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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의 재료를 찾는 정치는 늘 시끄럽고 그때그때 다르다. 외계인의 눈이라면 우리가 수다쟁이 인류로 보일 것 같다. 영장류라도 침팬지가 노는 숲을 관찰해보면 정적이 감돈다. 존재를 알리고 화답하는 팬트 후트(pant hoot)가 사실은 전부다. 정치인이라는 영장류의 유별함은 정치를 공학적으로 다루는 정치공학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이 편리한 학문을 통합파라는, 분열파가 이름이 더 걸맞은 9명의 의원도 죽도록 사랑한다. 탈당과 복당으로 보수통합 빗장이 풀려 우파 혁신의 폭이 넓어졌다며 쌈 싸먹고 비벼먹고 말아먹는 언론도 어지간히 정치적이다. '보수대통합' 외마디로 사람이 그래서는 안 되는 아흔아홉 가지 이유를 싹 덮어버린다. 회군할 이유 단 하나는 지지율 반등 없는 정치판에서 살아남기다. 286일 전 무릎사죄를 하며 혼란에 빠진 당을 가차없이 등지고 떠나며 내세운 명분은 '개혁보수'였다.
바닥 모를 최순실 사태의 늪에서 '가짜 보수 배격'을 외칠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깨끗하고 따뜻한 신(新)보수 자격이 처음부터 결여된 수구 보수여서 그런지도 모른다. 분당의 정치로 급조한 정당이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해 정치지형에서 미아가 되거나 말거나, 문재인 정부의 독단을 견제하기 위해 합친다는 멋진 당위 속으로 숨어들면 그만이었다. 자신만 살면 그만이었다.
정치실험을 전혀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종이 위의 병법인 지상담병(紙上談兵) 같던 합당 시도가 있었다. 국민의당도 그 여파에 심정적으론 이미 깨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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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충식 논설실장 |
이런 식의 자가발전은 계속된다. '박근혜 제명'이라는 어찌 보면 가롯 유다의 행적을 보수 부활로 화려하게 분칠하기도 한다. 여전히 일부의 눈에는 웰빙 보수의 박근혜 없는 박근혜당 정도로 보이는데 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폭주'(?)를 못 막는 것은 바른정당으로의 도피 때문이 아니었다. 바른정당에서 유턴했다고 달라질 사실은 없다. 1990년 야당인 평화민주당은 70석으로 3당 합당의 민자당에 휘둘리지 않았다. 의석수 부족에 있지 않다. 분열은 보수 붕괴의 현상이지 원인이 아니다.
그런데 착각하고 "국민의 뜻을 받드는 철새라면 얼마든지 또 한다"며 천연덕스레 국민 뜻까지 변조하고 있다. 침팬지의 팬트 후트, 개들의 멍멍거림보다 고등(高等)할 게 없는 언어 행위다. 국정농단 세력이라는 뭇매가 두려워 은신했다가 차별화된 보수 재건의 주류인 듯 겉옷을 갈아입는 기회주의 또한 건강한 보수를 망치는 주범이었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라던 비스마르크의 명언이 한국에 와서 개고생이다. 정치가 핑계의 핑계를 찾는 가능성의 예술이더라도 정치적 위장전입자 9인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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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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