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스펙의 굴레

  • 오피니언
  • 세상읽기

[세상읽기] 스펙의 굴레

  • 승인 2019-06-26 09:43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스펙22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고스팅, 페이스펙, 취가, 삼일절…. 올해 취업시장이 반영된 신조어들이다.

취업에 성공하고도 출근하지 않는 신입사원을 일컫는 '고스팅(ghosting)'. '유령(Ghost)'이라는 단어에 'ing'를 붙여 만든 '유령처럼 사라져 버린다'는 뜻으로 쉽게 말해 '잠수탄다'는 의미다.



취업 대신 장가를 간다는 '취가', 여성이 경력단절 이후 재취업에 도전하는 현상을 나타내는 '엠커브(M-Curve)', 31살까지 취업을 못하면 절대 취업을 못한다는 의미의 '삼일절' 등…. 새롭게 등장한 신조어들은 취업대란을 겪고 있는 청년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외모도 스펙'이라는 '페이스펙'은 스펙이 다소 낮더라도 외모가 뛰어나면 합격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의 신조어다. 예전에는 학벌과 학점, 토익 점수 정도에 그쳤던 스펙이 현재는 각종 자격증과 공모전 입상, 인턴 경력에 더해 어학연수와 봉사활동, 성형수술까지 포함된 '취업 9종 세트'로까지 진화했다.



스펙경쟁이 갈수록 심화되자 정부가 '탈스펙'을 위해 지난 2017년 하반기부터 모든 공공기관에 블라인드 채용을 의무화했다. 블라인드 채용은 입사지원서나 면접 등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의 출신지역이나 신체조건, 가족관계, 학력 등 편견이 개입될 수 있는 정보를 요구하지 않고 대신 직무 수행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등을 평가하는 데 초점을 둔 채용 방식이다.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한 공공기관 곳곳에서 채용비리가 잇따르면서 학력과 출신지, 가족 관계 등을 가린 것이 오히려 친인척 채용을 거를 수 없게 해 고용 세습 수단으로 악용될 뿐만 아니라 스펙 경쟁 또한 심화시킨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는 형국이다.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인 학력·학점을 표기하지 않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논란도 여전히 뜨겁다.

한 조사를 보면 신입사원 합격자 스펙이 2017년보다 2018년에 더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격증 보유자 비율이 14.1%p, 인턴십 경험자 비율은 3.8%p나 올라 블라인드 채용 이후 특정 직무에 대한 역량을 보여주는 '경험형 스펙'이 중요해진 것. 이같은 현상을 두고 취업준비생 사이에서는 흙수저와 금수저에서 나온 '흙턴', '금턴'을 넘어 '티슈인턴', '부장인턴' 등의 신조어를 쏟아내며 인턴 제도의 문제점을 꼬집고 있다.

막상 취업에 성공해도 스펙의 경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직장인들에게도 스펙 쌓기는 필수가 됐다.

취업포털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10명 중 7명 이상이 취업을 하고서도 스펙을 쌓고 있으며, 이유로 61% 이상이 '이직을 위해서'를 꼽았다. 취업준비는 입사해서도 끝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직장인 10명 중 9명은 스펙 쌓기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며, 이들 중 53%가 입사 후 쌓은 스펙은 좋은 조건으로의 이직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가장 많이 준비하는 스펙은 자격증, 어학, 보고서 스킬(PPT, 엑셀), 학위 취득 등이 있었으며, 이를 위해 한달 평균 18만원을 지출하고 있었다. 연간 216만원을 스펙 쌓기에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청년퇴사도 늘고 있다. 한 조사에서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이 2010년 15.7%에서 2016년 27.7%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서도 청년층의 첫 직장 평균 근속기간은 1년 5.9개월에 불과했다.

스펙 쌓기→취업→퇴사→스펙 쌓기→취업…. '스펙의 굴레'에 갇힌 청춘들의 신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현옥란 편집부장

현옥란-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드디어~맥도날드 세종 1호점, 2027년 장군면 둥지
  2. 성탄 미사
  3. 이장우 대전시장에 양보? 내년 지방선거, 김태흠 지사 출마할까?
  4. [다문화] 이주배경인구, 전체 인구 5% 돌파
  5. [대전 다문화] "가족의 다양성 잇다"… 2025 대덕구 가족센터 성과공유회
  1. [충남 10대 뉴스] 수마부터 행정통합까지 다사다난했던 '2025 충남'
  2. [세상보기]섬세한 도시
  3. 대전·충남 행정통합, 가속페달…정쟁화 경계도
  4. [대전 다문화] 다문화가정 대상 웰다잉 교육 협력 나서
  5.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가속페달…정쟁화 경계도

대전·충남 행정통합, 가속페달…정쟁화 경계도

대전·충남 통합특별시 출범 지원을 위한 범정부적 논의가 본격화되는 등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가속페달이 밟히고 있다. 일각에선 이를 둘러싼 여야의 헤게모니 싸움이 자칫 내년 초 본격화 될 입법화 과정에서 정쟁 증폭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경계감도 여전하다. 행정안전부는 24일 대전·충남 통합특별시 출범과 관련해 김민재 차관 주재로 관계 부처(11개 부처) 실·국장 회의를 개최하고, 통합 출범을 위한 전 부처의 전폭적인 특혜 제공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이날 회의에서 대전·충남 통합특별시 출범을 위한 세부 추진 일정을 공..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윤석열 탄핵에서 이재명 당선까지…격동의 1년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윤석열 탄핵에서 이재명 당선까지…격동의 1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과 조기대선을 통한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 두 사안은 올 한해 한국 정치판을 요동치게 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는 연초부터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국면에 들어갔고,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이어졌다. 결국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면서 대통령 궐위가 확정됐다. 이에 따라 헌법 규정에 따라 60일 이내인 올해 6월 3일 조기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임기 만료에 따른 통상적 대선이 아닌, 대통령 탄핵 이후 실시된 선거였다. 선거 결과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꺾고 정권..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대통령 지원사격에 `일사천리`…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2025 대전·세종·충청 10대뉴스] 대통령 지원사격에 '일사천리'…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전·충남 행정통합의 배를 띄운 것은 국민의힘이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다. 두 시·도지사는 지난해 11월 '행정통합'을 선언했다. 이어 9월 30일 성일종 의원 등 국힘 의원 45명이 공동으로 관련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 여당도 가세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충청권 타운홀미팅에서 "(수도권) 과밀화 해법과 균형 성장을 위해 대전과 충남의 통합이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전면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전·충남 통합 및 충청지역 발전 특별위원회'(충청특위)를 구성..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

  • 성탄 미사 성탄 미사

  •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

  •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