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식 칼럼]헌법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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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칼럼]헌법을 다시 본다

  • 승인 2017-09-06 10:30
  • 신문게재 2017-09-07 22면
  • 최충식 논설실장최충식 논설실장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4·19의거 및 5·16혁명의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유신헌법 전문이 오래된 기도문처럼 더듬더듬 살아난다. 헌법학을 공부하며 1장 1조부터 12장 126조까지, 또 부칙까지 꿰뚫어 외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방자치 암흑기인 유신시대 헌법에도 제10장에 지방자치 조항은 있었다. 제114조 ①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 제115조 ①지방자치단체에는 의회를 둔다. 그리고 두 조항 뒤에 후렴처럼 '~법률로 정한다'며 법률에 위임했다. 황당한 것은 이 규정들을 사문화하는 부칙 10조다. '이 헌법에 의한 지방의회는 조국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구성하지 아니한다.' 지방자치는 헌법의 체면을 살리는 한갓 장식품이었다.

지금 고치려는 1987년 9차 개정 헌법이 없었으면 조국통일은 그만두고 북한이 미사일을 쏴대는 판국에 지방자치가 발붙일 틈은 없었다. 30년 전에 제정한 헌법은 지방자치를 8장 117조, 118조로 이동시킨 것 말고는 유신헌법과 일점일획도 다르지 않다. 두 헌법 사이에 신군부의 8차 개헌을 거치고도 그대로였다. 지방자치 아닌 얼핏 지방통제용으로 보이는 이런 올드패션으로 조선조 이래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에 길들여진 우리가 신(新)중앙집권과 초(超)집중화의 벽을 뚫고 이만큼 자치를 하는 것도 용한 일이다.

'대한민국은 지방분권 국가이다', '지방정부의 자치권은 주민에 속한다'라고 기본권으로 못질하자는 지금이 그래도 호시절이다. 미국이나 스위스 연방 수준으로 하자거나 인구 500만명에서 2000만명의 초광역 지방정부를 세우는 구상도 나온다. 이에 따른 무리한 지역 합병은 고유한 풀뿌리 단체자치와 주민자치와 멀어진다는 것이 단점이다. 현실적으로 지방을 입법, 행정, 사법 전 영역에서 작은 독립국가처럼 운영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딱히 좋을 것도 없다.

남은 선택지는 분권이다. 주권재민과 자기지배의 원리가 뼈대인 지방분권형 개헌에 있다. 행·재정과 입법, 교육, 치안 등 각 부문에서 중앙정부 또는 수도권과의 기회 나눠 갖기다. 이 대목에서도 세종시가 중시된다. 헌법재판소는 '수도 서울'이 관습헌법인 듯이 판결했다. 그러려면 북한 헌법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는 평양이다'처럼 성문화해야 한다. 새 헌법에 '대한민국의 (행정)수도는 세종이다'라는 소재지 규정을 두면 좋겠다. 균형발전과 분권은 촌수가 가깝다.

현 집행부는 자율권이 적고 지방의회는 견제와 균형을 감당하기에 벅차다. 법적으로 지방이 낮고 힘이 약해 생긴 일이다. 일본의 지자체에서 독자적인 헌법 제정 움직임이 있는데 거기까지 갈 건 없고 법률의 효력을 발휘하는 조례 입법권을 주면 될 것 같다. 다음은 돈이다. 재원 배분 없는 자치입법, 자치행정, 자치재정, 자치복지 등 4대 지방자치권은 허상이다. 자치조직권 보장을 넘어 지방사법기관에 대한 주민통제장치 신설까지 제안한다. 7일 전북, 12일 대전, 19일 충북 등의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순회 공청회 때 심도 있게 논의되길 바라며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

지방자치단체 명칭부터 지방정부로 바꾸자는 것이다. 우리는 중앙정부 하청 단체의 '단체원'이 아니다. 30년만의 개헌 기회라지만 지방자치 규정은 45년 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력 나누기가 국가경쟁력에 왜 좋은지를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상징으로서의 지방자치, 은유로서의 지방분권은 역사 속으로 떠나보낼 때가 지났다. 유신헌법, 신군부 헌법을 갈아엎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10차 개정 헌법이 나오면 꼭 암송하고 싶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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