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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중국에 살고 있는 박 씨가 있다면 조선족이거나 대한민국으로 귀화하여 한국식 성씨로 개명한 것이다.
박씨(朴氏)의 본관은 각종 문헌을 종합해보면 모두 300여 본(本)에 이르지만 그중에서 시조가 누구이며 중시조가 누구인지 확실하고 현재 후손이 이어지고 있는 계파는 70여 본(本)이 있다. 여러 문헌들에 나타나 있는 성씨들을 보면 외국에서 우리나라에 귀화한 성씨가 130여 본(本) 있으나 박씨(朴氏) 만은 외래에서 귀화한 본(本)이 하나도 섞여있지 않은 순수 단일혈통을 자랑하며 박씨(朴氏) 는 본(本)이 어디이던 모두다 박혁거세 후손혈족임을 자랑한다.
박혁거세(朴赫居世)는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저해고 있으며 B C 69 년 3월 1일에 원시 부족사회의 여섯 지역 촌장(村長)들이 알천안(閼川岸)에 모여서 앞으로 나라를 맡아 백성들을 다스릴 왕을 추대할 것을 의론하고 정성을 다해 하늘에 제사를 올렸는데 홀연히 지금의 경주 남산지역인 양산(楊山)지역아래 나정(蘿井)수풀사이에서 무지개 같은 서광이 비쳐와 육촌 중에 고허촌장(高墟村長)인 소벌공(蘇伐公)이 양산기슭에 가보니 기이하게 생긴 용마(龍馬)한필이 무릎을 꿇고 앉아 절을 하는듯한 모습 앞에 큰 알 같기도 하고 박(瓢)같기도 한 것이 있어서 기이하게 여겨 조심스럽게 열어보니 그 속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모두가 신비롭게 여겨서 동천(東泉)에 가서 목욕을 시키니 온몸에서 광채가 나고 산새와 짐승들이 춤을 추고 경배하는듯하며 천지가 쾌청하고 일월이 청명하게 빛났다.
소벌공(蘇伐公)이 집으로 데려가 정성을 다해 키우니 유달리 영특하고 비범하여 12살 되던 해 BC 57년 (중국 前漢 孝宣帝 五鳳元年)에 4월 달 병진일(丙辰日)에 여섯 부족 촌장들이 왕으로 추대하니 국호를 서라벌(徐羅伐)이라고 하였으며 박처럼 생긴 알에서 나왔다고 하여 성씨를 박(朴)으로 정하고 온 세상을 밝게 빛나게 다스린다는 뜻으로 혁거세(赫居世)라 이름을 정하게 되었으며 위호를 거서간(居西干)이라 하였다.
그 후에 지증왕(智證王) 때에 국호를 서라벌(徐羅伐)을 신라(新羅)로 개칭하였는데 새로울 신(新)자와 서라벌(徐羅伐)의 가운데 글자 라(羅)자를 따서 "새로운 서라벌"이란 뜻의 신라(新羅)를 국호로 삼으니 신라왕국은 992년 동안 흥왕 융성하게 된다.
신라는 박혁거세(朴赫居世)와 석탈해(昔脫解), 김알지(金閼智)삼왕의 후손들이 992년을 통치해 왔는데 그중에서 박혁거세 후손들로 이어지는 박 씨 왕(朴氏 王)은 시조 왕 혁거세(赫居世)와 2대에 남해왕(南解王)차차웅, 3대는 유리왕(儒理王)이었으며 4대 파사왕(婆娑王), 5대 지마왕(祇摩王)과 6대에 일성왕(逸聖王)이 있고, 7대는 아달라왕(阿達羅王)이 있었다.
그 후로 석탈해 왕과 후손들, 김알지 왕과 후손들로 이어지다가 아달라왕의 후손으로 신덕왕이 912년에 즉위하여 경명왕과 경애왕까지 이어져 박씨(朴氏)는 모두 열 명의 왕을 배출한다.
박혁거세(朴赫居世)왕의 증손자인 파사왕(婆娑王)계열에서 분적(分籍)하여 새로운 본(本)으로 생긴 것이 영해박씨(寧海朴氏)와 강릉박씨(江陵朴氏)와 면천박씨(沔川朴氏)등이 있으며, 경명왕(景明王)의 아들이 아홉 명인데 이들 중에 여덟 명이 대군으로 봉해지고 이들이 각각 분적(分籍)하여 각기 본(本)이 되었으며, 다시 대군계열에서도 여러 계파가 본(本)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고령박씨(高靈朴氏)도 박혁거세의 29세손이며 신라 54대 왕인 경명왕(景明王)의 둘째아들 고양대군(高陽大君) 박언성(朴彦成)을 시조로 한다. 고령은 고양(高陽)과 영천(靈川)두 글자에서
앞글자만 따서 고령(高靈)으로 정하여 본(本)으로 삼은 것이다.
고성박씨(固城朴氏)도 경명왕의 아들 중에 넷째 아들인 죽성대군(竹城大君) 박언립(朴彦立) 계열이고, 군위박씨 (軍威朴氏)도 경명왕의 셋째 아들인 속함대군(速咸大君)박언신(朴彦信) 계열이다.
광주박씨(廣州朴氏), 구산박씨(龜山朴氏), 라주박씨(羅州朴氏), 노성박씨(魯城朴氏), 무안박씨(務安朴氏), 문의박씨( 文義朴氏), 문주박씨(文州朴氏), 반남박씨(潘南朴氏 등이 있다.
그러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신라의 시조왕인 박혁거세 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의 아홉 아들 중에서 제일 첫 번째 아들인 박언침(朴彦?)이 밀성대군(密城大君))으로 봉(封)하여 졌는데 밀성(密城)이 밀양(密陽)으로 바뀌었으며 그의 후손들이 박언침(朴彦?)을 시조로 하였으며 본관을 밀양(密陽)으로 하여 밀양 박 씨로 세계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박씨(朴氏) 성은 여러 갈래의 본(本)이 있고, 본에서 다시 분파가 있으나 모두 다 박혁거세(朴赫居世)왕을 태시조로 하고 있으며 경명왕계열 아홉 아들이 각각 분파하여 본(本)으로 나뉘어져 각각 그 본(本)의 시조가 되고, 국상공파(國相公派)가 있으나 그중에서 중심인 제일종가(第一宗家)는 경명왕의 맏아들 밀성대군(密城大君)파인 밀양박씨(密陽朴氏)가 박씨의 주류가 되는 것이다.
박혁거세(朴赫居世)왕이 신라를 세우고 왕으로 재위한지 39년이 되는 해에 바닷가에서 노모가 고기 잡는 그물을 잡아당기자 그물에 큰 상자하나가 걸려 나왔다. 이상하게 생각되어 그 궤를 열어보니 상자 속에서 사내 아기가 나왔다. 노모는 아기를 집으로 데려가 정성들여 길렀더니 아이가 매우 영특하고 건장하며 보통사람과 달랐다.
처음 바닷가에서 그물에 궤짝이 걸려 나왔을 때에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서 주변을 맴돌고 까치가 울음소리를 내며 쫒아 다녀서 아이의 성(姓)을 "까치 작(鵲)" 자에서 앞에 있는 석(昔)자를 따와서 석씨(昔氏)로 정하게 되었고, 상자(궤짝)속에서 벗어나 탈출해 나왔으므로 탈해(脫解)라고 이름을 짓게 되어 석탈해(昔脫解)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석탈해가 성장하여 사람됨이 뛰어나자 남해왕 5년에 왕은 딸을 석탈해와 혼인시키고 대보(大輔)라는 벼슬에 등용하였으며 유리왕은 유언으로 남겨 석탈해에게 왕위를 계승하도록 하니 신라왕조는 박혁거세의 박 씨 왕조에서 석탈해의 석씨 왕조로 이어지고 후에는 김알지 왕의 김 씨 왕조로 이어져서 박,석,김(朴,昔,金)을 신라삼성(新羅三姓)이라고 한다.
원종문 명인철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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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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