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는 삶의 이음매] 58. 진수성찬(珍羞盛饌)

  • 문화
  • 사자성어는 삶의 이음매

[사자성어는 삶의 이음매] 58. 진수성찬(珍羞盛饌)

홍경석 / 수필가 &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저자

  • 승인 2020-03-24 17:47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운동화
사람의 기억은 무섭다. 그래서 때론 수십 년 전의 흔적까지 추적할 수 있다. [홍찬선 첫 소설,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넥센미디어 발간)를 보면서 느낀 감회다.

내가 천안성정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은 지난 1966년이다. 지금도 마치 어제 일인 양 또렷이 기억하는 채효숙 선생님이 나의 1학년 때 담임이셨다. 엄마도 없는 녀석이 줄곧 1등을 질주하자 기꺼이 관심을 드러내셨다.

수업이 끝나면 남으라고 하면서 잔무를 맡기셨고, 이런저런 주전부리까지 주셨다. 심지어 봄 소풍 때는 내 몫의 김밥 도시락까지 준비하여 주시는 바람에 감격하여 엉엉 울기까지 했다.

"울지 마. 반듯이 살면 반드시 좋은 날도 올 거야!" 홍찬선 작가의 첫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는 1부와 2부로 구성돼 있다. <1부 그해 여름>은 조국과 관련된 단편소설 9편을 모은 옴니버스다.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전임 장관 '조국 사태'를 소설 속 상상의 나라에서나마 풀어보려고 노력했다. <2부 하얀 운동화>는 단편 8편을 모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고 있는 살아있는 이야기들이어서 거부감이 없다.

이런 가까운 이야기들이 팍팍한 '조국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보듬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저자의 부언이 살갑다. 이 책에 담긴 17편의 작품 중 단연 눈길과 오감까지 끌었던 건 <하얀 운동화>(P.307~317)였다.

찢어지게 가난했기에 검정고무신을 신고 등교하는 초등학생 이소명과 홍현숙 담임선생님이 주인공이다. 수업에 이어 교실 청소까지 마친 소명은 그러나 집에 가지 못 한다.

가뜩이나 없는 살림이거늘 누군가 자신의 검정고무신을 신고 간 때문이다. 분한 마음에 눈가의 물기까지 가득한 소명에게 선생님은 자신의 하얀 운동화를 흔쾌히 내준다. 덕분에 다리 안 다치고 무사히 집에 온 소명이지만 아뿔싸~!!

잃어버린 고무신을 사려고 이튿날 엄마랑 천안 장날에 간 게 그만 화근이었다. 포장 안 된 진흙길을 오가는 바람에 하얀 운동화는 그야말로 '죽 쑤어 개 준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집에 오자마자 기겁하여 하이타이에 운동화, 칫솔까지 동원하여 깨끗이 빨았으나 부뚜막에서 이를 말리던 중 그예 연탄불에 타고 만다. 분노한 엄마는 소명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팼지만 소명은 전혀 아픔을 몰랐다.

그것은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과 죄책감의 이중주가 빚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서두에서 50년도 더 지난 '역사의 흔적' 중 하나인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채효숙 선생님을 기억하는 건 그만큼 감사함이 대단한 때문이다.

고름은 살이 안 되지만 아름다운 추억은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 이 책이 바로 그렇다. 홍찬선 저자는 전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쳤으며, 동국대 정치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고, 서강대 MBA를 졸업했다. 서강대 경영학과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일본 中央大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청화대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을 수료했다.

저서로는 『미국의 금융지배전략과 주식자본주의』, 『패치워크 인문학』, 역서로 『비즈니스 경제학』, 『철학이 있는 부자』 등이 있으며, 시집 『틈』, 『결』, 『길 - 대한제국 鎭魂曲』(2018), 『삶 - DMZ 解寃歌』(2019), 『얼 - 3.1정신 魂讚頌』(2019)이 있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되던 1970년대에 한 농촌 아이가 살았다. 베이비붐 세대 끝자락에 어울리게 많은 형제자매 속에서 태어났다. 그 아이는 부지런하고 선한 부모님 슬하에서 세상의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하며 자랐다.

산과 달과 별이 친구였고, 개울과 수풀이 놀이터였으며 나무와 꽃, 오소리와 물고기가 또 다른 교과서였다. 대학 진학으로 서울로 올라와선 도시의 심장부에서 일했다.

금융과 경제와 사회와 문화의 일선에서 뒤돌아 볼 사이, 숨 돌릴 틈 없이 일했다. 짝을 만나 가정을 일구고 자녀 넷을 알토란으로 키웠다. 이제 도심 속 장년이 된 그가 그 해 여름의 소년을 마주한다.

소년이 자라 청년이 되고, 부모가 되면서 어른이 된 시간들을 하나씩 더듬으면서 저자가 마주한 일상과 편린이 이 책 안에 고스란히 진수성찬(珍羞盛饌)으로 가득 담겨있다.

홍경석 / 수필가 &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저자

사자성어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셔츠에 흰 운동화차림' 천태산 실종 열흘째 '위기감'…구조까지 시간이
  2. 노노갈등 논란에 항우연 1노조도 "우주항공청, 성과급 체계 개편 추진해야"
  3. ['충'분히 '남'다른 충남 직업계고] 홍성공업고, 산학 결합 실무중심 교육 '현장형 스마트 기술인' 양성
  4. 대전 중구, 국공립어린이집 위·수탁 협약식 개최
  5. 충청권 국립대·부속병원·시도교육청 23일 국정감사
  1. '충남 1호 영업사원' 김태흠 충남지사, 23일부터 일본 출장
  2. 한화이글스 우승 기원 이벤트
  3. 대전관평초 '학교도서관 운영 유공' 국무총리 표창
  4. 상서 하이패스 IC 23일 오후 2시 개통
  5. 대전권 대학 산학협의체, ‘한국-베트남 글로벌 청년 경진대회 행사 개최

헤드라인 뉴스


대전시-KAIST 국내 최대 양자팹 구축 착수

대전시-KAIST 국내 최대 양자팹 구축 착수

국내 최대 규모 '개방형 양자공정 인프라'(이하 개방형 양자팹) 구축에 대전시와 KAIST가 나섰다. 대전시와 KAIST는 23일 이장우 대전시장과 KAIST 이광형 총장이 참석한 가운데 KAIST 본원에서 '개방형 양자팹 구축 및 운영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양자 산업화 시대를 대비한 필수 기반 시설인 '개방형 양자팹' 구축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마련됐다. KAIST '개방형 양자팹' 구축사업은 국내 최대 규모의 첨단 양자팹 건립과 양자 인프라 시설 및 장비 구축을 포함한 사업으로, 2031년까지 국비 2..

개물림 피했으나 맹견 사육허가제 부실관리 여전…허가주소와 사육장소 달라
개물림 피했으나 맹견 사육허가제 부실관리 여전…허가주소와 사육장소 달라

대전에서 맹견 핏불테리어가 목줄을 끊고 탈출해 대전시가 시민들에게 재난안전문자를 발송한 사건에서 견주가 동물보호법을 지키지 않은 정황이 여럿 확인됐다. 담장도 없는 열린 마당에 목줄만 채웠고, 탈출 사실을 파악하고도 최소 6시간 지나서야 신고했다. 맹견사육을 유성구에 허가받고 실제로는 대덕구에서 사육됐는데, 허가 주소지와 실제 사육 장소가 다를 때 지자체의 맹견 안전점검에 공백이 발생하는 행정적 문제도 드러났다. 22일 오후 6시께 대전 대덕구 삼정동에서 맹견 핏불테리어가 사육 장소를 탈출해 행방을 찾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 재난..

[2025 국감] 적자에 차입금 부담만 커져… 충남대병원 재정문제 도마 위
[2025 국감] 적자에 차입금 부담만 커져… 충남대병원 재정문제 도마 위

차입금 부담만 수천억 원에 달하는 충남대병원의 누적 적자액이 1300억 원이 넘고 재원 환자도 줄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국회에서 제기됐다. 국회 교육위원회가 23일 충북대에서 연 충남대·충북대·부속 병원 국정감사에서다. 이날 오전 피감기관 대표로 조강희 충남대병원장과 김원섭 충북대병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문정복(더불어민주당·경기 시흥갑) 의원은 "누적적자가 충남대병원은 1374억 원, 충북대병원은 1173억 원"이라며 "독립 재산제로 운영되는 국립대병원에서 차입금 상환은 어떻게 할 것이냐"며 따져 물었다. 최근 3년간 두..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 ‘자랑스런 우리 땅 독도에 대해 공부해요’ ‘자랑스런 우리 땅 독도에 대해 공부해요’

  • 상서 하이패스 IC 23일 오후 2시 개통 상서 하이패스 IC 23일 오후 2시 개통

  • 한화이글스 우승 기원 이벤트 한화이글스 우승 기원 이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