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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조년 영정/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이장경(李長庚)이라는 분이 살았는데 성주이씨(星州李氏)의 12世孫이며 고려 충렬왕 때 사람이다. 호장(戶長)을 지내다가 성산부원군(星山府院君)에 추증되었다.
당시는 고려 때 (서기 1270년경)이라 환갑(61세)까지 살기도 힘들어 61세가 되면 장수했다고 잔치를 열던 시절이라 아들이 태어나자 오래도록 백년 넘게 살라고 이름을 백년(百年)이라 지었다. 마침 성씨가 이(李) 씨라서 백년이 아니라 “이 백년”이 된다.
둘째아들이 태어났다. 둘째의 이름은 무어라고 지으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첫째가 백년(百年)이니까 백년천년 오래오래 살라고 둘째의 이름은 천년(千年)으로 정했다. 이(李)씨 이니까 “이천년”이 된다.
세 번째 아들이 또 태어났다. 첫 아들이 백년(百年)이고, 둘째아들이 천년(千年)이니까 당연하게 셋째아들의 이름은 만년(萬年)으로 이름이 정해져서 ‘이 만년(李 萬年)’이란 이름이 되었다.
네 번째에도 아들이 태어나자 이번에는 이름을 억년(億年)으로 지어서 ‘이 억년(李 億年)이라는 이름이 넷째아들 이름으로 확정 되었다.
다섯 번째에도 또 아들이 태어나서 이제는 조(兆)단위로 넘어가게 되니 다섯 번째 아들의 이름은 ‘조년(兆年)’ 이 되어야하기 때문에 ‘이 조년 (李 兆年)’ 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이름으로 쓰게 된다. 이백년, 이천년, 이만년, 이억년, 이조년 5형제가 모이면 이조 이억 이만 이천 이백년이 된다.
‘삼천갑자 동방삭’이라는 말이 있는데 갑자(甲子)년에 태어나서 다시 갑자년이 되려면 60년이 지나 61년째에 다시 갑자년이 돌아온다, 이것을 환갑(還甲)이라고도 하고 회갑(回甲)이라고도 하는데 삼천갑자는 갑자가 삼천 번 오는 것으로 18만년에 해당하는데 “동방삭(東方朔)”이라는 사람이 단명할 운명이었으나 기인(奇人)을 만나 삼천갑자 즉, 18만년을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오는데 그래봤자 1억년도 어림없으니 “이 억년” 이나 “이 조년”을 만나면 명함도 못 내밀 초라한 처지가 된다.
더욱 감탄을 금치 못하는 것은 이 백년, 이 천년, 이 만년, 이 억년, 이조년은 전설이 아니라 실제 우리나라에서 경북 고령지역에 살았던 실존인물이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다섯 형제가 같은 해의 같은 날에 과거시험에 응시해서 다섯 명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했다는 사실이다.
장남인 이백년(李百年)은 자(字)는 신여(信汝)이고 호(號)는 묵옹(黙翁)이며 1285년 충렬왕 11년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봉익대부 밀직사사(奉翊大夫 密直司事)를 역임하며 선정(善政)을 베풀었고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도를 강론하여 유교의 발전에 공을 세워 정절(貞節)이란 시호를 받았다.
둘째인 이천년(李千年)은 자(字)는 중여(仲汝)이며 호(號)는 락재(樂齋)이고 1285년 충렬왕 1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역임하였고, 봉선대부 전객부령을 지냈으며, 중국 원나라에 가서 벼슬을 하고 공을 세웠으며 고려조에선 원효(元孝)란 시호를 내리고 정승에 추증하였다.
셋째 이 만년(李 萬年)도 1285년 충렬왕 11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랐으며 넷째인 이 억년(李 億年)은 1285년에 역시 문과에 급제하고 개성유수(開城留守)를 지내며 많은 업적을 남겼고 다섯 형제 중에 막내인 이 조년(李兆年)은 역시 1285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은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역임하였으며 퇴계 이황(李滉)선생은 평하기를 고려 오백년 인물 중에 제1인자가 이 조년(李兆年)이라고 하였다.
어느 날 개성유수를 지내던 ‘이 억년’ 과 동생인 ‘이 조년’ 이 한강나루터를 지나다가 ‘이 조년’이 금덩어리 두 개를 주웠는데 형제사이에 서로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같이 걸어가던 ‘이 조년’ 이 품속에서 황금덩어리를 꺼내더니 한강물속에 멀리 던져버렸다. 미쳐 말릴 사이도 없이 강물에다 금덩어리를 던지는 동생 ‘이 조년’을 보고 형인 ‘이 억년’이 연유를 물으니 “지금까지 형을 믿고 형을 좋아했는데 황금 덩어리를 나누어 가지자 형님이 없었으면 금덩어리 두 개가 모두 내 것인데” 하는 못된 생각이 들기에 강물에 던져 버렸습니다.” 동생의 말을 듣던 형이 “실은 나도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서 ‘이 억년’도 품속에서 황금덩어리를 꺼내 망설임 없이 한강물에 던지고 형제애를 지켰다고도 전해진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데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듯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너무도 유명한 이 시조를 이 조년께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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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문 명인철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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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문 명인철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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