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오늘도 짝사랑을 하고 있는 그대에게

  • 오피니언
  • 문화칼럼

[교단만필] 오늘도 짝사랑을 하고 있는 그대에게

  • 승인 2019-11-22 10:40
  • 신문게재 2019-11-22 22면
  • 김유진 기자김유진 기자
대전가양초 교사 최서영
가양초 최서영 교사
나는 짝사랑 중이다. 해가 떠오르는 이른 아침, 오늘은 함께 어떤 일을 하게 될까 기대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상대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자꾸 생기고, 상대의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 하나에 기뻐하기도 슬퍼하기도 한다. 밤이 오면 내일은 같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꿈꾸며 하루를 정리한다.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내 중심에는 짝사랑이 있다.

8년. 내 짝사랑의 역사는 길다. 이 자리를 통해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대상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며, 해가 갈수록 그 수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나보다 한참 어린 아이들이다. 그렇다. 내 짝사랑의 대상은 바로 나의 학생들이다.



처음 교단에 선 그 순간 깨달았다. '아, 나는 아이들을 하염없이 짝사랑하며 교직생활을 이어가겠구나.' 초임시절 내 짝사랑은 무모한 열정과 합쳐져 앞뒤 없이 한 방향으로만 돌진했다. 모든 시간, 순간을 아이들을 위해 썼다. 아이들과 함께하지 않는 시간에는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떨치기 위해 주말과 방학에도 학교에 나와 수업 준비를 하곤 했다.

아이들을 위해 사용했던 시간과 열정의 크기만큼 내 사랑이 받아들여지기를 무척이나 바랐다. 그렇기에 내 마음이 학생들과 어긋났을 때는 허망하고 슬펐으며 때론 분노하기도 하였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이만큼이나 사랑하는데 왜 내 마음을 이렇게도 몰라주는 걸까. 이런 과정 속에서 나 혼자 힘들어하고 조금씩 지쳐갔다. 무조건 내 마음과 같을 거라는 자만이, 나 혼자 치열하게 짝사랑을 이어오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나의 오만이었다. 나 역시도 나의 선생님들로부터 그들의 짝사랑을 받아오며 자라왔으니 말이다. 나에게 교사의 꿈을 품게 만들어주신 선생님들께서 내게 큰 사랑을 아낌없이 주셨고, 그 사랑을 먹고 자란 나는 이 자리에서 다시 아이들에게 사랑을 나눠줄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선생님들만이 아니었다. 내 주변의 선생님들도 그랬다. 선생님들께서는 나만큼 아니 나보다 많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생각하고 계셨다.

그래서일까? 선생님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언제나 학교 이야기, 학생들 이야기로 가득 찬다. 잠시 다른 주제로 화제가 바뀌었다가도 어느새 다시 교육 이야기로 돌아오곤 한다. 그들은 공부를 깊게 해서 괄목할만한 교육계 이론을 창시한 학자도, 독특한 경영법을 창시해내서 여러 연수의 강사로 활동하는 스타 교사도, 엄청난 감동을 주는 미담의 주인공도 아니다. 그저 오늘도 묵묵히 아이들 곁에서 아이들을 무척 사랑해왔고, 지금도 계속 사랑하고 있는 평범한 선생님들이시다.

오늘도 우리들의 짝사랑은 진행 중이다. 여전히 우리는 아이들의 별 의미 없는 작은 행동과 말에 기뻐하고 때론 슬퍼하기도 한다. 아직도 퇴근 후와 주말에 아이들을 생각하며 즐거워하지만 한편으로는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 아파하고 있다. 아마 선생님들의 짝사랑은 결말이 없는 이야기처럼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묵묵히 같은 자리에서 답이 오지 않는 사랑에 몸을 맡기고 있는 위대하지만 평범한 선생님들께, 충분히 훌륭하신 선생님들께 오늘 하루도 힘내시라고, 고생 많으시다고 전하고 싶다.
대전가양초등학교 교사 최서영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관광+맛집+숙박' 3박자 갖춘 세종시 전의면에 오면
  2. "충청의 거목 고이 잠드소서" 이해찬 前총리 별세 지역與 '애통'
  3. 대전시립중고교 김병한 교장 '사회공헌 대상' 수상
  4. ‘민주당 킹메이커’ 이해찬 전 총리 베트남서 별세…향년 73세
  5. 100도 달성한 사랑의 온도탑과 무료배식의 긴 줄
  1. 강추위에 얼어붙은 인공폭포
  2. 사업비 규모 커진 대학 '라이즈'...지역사회 우려와 건의는?
  3. [건강]노인에게는 암만큼 치명적인 중증질환, '노인성 폐렴'
  4. 화학연, 음식물쓰레기 매립지 가스로 '재활용 항공유' 1일 100㎏ 생산 실증
  5. 대전소방, 구급차 6분에 한번꼴로 출동… 중증환자 이송도 증가

헤드라인 뉴스


`행정수도 설계자` 이해찬, 미완의 숙제 남기고 영면에…

'행정수도 설계자' 이해찬, 미완의 숙제 남기고 영면에…

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미완의 '세종시=행정수도' 숙제를 남기고 영면에 들었다. 행정수도와 인연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궤를 같이 한다. 2004년 참여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서 국토균형발전 정책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운명의 끈은 거기서 끊어지지 않았다. 1988년부터 서울 관악 을에서 국회의원 5선을 역임한 뒤 사실상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당원들은 2011년 당시 민주당 상임 고문인 이 전 총리를 소환했다. 결국 그는 2012년 세종시 출범 직전 진행된 제19대 총선에서 47.88% 득표율을 얻어 당선됐고, 2015년 3월 임..

대전 자영업 수 나홀로 사장님만 늘었다... 경기 한파 꽁꽁 얼었나
대전 자영업 수 나홀로 사장님만 늘었다... 경기 한파 꽁꽁 얼었나

경기 한파로 전국의 자영업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전은 오히려 자영업자 수가 늘어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직원을 고용해 매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보다 1인 가게와 무인점포 등 혼자 운영하는 '나 홀로 사장님'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26일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5년 취업자 중 대전 자영업자 수는 15만 5000명으로, 2024년(14만 1000명)보다 1만 4000명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 19가 발발하기 이전인 2019년 14만 2000명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지역 자영업자 수는..

대전시 "행정통합 항구적 법,제도 마련 안되면 주민투표 요구할 것"
대전시 "행정통합 항구적 법,제도 마련 안되면 주민투표 요구할 것"

대전시가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따른 정부의 대폭적인 재정·권한 이양을 요구하며, 미흡할 경우 주민투표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26일 대전시 주간업무회의에서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시민 목소리가 높아지면 시장은 시민의 뜻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면서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한 주민투표를 요구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항구적인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주민투표 요구가 높아질 수 있다. 단순한 물리적 통합으로 비치면 시민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며 "..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포춘쿠키 열고 ‘청렴의식 쑥’ 포춘쿠키 열고 ‘청렴의식 쑥’

  • 강추위에 얼어붙은 인공폭포 강추위에 얼어붙은 인공폭포

  • 100도 달성한 사랑의 온도탑과 무료배식의 긴 줄 100도 달성한 사랑의 온도탑과 무료배식의 긴 줄

  • 코스피, 코스닥 상승 마감…‘천스닥을 향해’ 코스피, 코스닥 상승 마감…‘천스닥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