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이걸 보며 웃을 날이 오면 좋겠다

[교단만필] 이걸 보며 웃을 날이 오면 좋겠다

  • 승인 2020-07-09 13:37
  • 수정 2020-07-09 13:37
  • 신문게재 2020-07-10 18면
  • 김흥수 기자김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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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천안북중학교 교사
지난해 11월, 1학년 주제선택 국어 시간이다. 주제로는 UCC만들기, 보드게임으로 창의 인성 다지기 등의 활동을 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주제선택 국어 시간을 은근히 기다렸다. "선생님, 다음 주제는 뭐예요?" 기다리는 아이들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응, 이번 시간부터는 우리가 시를 쓸 거야." "시요?", "시 쓰기 노잼이에요"라는 등 아이들의 원망이 자자했다.

주제선택 국어 시간의 제목은 "국어? 하고 싶은 거 다 해"였기 때문에 아이들의 원성은 더욱 컸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면서요. 저희는 시 쓰기 싫단 말이에요", "시는 어떻게 쓰는 거예요?" 미안하지만 아이들의 원망에서 힌트가 떠올랐다.

"얘들아, 시 쓰기 싫으니? 그럼 '시 쓰기 싫다'라는 주제로 시를 써 보자."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이들은 정말로 시를 쓰기 싫어했지만, 시는 써야 했고, 6주 동안 시 쓰기 프로그램을 강행했다. 아이들에게 시 쓰기가 어렵지 않다는 걸, 시 쓰기가 생각보다 '노잼'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다른 학교 학생들이 쓴 문집을 보여주며 너희가 이러한 책의 작가가 될 거라는 점을 강조하고, 학생들이 쓴 시를 읽어주며 시 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내가 썼던 오글거리는 사랑시도 공개했다.

아이들은 사랑 이야기를 항상 경멸하는 듯, 야유하는 듯, 하면서도 사실은 가장 큰 관심을 보인다. 어쩌면 흑역사일지도 모를 선생님의 짝사랑, 그리고 그 짝사랑의 마음을 담은 시를 보면서 아이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그때부터 우리들의 6주간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사랑, 친구, 우정, 학교생활의 어려움, 강아지, 중딩이 생각하는 인생에 대한 고찰….

이 와중에 어떤 아이는 정말로 '시 쓰기 싫다'라는 주제로 시를 썼다.

'나는 시를 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다. 그렇지만 수행평가 0점을 맞을 수는 없으니/시인지 모를 글씨를 적어본다.'

현실적이다. 하지만 글솜씨가 범상치 않다. 계속 읽어본다.

'지금은 투정 부리는 애처럼 싫다고 하지만/이걸 보며 웃을 날이 오면 좋겠다.'

물론 시 쓰기는 싫었을 것이다. 선생님의 강요에 못 이겨, 수행평가 0점을 맞기 싫어서 억지로 시를 썼을 것이다. 하지만 '이걸 보며 웃을 날이 오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아이가 있다. 한 마디면 충분했다. 이 문장은 너무도 인상 깊어서 이 시집의 제목이 됐다. 그리고 120페이지 분량의 우리 시집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됐다.

시 쓰기를 싫어했던 아이는, 자신의 마지막 문구가 시집의 제목이 된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아이가 작가로서의 자부심을 느꼈기를, 단 1%라도 시를 좋아하게 됐기를 기대해 본다. 그 아이는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문구가 한 권의 시집의 제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의 작은 영향력이 120명의 시를 대표하는 큰 영향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2020년. 코로나라는 무서운 질병이 대한민국을 바꾸어 놓았다. 온라인으로 개학을 하고 아이들은 일정을 나누어서 등교 중이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의 시 쓰기는 계속되고 있다. 사랑에 대하여,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 중딩이 생각하는 인생에 대하여….

아이들은 여전히 시 쓰기를 싫어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먼 훗날, 이걸 보며 웃을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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