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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 그래도 좀 약과다. 자본주의 탐욕이 극대화한 제국주의 시절에 완성된 아프리카 지도는 언제 봐도 기가 차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의 정치적 편의와 영토적 야심으로 책상에서 분할한 수리적 국경, 전통이나 종족과 불일치한 선(線)은 두고두고 분쟁의 근원이 되고 있다. 반듯한 직선 국경들이 생생한 흔적이다.
무리하게 국경을 지워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곳도 있다. 바로 서아시아의 화약고 예멘이다. 1972년, 1978년, 1994년에도 전쟁을 벌인 예멘은 국경 부근의 석유 발견을 기점으로 남북통일을 선언했다. 지금 옥류관 냉면을 먹으며 남북통일농구경기를 열고 있는 우리에게 예멘의 하향식 통일은 반면교사다. 예멘 남북 지도자가 이끈 벼락같은 통일은 한때 한반도 통일 모델이었다. 그러한 인연(?)의 끈이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EU가 난민 앞에서 사분오열돼 국경에 빗장을 잠그며 예멘 사태가 뜻밖에 대한민국의 일이 됐다. 예멘은 게다가 통일 28년 만에 무력으로 재(再)분단 위기에 놓여 있다.
북예멘과 공산국가 남예멘 분단도 원래 영국의 식민 지배가 원인이었다. 우리와 상통하는 점이다. 미국의 전략정책단장인 링컨 준장과 대령 2명이 벽에 걸린 한반도 지도를 보며 그은 선이 북위 38도다. 한반도보다 일본열도에 눈독들이던 미국이 남하하는 소련(소비에트연방)을 어느 지점에서 저지하겠다고 전략적으로 판단한 결과다. 소련이 38선을 바다로 연장해 일본 홋카이도 북부까지 먹으려다가 미국에 거절당한 것도 이때다. 스탈린 요구를 트루먼이 들어줬으면 일본이 북일본과 남일본의 분단국가로 남았을 것이다.
미소(美蘇) 열강이 스테이크 자르듯 지도를 두 동강낸 4일 후, 일본이 항복하고 그 선은 대한민국 국경이 됐다. 그리고 동족 간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이 싹튼다. 외견상 예멘 내전은 주로 수니파 정부군과 시아파 반군 사이에 치러진다. 예멘인의 제주도 엑서더스가 이런저런 정치적 유사성과 관계는 없다. 돈 쓰는 관광객을 부르기 위한 무비자 제도가 난민이 오는 경로가 됐을 뿐이다.
그 다음의 경로는 아주 복잡하다. 지옥 같은 내전을 피해온 예멘 난민에게 인도주의나 국제 인권법이 만능키는 아니었다. 정부도 '노답'일 만큼 어렵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는 예멘 난민 수용에 찬성 39%, 반대 49.1%, 잘 모르겠다가 11.9%였다. 여론이 행동으로 옮겨져 난민 반대 집회와 그 반대를 반대하는 맞불집회가 함께 열리고 있다. 반(反)난민 감정 또는 일부의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와 인도주의가 부딪히는 난민이라는 난제가 담긴 시험지를 받아든다. 남의 나라 일이면서 남의 일이 아닌, 참으로 딜레마다. 그들이 향할 곳은 어디여야 할까. '지혜롭게 풀자'는 말까지 섣부른 결론이 될 수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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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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