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깨어날 악몽이 아니라면

  • 오피니언
  • 세상속으로

[세상속으로]깨어날 악몽이 아니라면

김명주 충남대 교수

  • 승인 2020-07-06 10:50
  • 신문게재 2020-07-07 18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김명주-충남대-교수
김명주 충남대 교수
대전은 늘 큰 재해가 빗겨가는 행운의 도시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대전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 도시로 손꼽히면서, 전 지구적인 팬데믹 조차 어쩌면 빗길지로 모른다는 안이한 나의 환상이 깨지고 있다. 매일매일 늘어가는 확진자 숫자들, 어쩌다 동선이 아슬아슬 겹치면 간담이 서늘하다. 대체 언제까지일까.

이 팬데믹의 막막한 시간에, 나와 세상에 대한 지혜로운 조망을 찾고자 책을 뒤적거리다 슬라보예 지젝을 다시 만났다. 그가 2012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미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국민국가가 한계에 이르렀음을 간파했던 그의 예지를 떠올렸고, 2020년 지금 코로나시대에 그가 어떤 슬기로운 해법을 제시할 지 궁금했다.



먼저 그의 신속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이 처음 세계보건기구에 원인을 모르는 폐렴 케이스를 보고한 날이 2019년 12월31일이고, 이 폐렴이 팬데믹의 가능성이 있다고 과학자들이 보고한 날이 올해 1월24일이다. 그런데 지젝이 코로나 관련 책 <팬데믹! 코비드-19가 세상을 흔들다>를 쓴 것은 3월 24일이다. 놀라운 속도가 아닐 수 없다. 그때쯤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언젠가는 깨어날 악몽이라고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이 예지로운 철학자는 이 팬데믹이 깨어날 악몽이 아님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깨어날 악몽이 아니라면 어쩌란 말인가. 지젝은 철학자답게 "철학 혁명"을 제안한다. 먼저 바이러스를 달리 보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바이러스를 외부에서 온 침입자나 적으로 보았고 기필코 제거해야 할 존재로 보았다. 그러나 비록 자기복제 밖에 모르는 소위 저차원의 바이러스일지라도 그는 지구상에 늘 있어왔으니 침입자가 아니다. 그는 적도 아니다. 그는 그저 제몫의 삶을 살뿐 인간을 적대시하여 인간을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사자가 사냥을 하듯 바이러스도 숙주를 찾을 뿐이다. "평평한 존재론"에 의하면 바이러스는 인간과 동등한 지구상의 엄연한 실재다.



다만, 엄연한 실재인 바이러스는 인간의 심리 안에서 "현실로 재통합될 수 없는 잉여물"이다. 그래서 잉여는 끊임없이 현실을 괴롭히면서 증상을 만들어내는 존재다. 그럴 때 해법은 간단하다. 실재를 현실의 일부로 받아들여 감당할만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 중, 실제로 부상을 당한 병사와 부상을 당하지 않은 병사 중 누가 더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을까? 부상당하지 않은 사람이 더욱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는다고 한다. 부상(실재)에 대한 '공포'가 더욱 심각한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것이다. 지젝의 말대로 우리는 "늘 위협에 시달리는 대신 취약한 삶을 수용하고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더불어 그는 몇 가지 "야만"을 나열하고 경계한다. 바이러스의 위협을 자칫 전체주의적 감시의 계기로 삼는 야만을 경계한다. 그런가하면, 적극적 통치를 섣불리 자유의 제약으로 비판하는 자유주의적 야만도 경계한다. 경제를 앞세워 집단면역을 기다리며 노약자를 희생하고 계급차별을 심화시키는 자본주의적 야만도 경계한다. 야만의 아슬아슬한 유혹과 함정을 피하면서, 새로운 길을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길로써 지젝은 리우데자네이루 갱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은 빈민가를 장악하기 위해서 잔인한 패싸움을 일삼던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바이러스가 창궐한 기간에는 서로 휴전하고 노약자들을 돕는데 힘을 모으기로 합의했다. 평소 같으면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새롭고도 신기한 일이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 당국에 긴급 원조를 제공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이 역시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그들이 감염되면 나도 감염된다. 지젝의 표현대로 우리는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젝은 '초국가적 협조와 연대'라는 새로운 길을 제안한다. 지금으로서는 지젝의 제안이 최선으로 보인다.

김명주 충남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부산 광안리 드론쇼, 우천으로 21일 변경… 불꽃드론 예고
  2. 천안시, 맞춤형 벼 품종 개발 위한 식미평가회 추진
  3. 천안시 동남구, 빅데이터 기반 야생동물 로드킬 관리체계 구축
  4. 천안도시공사, 개인정보보호 실천 캠페인 추진
  5. 천안의료원, 공공보건의료 성과보고회서'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1. 천안법원, 지인에 땅 판 뒤 근저당권 설정한 50대 남성 '징역 1년'
  2. 충청권 부동산 시장 온도차 '뚜렷'
  3. 천안시, 자립준비청년의 새로운 시작 응원
  4. "마을 앞에 고압 송전탑 있는데 345㎸ 추가? 안 됩니다" 주민들 반발
  5. 백석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협력…지역 창업 생태계 활성화 기대

헤드라인 뉴스


[지방자치 30년, 다음을 묻다] 대전·충남 통합 `벼랑끝 지방` 구원투수 될까

[지방자치 30년, 다음을 묻다] 대전·충남 통합 '벼랑끝 지방' 구원투수 될까

지방자치 30년은 성과와 한계가 동시에 드러난 시간이다. 주민과 가까운 행정은 자리 잡았지만, 지역이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구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제도는 커졌지만 지방의 선택지는 오히려 좁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인구 감소와 재정 압박, 수도권 일극 구조가 겹치며 지방자치는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지금의 자치 체계가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 아니면 구조 자체를 다시 점검해야 할 시점인지에 대한 질문이 커지고 있다. 2026년은 지방자치 30년을 지나 민선 9기를 앞둔 해다. 이제는 제도의 확대가..

대전 충남 통합 내년 지방선거 뇌관되나
대전 충남 통합 내년 지방선거 뇌관되나

대전 충남 통합이 지역 의제로선 매우 이례적으로 정국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내년 지방선거 뇌관으로 까지 부상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정부 여당이 강력 드라이브를 걸면서 보수 야당은 여당 발(發) 이슈에 함몰되지 않기 위한 원심력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6월 통합 단체장 선출이 유력한데 기존 대전시장과 충남지사를 준비하던 여야 정치인들의 교통 정리 때 진통이 불가피한 것도 부담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8일 대전 충남 민주당 의원들과 오찬에서 행정통합에 대해 지원사격을 하면서 정치권이 긴박하게 움직이..

정부, 카페 일회용 컵 따로 계산제 추진에 대전 자영업자 우려 목소리
정부, 카페 일회용 컵 따로 계산제 추진에 대전 자영업자 우려 목소리

정부가 카페 등에서 일회용 컵값을 따로 받는 '컵 따로 계산제' 방안을 추진하자 카페 자영업자들의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매장 내에서 사용하는 다회용 머그잔과 테이크아웃 일회용 컵 가격을 각각 분리한다는 게 핵심인데, 제도 시행 시 소비자들은 일회용 컵 선택 시 일정 부분 돈을 내야 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2026년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2027년부터 카페 등에서 일회용 컵 무상 제공을 금지할 계획이다.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최근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컵 따로 계산제를 탈 플라스틱 종합 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 딸기의 계절 딸기의 계절

  •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