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의 폭염 공격과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의 협공은 급기야 나 자신이 마치 찐 감자라도 되는 양 그렇게 기진맥진의 늪으로까지 함몰되는 기분이었다. 허풍을 좀 더 보태자면 그야말로 불지옥으로 가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시원한 피서지에서 이 지독한 여름이 갈 때까지 만이라도 여유자적 놀고먹을 수만 있다면 그곳이 곧 무릉도원일 터였다. 하지만 박봉의 경비원이 어찌 그런 호사와 사치를 누릴 수 있단 말인가……. 출근하니 다시금 찜통더위가 반갑다며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난 네가 싫어! 정말 진짜로!!"
두 평 남짓의 지하 경비실은 우리 경비원들 사이에선 '악마의 소굴'로 알려져 있다. 오후 6시면 꺼지는 자동냉방장치로 말미암아 오로지 구닥다리 선풍기 하나로만 그 지독한 무더위와 사투를 벌여야 하는 때문이다.
업무 파트너인 짝꿍과 업무 교대 후 잠시 쉬는 시간에도 더워서 도저히 눈을 잠시라도 붙일 재간이 없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유일한 해법은 문을 잠근 뒤 옷을 죄 벗은 나신(裸身)에 적신 물수건으로 연신 몸을 닦아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면 파김치는 기본이요 비몽사몽에 밥맛까지 상실하기 일쑤다. 반쯤 감긴 게슴츠레 눈으로 집에 들어서자 방안의 온도 역시 밖과 별반 다름없는 찜통이었다.
"어젯밤도 지독한 열대야였는데 에어컨을 켜고 자지 않고?"
그러나 아내는 손사래를 쳤다. "당신은 에어컨도 없이 고생을 하는데 나 혼자서 있을 적에 에어컨을 켜고 잔다는 건 예의가 아니지" '……!' 예의(禮義)는 예절(禮節)과 동격을 이룬다.
예절은 또한 인간관계와 생활에 있어서도 윤활유 역할을 한다. 그러하기에 예절이 없으면 "저런 싸가지 없는 xx"라는 욕을 자초하기도 일쑤다. 실제로 툭하면 몽니를 부리고 막말을 하는 예절 부재(不在)의 동료 경비원이 실재한다.
가뜩이나 날도 더운데 그런 한심한 자와 말다툼하기도 지쳐서 언제부턴가는 아예 어리눅은(어리눅다=일부러 어리석은 체하다) 척 하면서 상종(相從) 자체부터 꺼리는 터다. 한데 이러한 예절은 부부사이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나는 열렸던 창문을 꼭 닫고 에어컨 가동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일사병이라도 걸리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법이니 더울 땐 전기료 아끼지 말고 에어컨 켜고 자도록 해." 그러자 아내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나도 에어컨을 켜면 시원하다는 건 잘 알아. 그렇지만 전기료 누진제로 인해 요금폭탄을 맞으면 어쩌려고 그래?" "……!"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고 우리처럼 못 사는 서민은 전기료 요금폭탄이 겁나서 에어컨을 아예 못 켜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따라서 보기만 하고 정작 가동조차 할 수 없는 에어컨은 화중지병(畵中之餠)인 셈이다. 기록적인 무더위로 인해 에어컨 사용이 급증하면서 전기요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전기료의 누진제 한시적 면제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하 의원의 주장처럼 올 여름과 같은 특별재난 수준의 폭염 기간에는 가정용 전기료 누진제를 면제하는 법안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도외시한다는 건 서민 인권의 도외시는 물론이요, 정부도 폭염을 '재난'으로 규정한 바 있거늘 폭염 기간에도 전기 누진제를 적용하는 것은 재난을 입은 국민에게 징벌을 가하는 이중 고통에 다름 아니다.
에어컨을 끌 수 없는 폭염이 계속되면서 국민들, 특히나 서민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는 다음 달에 받아들 전기료, 아니 '전기세'의 폭탄을 맞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 때문이다.
이처럼 노심초사가 되는 단초에 다름 아닌 '전기료 누진제'는 국민적 원성이 자자했다.
그래서 지난 2016년 폭염 때, 정부는 이 누진제를 약간 완화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것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글들만 봐도 쉬 알 수 있다. 현재 주택용 전기에만 누진제가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반면 상업용 전기에는 누진제가 없다. 이런 까닭에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켜고 장사를 하는 매장을 쉬 볼 수 있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전기료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서민들은 소위 '전기료 폭탄'으로 불안하거늘 그럼에도 실시간으로 전기요금을 알려주는 계량기조차 없는 곳이 수두룩하다. 이는 한국전력이 그러한 계량기의 보급을 약속했지만 제대로 설치하지 않고 있는 때문이다.
따라서 결국 전기료 고지서를 받을 때까지는 요금이 얼마가 나올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깜깜이 구조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재난 수준의 폭염 기간에는 지금처럼 징벌적 누진제가 아니라 오히려 누진제 면제가 필요한 것임은 물론이다.
현 정부의 전기료 누진세 수수방관에 대하여 누리꾼들은 잘 나가던 원전 발전소는 폐쇄하고 전기가 모자란다며 누진세는 계속하냐며 비난을 퍼붓고 있다. 서민들은 에어컨을 틀고 싶어도 누진세가 무서워서 불볕더위에 지쳐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심지어는 열사병을 얻어 논과 밭에서 일하다 쓰러져 죽는 국민들까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취준생들의 '꿈의 직장'이라는 한국전력공사의 평균연봉은 8,000만 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지금도 한전은 취준생들이 공기업 취업 1순위로 꼽고 있다.
이들의 높은 연봉을 보장하고자 국민들에게서 전기료 누진제를 지속하는 건 아닐까……라는 국민적 의구심 불식 차원에서라도 전기료 누진제는 없애야 한다. 한여름철만이라도 반드시.
이런 얘긴 차마 하고 싶지 않지만 만약에 얼마나 더 국민들이 이 폭염에 쓰러져야만 비로소 전기료의 누진제를 폐지할 텐가?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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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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