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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김종필 전 국무총리. 연합뉴스 |
한국전쟁 직후, 정일권이 육군참모총장에 오를 때가 33살이었다. 정일권과 동갑인 박정희는 3년 뒤 준장이 된다. 개전 2년 뒤 참모총장에 발탁된 백선엽은 32세였다. 한국군 창설 초창기엔 20대에 '별' 다는 일도 흔했다. 1961년 5·16 쿠데타를 일으킨 육군 소장 박정희가 44세, 그 기획자 중령 김종필은 35세였다. 국리민복, 국태민안 같은 것 말고 5·16의 숨은 이유에는 '나이'도 있었다.
실제로 38세의 참모총장 장도영 등 새파란 장군들이 앞길을 막는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들이 사라진 무대에서 JP는 35세에 중앙정보부장이 되고 37세에 공화당 의장이 된다. 3선 개헌에 골몰하던 대통령 박정희에게서 "이담엔 임자 차례야"라는 말을 듣던 나이는 43세였다. 1971년 47세의 김대중이 신민당 대선 후보였을 때 45세의 김종필은 국무총리였다. 김영삼, 이철승과 40대 기수론의 주역이던 김대중은 74세에 대통령이 된다.
이후로도 40대 기수론은 심심찮게 불거졌다. "깜짝 놀랄 젊은 후보" 이인제는 49세였다. 이명박 정부에서 48세 김태호 총리 후보자에 그런 바람이 아주 잠깐 불다가 사그라졌다. 안희정, 이광재, 오세훈, 원희룡이 그 무렵 40대였다. 가까이는 6·13 지방선거로 몰락한 보수 야당에서 40대 기수론이 튀어나온다. 한국판 마크롱(40세, 프랑스 대통령)과 트뤼도(46세, 캐나다 총리)가 필요하다지만 현실성은 낮아 보인다.
우리 정치사에서 40대가 주목받은 원인은 5·16 집권세력인 정치군인들의 낮은 평균연령에도 있었다. 그런데 세월 앞에 장사는 없다. 군 출신인 JP의 경우도 64세에 3당 합당을, 71세에 보수 궤도를 벗어난 DJP 연합을 한다. 72세엔 생애 두 번째 총리다. 이때 더 굳은 2인자 이미지를 골프와 관련짓기도 한다. 드라이버샷은 그냥 그렇고 3번 우드로 치는 '세컨샷'만 좋아 만년 2인자에 머물렀다는 속설까지 있다.
영원한 2인자답게 JP는 한동안 킹메이커였다. 16대 노무현은 빼고 1992년 이후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박근혜까지 JP가 말치레라도 거든 후보가 어쨌든 대통령이 된다. 중앙일보 증언록 '소이부답'을 통해 김일성의 서울 환갑잔치를 막은 게 '유신'이라고 강변한 적도 있다. 공과를 떠나 개개인의 호불호가 심하게 엇갈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돌이켜보면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시대의 오랜 지속은 군사정권의 장기화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죽어 묻히거든 나중에 시간 있을 때 산책하러 한번 와봐라. '이 사람이 여기서 이렇게 한탄하면서 누워 있구나' 할 거다." 생전 인터뷰처럼 삶이 '허업(虛業)'만은 아닐 게다. 향년 92세. 호 '운정(雲庭)' 처럼 정말 구름 속 정원을 산책할지 모르겠다. 정계 은퇴 14년 만에 더 완벽한 '3김 청산'을 이룬 마지막 3김을 이제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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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충식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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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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