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황금보다 빛나는 우정과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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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황금보다 빛나는 우정과 약속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19-11-0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우리의 의식주생활은 약속으로 삶이 이어지고 있다. 또 약속을 통해 다수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약속 준수 여부에 떠라 인간관계의 명암이 엇갈리기도 한다.

개개인의 약속 이행 여부는 그 사람의 신용도를 결정한다. 사람들은 그 신용도에 따라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기도 하고 제약받는 생활이 되기도 한다.

약속은 동창회 저녁 모임, 지인들 친구들 모임 같이 이해관계와 상관없는 것도 있지만 각종 계모임을 비롯한 부동산 매매 계약과 같이 손익관계에 걸려 있는 것도 있다.

약속은 개인끼리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개인과 단체, 단체 상호간에 이루어지는 것도 있다. 지키지 않으면 손해를 보거나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약속들도 상당수가 있다. 사주와 노동자 간의 계약이나 집을 사고파는 매매계약을 비롯해서 집 전세 계약 같은 것이 바로 그런 유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계약으로 돼 있는 시간이나 금전 수수관계 이행·불이행에 따라 물질적 손익관계가 엇갈리게 된다.



계약으로 돼 있는 약속 이행 여부에 따라 신의와 신뢰성이 좌우된다. 그에 따라 물질적 이해관계가 결정되기도 한다.

약속은 어떤 형태, 어떤 성격의 것이든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래야 신의와 신뢰성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생활에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심심치 않을 정도 보게 된다.

시간약속 지키는 것만 봐도 어떤 사람은 약속시간보다 항상 먼저 나와 기다리거나 시간에 늦는 일이 없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혹자는 약속 시간과 상관없이 20분, 30분 늦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한테는 아무리 넉넉한 시간을 준다 해도 약속 시간 지키는 것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약속 시간을 지키고 안 지키는 것은 그냥 단순 논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의 신뢰도와 상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사람에 따라서는 이해관계가 따르는 약속은 잘 지키지만 그와 상관없는 약속은 아예 지키지 않는 사람도 있다. 소위 잔머리 굴리는 약삭빠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약속 시간 준수와 그에 따른 신의와 신뢰성을 거론하다 보니 피시아스라는 사형수와 그 친구 다몬에 관한 일화가 떠오른다.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의 피시아스라는 젊은이가 교수형을 받아야 했다. 효자였던 그는 집에 돌아가 연로하신 부모님께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해달라고 왕께 간청했다. 하지만 왕은 허락하지 않았다. 나쁜 선례를 남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피시아스에게 작별 인사를 허락할 경우, 다른 사형수들에게도 부모님과 작별인사를 하겠다면 그것을 허락해 주어야 한다. 그랬다가 사형수들이 도망이라도 가게 되면 국법과 질서가 흔들릴 수도 있다. 왕이 그걸 고심하고 있을 때 피시아스의 친구 다몬이 보증을 서겠다면서 나섰다.

"폐하, 제가 그의 귀환을 보증합니다. 그를 보내주십시오."

"다몬아, 만일 피시아스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찌하겠느냐? "

"어쩔 수 없죠, 그렇다면 친구를 잘못 사귄 죄로 제가 대신 교수형을 받겠습니다."

"너는 피시아스를 믿느냐? "

" 폐하, 그는 제 친구입니다."

왕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피시아스는 돌아오면 죽을 운명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돌아올 것 같은가? 만약 돌아오려 해도 그의 부모가 보내주지 않는다면 너는 지금 만용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저는 피시아스의 친구가 되길 간절히 원했습니다. 제 목숨을 걸고 부탁드리오니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폐하."

왕은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다몬은 기쁜 마음으로 피시아스를 대신해 감옥에 갇혔다. 교수형을 집행하는 날이 되었다. 그러나 피시아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바보 같은 다몬이 죽게 됐다며 비웃었다. 정오가 가까웠다. 다몬이 교수대로 끌려나왔다. 그의 목에 밧줄이 걸리자 다몬의 친척들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정을 저버린 피시아스를 욕하며 저주를 퍼부었다. 그러자 목에 밧줄을 건 다몬이 눈을 부릅뜨고 화를 냈다.

"나의 친구 피시아스를 욕하지 마라. 당신들이 내 친구를 어찌 알겠는가."

죽음을 앞둔 다몬이 의연하게 말하자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집행관이 고개를 돌려 왕을 바라보았다. 왕은 주먹을 쥐었다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렸다. 집행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말을 재촉하여 달려오며 고함을 쳤다. 피시아스였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다가와 말했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이제 다몬을 풀어 주십시오. 사형수는 접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작별을 고했다. 피시아스가 말했다.

"다몬, 나의 소중한 친구여, 저 세상에 가서도 자네를 잊지 않겠네."

"피시아스, 자네가 먼저 가는 것뿐일세.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도 우리는 틀림없이 친구가 될 거야."

두 사람의 우정을 비웃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경탄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몬과 피시아스는 영원한 작별을 눈앞에 두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담담하게 서로를 위로할 뿐이었다. 이들을 지켜보던 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를 외쳤다.

"피시아스의 죄를 사면해 주노라."

왕은 그 같은 명령을 내린 뒤 나직하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바로 곁에 서 있던 시종만이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내 모든 것을 다 주더라도 이런 친구를 한 번 사귀어보고 싶구나."

이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친구를 위하는 우정과 약속을 잘 지키는 신의와 신뢰성 있는 행동에서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사형수 친구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 놓은 다몬의 참된 용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한 목숨을 볼모로 잡혀 있는 친구 다몬을 살리기 위해 약속 시간 내에 돌아온 피시아스의 신의 있는 행동을 어찌 생각하는가!

참으로 참다운 용기와 약속 이행으로 보여준, 꽃보다 아름다운 우정이라 할 수 있다. 약속을 지키는 그 자체가 신의와 신뢰성을 돋보이게 한 고갱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사형수 피시아스라면 나는 돌아오겠는가, 도망을 가겠는가 ?

내 자신이 사형수의 친구 다몬이라면 나는 어떻게 하겠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내심의 진솔한 답을 한 번 들어보는 것도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사형수 피시아스와 다몬이, 생명보다 중시한 우정과 신의, 신뢰가 남의 얘기가 돼서는 아니 되겠다.

아름다운 우정과 약속 이행으로 보여준 신의와 신뢰, 이는 황금보다 빛나는 우정과 약속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은 누구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참된 용기의 보물이어야겠다.

이쯤엔 나도 인성에 고장은 없는지 '인성 바로미터'의 눈금을 제대로 확인해 보아야겠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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