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해. 그럼 내가 해 주는 이불이니 '할아버지표 이부자리'가 되는 셈이네?" 아내도 깔깔 웃으며 맞다고 했다. 어제 시장에 간 아내는 고르고 고른 이부자리를 계산하면서 오늘 택배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단다.
"잘했어~" 딸을 낳던 날은 32년 전 겨울이었다. 산통(産痛)을 호소하는 아내를 부축하여 동네의 산부인과를 찾았다. 진찰을 한 의사는 곧 출산할 거라며 입원을 독촉했다. 초조한 마음에 산부인과를 나왔다.
근처의 포장마차에 들어가 소주를 두 병 비웠다. 아들에 이어 아기를 낳으면 이제 나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된다...! 듬직한 아들에 더하여 꽃보다 고울 딸이라고 하니 어찌 가슴이 터질 듯 고무되지 않았겠는가.
셈을 치르고 산부인과에 들어서니 어느새 출산한 아내의 곁에 딸이 함께 누워 자고 있었다. "와~ 이 녀석이 바로 우리 딸이란 말이지!" 아내는 자신이 출산하는 데도 불구하고 밖에 나가 술만 퍼먹고 왔다며 핀잔했다.
"미안해!" 무럭무럭 잘 자라준 딸은 유치원에 들어갔다. 공부를 어찌나 잘 하는지 원장 선생님의 칭찬이 폭발했다. "따님이 정말 똑똑해요!" 립서비스(lip-service}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진중한 말씀이었다.
'똑똑한 딸'의 진가는 십여 년 전의 이맘때 다시금 발견할 수 있었다. 대학의 수시모집에서 딸은 서울대와 모 의대에 동시 합격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 해 입시생 60만 명 중에 고작 3,000명만 갈 수 있다는 꿈의 대학 서울대…….
그렇다면 전체 수험생 중 0.005%에 속하는 범주에 딸이 속한 것이었다. 가난했기에 중학교라곤 구경도 못해본 베이비부머 아빠였던 나는 딸이 출력해 준 서울대 합격증을 받아들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딸아, 고맙다! 수고 많았다!!" 서울대와 동 대학원 재학 내내 단 한 번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던 자타공인의 재원인 딸은 지금도 우리집안의 자랑으로 우뚝하다. 따라서 어제 보낸 이부자리는 예비 할아버지의 조그만 정성일 따름이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 있다. 사위를 맞기 전 상견례를 했을 적의 기억이다. "예비 신랑신부 두 사람이 모두 서울대 출신이니 이담에 태어날 아기는 또 얼마나 공부를 잘할 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네요"라고 말씀하셨던 사돈댁 친척분이 떠오른다.
공부야 논외로 치고 딸이 낳을 딸이 부디 딸처럼 그렇게 밝고 고운 심성으로 잘 자라주길 소망한다. 그래서 얘긴데 만약에 나에게 딸이 없었다면 과연 무슨 재미와 낙으로 살았을까!
#2. 올해도 한 달여 후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세월처럼 참 빠른 게 없음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아무튼 연말이 가까우니 다시금 한 해의 결산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도 어찌어찌 애면글면 어렵사리 살아왔다.
연초에 비해 이맛살은 더 늘었고 삶의 시름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위안이 있다면 올해 아들이 마저 결혼했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참한 며느리가 들어왔고, 결혼의 긍정적 결과물이듯 아들에게 심리적 안정감까지 안겨주기에 참 든든하다.
딸 또한 내년 초엔 출산을 하는 까닭에 벌써부터 우리 집안은 물론이요 사돈댁에서도 흥분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내가 결혼은 비교적 일찍 한 축에 든다. 하지만 자녀의 결혼이 늦은 까닭에 손자를 보는 시기는 친구들보다 꽤 늦었다.
얼마 전 고향의 죽마고우들 모임에서 만난 친구는 손자가 벌써 초등학생이라고 했다. 어쨌든 다소 늦기는 했으되 내년엔 딸에 이어 아들도 아기를 낳았으면 참 좋겠다. 그렇게 시나브로 가족이 증가한다고 생각하면 마치 추수를 앞둔 농부처럼 부자가 되는 듯 하여 흐뭇하다.
최근 휴일 오전에 김장김치가 택배로 왔다. 발신자가 누군지 궁금하여 살펴보니 함께 근무하는 H가 보낸 것이었다. 경비원으로 같이 일하는 동료 겸 후배인데 심성이 고르고 착하여 평소 많이 아끼는 터다.
고마움이 왈칵 해일로 다가오기에 전화를 걸었다. "무슨 김치를 이렇게나 많이 보낸 겨?" "본가에서 김장하는 걸 돕다가 형님 생각이 나길래 두 포기 담은 거유, 형수님이 편찮으셔서 올부턴 김장도 안 담그신다는 말씀이 생각나기에……. 암튼 맛이나 보셔유~"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라더니 꼭 그 모양새였다. "덕분에 잘 먹을게. 그나저나 이 웬수를 무슨 수로 갚는댜?" 나의 조크에 H도 덩달아 박장대소를 금치 못 했다. 바야흐로 전국이 '김장 시즌'에 접어들었다.
김장김치는 겨우내 먹는 반찬이므로 가족은 물론이요 김장을 많이 담그는 집안에선 이웃의 도움 손길까지를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의 김장 문화는 2013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는 그만큼 영양학적으로도 국제적 신임을 받았다는 방증이다. 추운 겨울 날 찐 고구마에 잘 익은 김장김치만 한 그릇 상에 올려도 그만한 진수성찬이 또 없다. 얼음 동동 뜬 동치미 한 그릇은 천연소화제에 다름 아니다.
고삭부리 아내였건만 아내 또한 작년까지는 해마다 김장을 담가왔다. 그러다가 건강이 더욱 안 좋아진 때문에 올부턴 아예 내가 아내를 제어하고 나섰다. "고작 우리 둘이서 사는데 힘들게 김장은 뭣하러 한다는 겨? 차라리 홈쇼핑에서 방송할 때 사먹자고!"
그렇게 합의를 보았던지라 후배가 보내온 김장김치는 흡사 보시(布施)인 양 그렇게 고맙고 반가웠던 것이었다. 아울러 인생은 인다라망(因陀羅網)이라는 생각에 방점이 찍히는 느낌이었다.
불가(佛家)에서는 세상을 일컬어 '인다라망'이라고 한다. 이는 부처님이 이 세상 곳곳에 머물고 있음을 상징하는 말이다. '인다라망'은 또한 우주를 덮고 있는 거대한 그물이라는 뜻인데 그물코마다 투명한 구슬이 박혀 있다.
즉 세상의 모든 생명이 그 그물 속 관계망에 얽혀서 살아간다고 했다. 후배가 보내준 김장김치를 썰었다. 그리곤 라면을 하나 끓여서 함께 먹었다. 꿀맛이 따로 없었다.
사흘 뒤면 다시금 야근을 같이 하게 될 H에게 어떤 방법으로 보답을 해야 소문이 날까?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딸과 사위, H 또한 따지고 보면 '인다라망'에 의거한 인연(因緣)인 셈이다. 그들이 모두 참 고맙고 그립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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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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