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식 칼럼]플라스틱 지구와 인류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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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칼럼]플라스틱 지구와 인류세 사람들

  • 승인 2018-08-22 11:00
  • 신문게재 2018-08-22 21면
  • 최충식 기자최충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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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솔릭의 예상 경로를 보면 태풍의 위험반원인 오른쪽에 위치해 침수와 강풍 피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도 사람들의 관심은 폭염과 열대야가 사라지느냐에 더 쏠린다. 지난 한 달이 평범한 여름으로 기억된다면 그것이 곧 재난일 것이다. 재난 수준으로 더웠다. 서구 열강과 심지어 일본의 차별과 침략의 도구로 악용된 환경결정론을 신봉하지 않지만, "더워 죽겠다"라는 유행어 속에 에어컨이 삶의 척도처럼 되고 보니 자연환경이 성격이나 가치관을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무더위는 언어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계기도 됐다. 찜통(hothouse)에 갇힌 지구기후를 공유하면서도 광포한 느낌의 '폭염' 등을 대체할 새 용어부터 찾아야 할 듯싶다.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라는 단어도 화두였다. 오존층 관련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파울 크뤼천이 국제회의에서 홧김에 "우리는 더 이상 충적세가 아니라 인류세에 살고 있다"고 내쏜 말이 지구온난화로 부쩍 각광을 받고 있다.

조금 겁주는 말이지만 인간의 과학·산업·경제적 활동으로 깊은 흔적을 남기는 지질시대라는 어감을 띠어서 좋다. 만약 70억 인류의 몸무게 총합만큼 플라스틱이 생산된다면 너무 심각해서 포기할지 모르니 작은 것부터 접근해야 한다. 2020년 플라스틱 빨대 퇴출을 공언한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 코리아에서만 한 해 1억8000만 개의 빨대가 쓰인다. 플라스틱뿐만 아니다. 세계 담수의 4분의 3을 통제하고 지표면의 5분의 2를 이용하는 홀로세(Holocene), 현세의 우리들에게 경각심을 넌지시 촉구하기도 한다.

지질시대의 증거물인 화석(化石)으로 말하더라도, 기술화석이라고 불리는 플라스틱이 퇴적층에 쌓이기 시작했다. 끔찍한 가정이지만 언젠가 플라스틱과 닭뼈가 삼엽충이나 공룡과 같은 기준으로 볼 때 지질학적인 경계가 될 개연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이럴 때의 미덕은 지구 행성의 위태로움에 대한 공감 능력이다. 그 공론화가 대전에서 움트고 있다. 카이스트(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을 중심으로 '인류세' 연구가 본격화된다.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융합연구답게 인간과 지구의 새 미래를 상상하기 위한 공학적, 예술적 연구까지 수행한다니 기대가 더 크다.

가장 좋게 이야기하면 인류세는 인류가 지구의 주인이라는 선의(善意)이며, 이 지질시대의 최대 특징은 인위적인 환경 파괴다. 특히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 1위 국가가 대한민국이다. 어마어마한 담론보다 생활 주변의 작은 실천을 유도하기 위해 오는 25일(토) 중도일보 달빛걷기대회에서 일회용품 줄이기 실천 선포식을 갖고 캠페인을 본격화한다. 선언문에서 '인류세' 표현은 쓰지 않지만 그 구성원으로서의 자각과 책임감을 강조하고 있다.

인류세는 아직 지질학적인 정식 공인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지구 생물의 6차 대멸종이 일어난다면 지구의 주인인 인간 탓이라는 조용한 경고까지 담고 있다. 아득히 먼 후세의 어느 날, 매년 600억 마리의 닭이 소비되고 연간 3억톤의 플라스틱이 생산된 인류세의 지층을 뒤져 프라이드 치킨과 플라스틱을 표준화석으로 단정하는 불상사는 없길 바란다. 홍적세-충적세를 지나 인류세, 석기-청동기-철기시대를 지나 플라스틱시대다. 우리가 취하는 행동에 따라 지구 운명과 미래가 달라질 수 있음은 새로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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