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식 문화칼럼]TV 편성표 미리 보기

  • 오피니언
  • 문화칼럼

[최충식 문화칼럼]TV 편성표 미리 보기

  • 승인 2018-06-06 19:29
  • 수정 2018-06-06 22:07
  • 신문게재 2018-06-07 21면
  • 최충식 기자최충식 기자
652785378
[최충식 문화칼럼]현충일이 출근일이다. 조간신문들을 훑어본 후 현충일 TV 편성표를 확인한다. TV를 챙겨볼 만큼 시간이 넉넉지도 않고 늘 계획과 동떨어진 무작위 시청이지만 머리를 텅 비우겠다는 목적의식만은 또렷하다. 멍 때리기에 동원되는 다큐, 낚시, 애니메이션 등 채널 수백 개에는 제한이 없다.

재미의 영역도 다채롭다. 극장에서 놓친 영화 장면을 꺼내봐도 색다르다. 그렇게 '번지 점프를 하다'를 보는데, 왜 숟가락은 'ㄷ'이고 젓가락은 'ㅅ'이냐고 묻는다. '술'의 ㄹ이 ㄷ으로 바뀌는 활용과 '저+가락'의 사이시옷이나 맞춤법 4장 4절 29항은 들어본 적도 없다. "젓가락은 이렇게 집어먹으니까 'ㅅ' 받침 하는 거고, 숟가락은 이렇게 퍼먹으니까 'ㄷ' 받침 하는 거지. 이게 약간 'ㄷ'같이 생겼잖아. 모양이." 합성법에 무지한 인우는 태희에게(이병헌은 이은주에게) 엉터리로 둘러댄다.



웃음 포인트는 그다음이다. "너 국문과 아니지. 응? 아니지?" "그거 4학년 돼야 배워." 그런데 말이다. 종편 시사물 드립이 이런 유(類)의 대사보다 더 극적으로 웃기기도 한다. TV를 정보 간 빈틈을 메워 참여도를 높이는 쿨 미디어로, 라디오나 영화를 단일한 감각에 집중시켜 참여도를 낮추는 핫미디어로 나눈 마셜 매클루언. TV에 우호적인 이 문명비평가를 존경하지만 이럴 때 이 부분만은 정말 정반대로 뒤집고 싶다. 아닌 게 아니라 경제신문 TV의 주식·부동산 분석의 경우, 제한된 상담까지 곁들여 쌍방향 참여처럼 보일 때는 있다. 그러나 TV의 기본 베이스는 '맥락 없음'이다.

실제로 아침에 괜스레 확인한 TV 편성표의 FIFA 월드컵 러시아 2018 특집, 살림하는 남자들, 슈츠 13회, 추적 60분은 상호 연관성이 없다. TV가 사라져야 할 과학기술이라는 제리 맨더의 과격함에 동의하지 않지만 TV가 수동적 매체라는 견해에는 동조한다. 엊그제 어느 단체장 후보가 어린이집 아이들과 TV 끄기 캠페인을 진행하는 걸 봤다. 2세 미만 권장 시청시간을 O으로 설정한 미국 사례가 생각났다. YMCA 등의 TV 끄기 운동의 선의는 100% 이해하면서 100% 찬성하지는 않는다.



대체 불가능한 TV의 어떤 효능 때문이다. 가끔씩 얻어걸리는 슈츠, 어바웃 타임, 미스 함무라비, 훈남정음, 같이 살래요, 부잣집 아들, 검법남녀 같은 드라마는 내겐 맛있는 디저트다. 순서와 회차가 뒤엉킨들 전혀 지장이 없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국민여가활동 1위가 TV 시청인 이유는 이쯤에서 풀린다. 국민 각자에게는 존중받아야 할 다양한 시청 목적들이 있다.

멋지게 좀 표현해서, TV 시청은 '생각'에 굽이 높지 않은 '구두'를 신겨 세상을 보는 행위다. "7㎝ 위에서 내려다보면 세상이 바뀐다"는 키높이 구두여도 상관은 없겠다. TV 시청 때의 뇌파가 수면 때와 비슷하다는 바로 이 기막힌 기능으로 TV를 무한 사랑한다. 심심할수록 똑똑해지는 세칭 바보상자 앞에서 편성표는 또 무용한 것이었다. 거룩한 공휴일에 곱빼기로 일한 오늘은 무념무상의 푸른 초장으로 인도할 TV 시청시간을 두둑이 늘려도 될 것 같다.

543556708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관광+맛집+숙박' 3박자 갖춘 세종시 전의면에 오면
  2. "충청의 거목 고이 잠드소서" 이해찬 前총리 별세 지역與 '애통'
  3. 대전시립중고교 김병한 교장 '사회공헌 대상' 수상
  4. ‘민주당 킹메이커’ 이해찬 전 총리 베트남서 별세…향년 73세
  5. 100도 달성한 사랑의 온도탑과 무료배식의 긴 줄
  1. 강추위에 얼어붙은 인공폭포
  2. 사업비 규모 커진 대학 '라이즈'...지역사회 우려와 건의는?
  3. [건강]노인에게는 암만큼 치명적인 중증질환, '노인성 폐렴'
  4. 화학연, 음식물쓰레기 매립지 가스로 '재활용 항공유' 1일 100㎏ 생산 실증
  5. 대전소방, 구급차 6분에 한번꼴로 출동… 중증환자 이송도 증가

헤드라인 뉴스


`행정수도 설계자` 이해찬, 미완의 숙제 남기고 영면에…

'행정수도 설계자' 이해찬, 미완의 숙제 남기고 영면에…

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미완의 '세종시=행정수도' 숙제를 남기고 영면에 들었다. 행정수도와 인연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궤를 같이 한다. 2004년 참여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서 국토균형발전 정책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운명의 끈은 거기서 끊어지지 않았다. 1988년부터 서울 관악 을에서 국회의원 5선을 역임한 뒤 사실상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당원들은 2011년 당시 민주당 상임 고문인 이 전 총리를 소환했다. 결국 그는 2012년 세종시 출범 직전 진행된 제19대 총선에서 47.88% 득표율을 얻어 당선됐고, 2015년 3월 임..

대전 자영업 수 나홀로 사장님만 늘었다... 경기 한파 꽁꽁 얼었나
대전 자영업 수 나홀로 사장님만 늘었다... 경기 한파 꽁꽁 얼었나

경기 한파로 전국의 자영업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전은 오히려 자영업자 수가 늘어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직원을 고용해 매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보다 1인 가게와 무인점포 등 혼자 운영하는 '나 홀로 사장님'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26일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5년 취업자 중 대전 자영업자 수는 15만 5000명으로, 2024년(14만 1000명)보다 1만 4000명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 19가 발발하기 이전인 2019년 14만 2000명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지역 자영업자 수는..

대전시 "행정통합 항구적 법,제도 마련 안되면 주민투표 요구할 것"
대전시 "행정통합 항구적 법,제도 마련 안되면 주민투표 요구할 것"

대전시가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따른 정부의 대폭적인 재정·권한 이양을 요구하며, 미흡할 경우 주민투표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26일 대전시 주간업무회의에서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시민 목소리가 높아지면 시장은 시민의 뜻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면서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한 주민투표를 요구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항구적인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주민투표 요구가 높아질 수 있다. 단순한 물리적 통합으로 비치면 시민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며 "..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포춘쿠키 열고 ‘청렴의식 쑥’ 포춘쿠키 열고 ‘청렴의식 쑥’

  • 강추위에 얼어붙은 인공폭포 강추위에 얼어붙은 인공폭포

  • 100도 달성한 사랑의 온도탑과 무료배식의 긴 줄 100도 달성한 사랑의 온도탑과 무료배식의 긴 줄

  • 코스피, 코스닥 상승 마감…‘천스닥을 향해’ 코스피, 코스닥 상승 마감…‘천스닥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