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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오직 김대중 전 대통령만이 유일하게 노벨 평화상을 받았는데 인권문제와 남북 관계개선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24년에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 121번지에서 아버지 김운식, 어머니 장금수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인 장금수 여사가 꿈속에서 큰 호랑이를 품에 안고 있는 태몽을 꾸고 임신하여 김해 김씨(金海金氏) 집안에서 큰 인물이 태어났다는 기대를 하며 이름을 큰대(大)자와 버금 중(仲)자를 써서 대중(大仲)으로 지었는데 큰 인물에 버금간다는 뜻이다.
일곱 살 되던 해에 초암(草庵) 김 연(金 練)선생이 운영하시던 덕 봉 서당에 입학하여 "천자문, 동몽선습, 사자소학" 등의 한학을 배우다가 "하의 보통학교"가 설립된 다음에 늦게 2학년으로 입학하여 요즘의 초등학생이 되었다. 1936년에 전라남도 목포로 집안이 이사를 하게 되자 "목포 공립 제일 보통학교" 로 전학을 와서 4학년으로 편입하여 졸업하였다.
1943년에는 "목포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남 기선주식회사"라는데 취직을 하여 직장생활을 하게 된다. 그 후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자 " 대양 조선공업" 의 경영을 맡아 한동안 운영을 해오다가 22세에 젊은 혈기의 김대중은 마침내 "건국 준비위원회" 목포지부 에 가입하여 운명적으로 정치인의 가시밭길에 입문하게 된다.
젊은 스물 두 살의 청년 김대중은 장면 부통령을 만나서 "민주당"에 입당하였는데, 신익희, 조병옥 박사, 장면 부통령 등이 주축이 되어 창당한 민주당은 이승만 대통령이 이끄는 자유당의 독재정권에 맞서 저항하며 남북통일을 주창하는 진보세력으로 험난한 가시밭길의 야당생활로 수많은 위험과 시련을 겪게 되었다.
김대중 보다 세 살 아래인 김영삼은 이승만 대통령의 비서출신으로 서울시장과 국방부 장관을 지낸 이기붕의 권유로 자유당의 추천을 받아 만26세 최연소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야당생활을 하던 김대중은 선거에서 세 번이나 떨어지고 말았다.
그를 따르고 지지하던 지인께서 말하길 이름이 큰대(大)자와 버금 중(仲)자인데 버금간다는 것은 일등이 아니라 일등과 맛 먹는, 일등과 비슷하다는 뜻이라서 선거에서 일등으로 당선 되지못하고 떨어진다는 말에 천주교 신자인 김대중은 이름을 고치기로 하고 한자를 버금 중자(仲)를 가운데 중(中)자로 "대중(大仲)"을 "大中" 으로 개명을 하고 나서 다시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국회의원에 다섯 번이나 당선되어 5선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야당 정치인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군부정권하에서 같은 야당청치인 김영삼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면서 수많은 탄압을 받았고, 가택연금을 당하며 옥고를 치르기도 여러 번이었고, 사형선고를 받아 목숨이 위태롭기도 했다.
일본에서 납치되어 우리나라와 일본사이 바다위에서 몸에 돌을 묶인 채로 바다 속에 수장되기 직전에 미국 정보당국의 도움으로 살아나기도 했지만 김대중은 대통령 선거에 세 번이나 출마했으나 낙선하여 정계를 은퇴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침내 1997년에 마지막으로 도전한 15대 대통령선거에서 야당후보로 출마해 대통령에 당선되어 전임 대통령이던 김영삼 정부 때에 "아이엠에프(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것을 "온 국민 금모으기 운동"을 전개하여 2년 만에 구제금융 전액을 상환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고, 2000년에 평양을 남북 분단 후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고, "남북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2000년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니 국가적인 큰 영광이며 그동안 군사정권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북한을 방문하여 남북관계를 평화분위기로 개선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2002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월드컵을 개최하여 4강 진출이라는 쾌거로 온 국민의 자긍심을 높였고, 부산에서 개최된 "부산 아시안게임" 에서는 북한응원단이 참가하여 남북한 화해분위기 조성을 힘썼다.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평화주의자 김대중 대통령은 2009년에 지병으로 인해 86세를 일기로 서거하여 서울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김대중에서 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던 민주당의 정신은 다시 문재인 현 대통령으로 이어지고, "평창 동계올림픽"을 주축으로 북측응원단과 고위급 방문단에 이어 우리 측의 특사가 북한을 방문하면서 4월에 "남북정상회담" 과 5월에 "미국과 북한" 의 정상회담이 발표 되면서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잘 이루어지길 온 국민은 기대한다.
어려운 여러 문제들이 산적해 있겠지만 온 국민의 염원과 열정으로, 지혜와 슬기로 한반도에서 비핵화가 항구적으로 실현되고, 전쟁의 위험을 종식하여 평화로운 상호 발전을 이루어가게 된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서 문재인 대통령도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꿈을 그려본다. 봄은 꿈꾸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원종문 명인철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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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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