤드라인 뉴스


지방선거 앞 행정통합 블랙홀…대전 충남 등 전국 소용돌이

지방선거 앞 행정통합 블랙홀…대전 충남 등 전국 소용돌이

6·3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국 블랙홀로 떠오른 행정통합 이슈에 대전 충남 등 전국 각 지자체가 소용돌이 치고 있다. 대전시와 충남도 등 통합 당사자인 광역자치단체들은 정부의 권한 이양이 미흡하다며 반발하고 있는 데 시민단체는 오히려 시민단체는 과도한 권한 이양 아니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기에 세종시 등 행정통합 배제 지역은 역차별론을 들고 나왔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10일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열고 전남·광주, 충남·대전, 대구·경북 등 3개 권역의 행정통합 특별법과 지방자치법 개정안에 대한 병합 심사에 돌입했다. 이..

충청권 상장기업, 시총 211조 원 돌파 쾌거
충청권 상장기업, 시총 211조 원 돌파 쾌거

국내 메모리 반도체 업황의 호조세와 피지컬 AI 산업 기대감 확산으로 국내 증시가 최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충청권 상장사의 주가도 함께 뛰고 있다. 특히 전기·전자 업종에서의 강세로, 충청권 상장법인의 시가총액은 한 달 새 40조 1170억 원 증가했다. 한국거래소 대전혁신성장센터가 10일 발표한 '대전·충청지역 상장사 증시 동향'에 따르면 2026년 1월 충청권 상장법인의 시가총액은 211조 8379억 원으로 전월(171조 7209억 원)보다 23.4% 증가했다. 이 기간 대전과 세종, 충남지역의 시총은 14.4%, 충북은..

[독자제보] "폐업 이후가 더 지옥" 위약금에 무너진 자영업자
[독자제보] "폐업 이후가 더 지옥" 위약금에 무너진 자영업자

세종에서 해장국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던 A 씨는 2024년 한 대기업 통신사의 '테이블오더(비대면 자동주문 시스템)' 서비스를 도입했다. 주문 자동화를 통해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고 매장 운영도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계약 기간은 3년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테이블오더 시스템은 자리 잡지 못했다. A 씨의 매장은 고령 고객 비중이 높은 지역에 있었고 대다수 손님이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았다. 주문법을 설명하고 결제 오류를 처리하는 일이 반복되며 직원들은 '기계를 보조하는 역할'을 떠안게 됐다. A 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줄지은 대전·충남 행정통합 반대 근조화환 줄지은 대전·충남 행정통합 반대 근조화환

  • 대전·충남통합 주민투표 놓고 여야 갈등 심화 대전·충남통합 주민투표 놓고 여야 갈등 심화

  • 설 앞두고 북적이는 유성5일장 설 앞두고 북적이는 유성5일장

  •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 촉구하는 대전중앙로지하상가 비대위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 촉구하는 대전중앙로지하상가 비대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