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요다라는 별명을 가진 과학자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요다라는 별명을 가진 과학자

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 승인 2020-07-30 16:12
  • 신문게재 2020-07-31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박승일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멀고 먼 은하계를 배경으로 하는 미국의 공상과학 영화 - 또는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하는 스타워즈 시리즈에는 요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초록색의 피부를 가졌으며 왜소한 몸집에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다닐 정도로 노쇠했지만, 엄청난 '포스'를 가지고 있으면서 주인공에게 '포스'의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역할을 한다. 요다는 스타워즈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중 하나로 스타워즈가 그다지 흥행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도 모두 요다와 광선 검은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다.

미국 유학 시절 요다를 만난 적이 있다. 영화의 그 요다가 아니라 요다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과학자였다. 2005년 타계한 미국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의 겐 시라니 박사가 그 주인공으로 필자가 만났을 때 나이가 이미 여든에 가까웠다. 동료들보다 키가 작았고 지팡이는 하지 않았지만 불편한 무릎 때문에 복도를 느릿느릿 걷는 것이 애처로울 정도였다. 그런 모습만으로도 요다라는 별명이 붙고 남았을 터인데, 시라니 박사는 중성자 산란이라는 학문 분야를 개척하고 많은 후학을 지도한 위대한 스승이기도 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실험이 있을 때면 매일 실험실에 출근해 손자뻘인 젊은 과학자들을 가르쳐가며 실험을 진행하곤 했다. 그럴 때면 같이 실험하는 사람들은 모두 바짝 긴장을 했는데, 연구에 있어서 시라니 박사의 엄격함은 유명하기 때문이었다. 최초나 최고의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하면 언제든지 - 모두 잠든 한밤중이라도 진행하던 실험을 과감하게 중단하고, 다른 시도를 이어갔다.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 따질 때 자주 사용하는 지표로 논문의 피인용지수가 있다. 시라니 박사는 당시 세계에서 피인용지수가 가장 높은 물리학자 중 한 명이었는데, 그의 그런 엄격함이 오랜 세월에 걸쳐 꾸준히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닌가 싶다. 함께 실험하면서 젊은 사람 못지않았던 시라니 박사의 천진난만한 열정과 깊이가 보이지 않는 '포스'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매년 연말이면 스웨덴의 노벨 위원회는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한다. 작년 말에도 우리나라 과학계와 언론은 "혹시나 이번에는"하고 좋은 소식을 기다렸을 터다. 필자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매년 누가 노벨상을 받는지 귀를 기울여서 뉴스를 듣곤 한다. 여전히 우리나라 과학자는 수상자 명단에 없었고, 일본과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그러나 필자를 놀라게 한 소식은 따로 있었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 세 명 중 한 명이 존 굿이너프 교수라는 것이다. 굿이너프 교수는 멀고 먼 옛날 고체물리학 분야에 무수히 많은 업적을 남겼고, 굿이너프-카나모리 법칙으로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분이다. 요새 전기자동차, 에너지저장장치 등으로 각광받고 있는 리튬이온전지의 발명자 중 한 분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노벨상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건 웬걸, 백 세가 가까운데도 정정하게 살아계시면서 여전히 연구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고 한다. 굿이너프 교수는 "노벨상은 살아남아 버티는 사람이 받는다"는 속설을 입증한 산증인이 됐다.

이렇게 서구의 대학과 연구소에서는 우리나라로 치면 은퇴한 지 한참 됐을 나이의 백발이 성성한 과학자가 연구 현장을 지키며 젊은 세대에게 지식을 전수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오랜 세월 쌓아올린 지혜를 필요로 하는 과학의 특징을 생각하면 이는 매우 자연스럽다. 그러나 눈길을 국내로 돌리면 안타까운 현실이 보인다.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는 정년 환원 문제로 시끄럽고, 왜 우리나라 과학자가 노벨상을 못 받는지 논쟁은 있을지언정, 열정과 총기가 넘치는 탁월한 과학자가 말년까지 실험실에서 일하는 모습은 아직 보지 못했다. 존경하는 선배들이 책상을 정리하고 외롭게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함께 사라지고 있나 생각해본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에도 요다라고 불릴 만큼 오랫동안 실험실을 지키며 '포스'를 뿜어내면서 후학에게 배움을 주는 과학자가 나왔으면 좋겠다.
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인사]대전MBC
  2. 정림종합사회복지관 독서캠프 ‘체크인! 북트랩 마블, 이야기 공항’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우리동네축제, ‘함께 떠나는 우리의 여름’
  4. 대전 동구새마을문고, 여름철 피서지문고 개장
  5. ‘머드에서 놀자’…보령머드축제 개막
  1. 세종시교육청 '교육문화원' 공식 개원… 복합 교육문화 거점 노크
  2. 가로림만 서산갯벌,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서산, 세계유산도시 새 역사 열었다
  3. 신한철 전 중도일보 상무 별세
  4. 김해 전략산업 기술거점 10곳, 내년 4월 완성
  5. 숨통 튼 홈플러스…영업 정상화까진 '첩첩산중'

헤드라인 뉴스


테크·바이오 창업 수도권으로 이탈 여전…KAIST 창업 61% 수도권·대전서 고용 15%

테크·바이오 창업 수도권으로 이탈 여전…KAIST 창업 61% 수도권·대전서 고용 15%

KAIST가 교내 안팎에서 이뤄진 창업 기업의 성과를 조사한 결과 6만1252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38조 9500억 원의 총매출을 일으킨 것으로 집계했다. KAIST 교원과 재학생과 졸업생이 창업하거나 그리고 학교의 지원을 받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가 이뤄졌는데, 이들 창업 기업 중 대전에 본사를 둔 경우는 전체의 23.1%이었고, 총 매출액 대비 대전의 비중은 7.4%에 불과했다. 국방과 기술(Tech), 바이오 등 대전의 연구성과를 지역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이 절실하다. KAIST창업원은 KAIST 출신 교원과 재학..

숨통 튼 홈플러스…영업 정상화까진 `첩첩산중`
숨통 튼 홈플러스…영업 정상화까진 '첩첩산중'

법원의 결정으로 회생절차를 이어가게 된 홈플러스가 파산 위기에서는 일단 벗어났지만 정상 영업을 회복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난관이 남아 있다. 긴급 운영자금 확보로 핵심 점포 재가동의 발판은 마련했지만 체불 임금과 공공요금, 납품대금 지급, 협력업체 신뢰 회복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2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최근 홈플러스의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취소하고 회생계획안 가결 기한을 오는 9월 4일까지 연장했다. 홈플러스는 최대 채권단인 메리츠금융으로부터 2000억 원 규모의 DIP(긴급운영자금) 대출을 확보..

보행 안전 돕는다더니…장마·폭염에 고장 난 바닥신호등 수리도 늦어져
보행 안전 돕는다더니…장마·폭염에 고장 난 바닥신호등 수리도 늦어져

23일 오전 8시 20분께 대전 중구 오류초등학교 정문 앞 횡단보도. 등교 시간 학생들이 녹색 보행신호가 켜지자 횡단보도를 따라 도로를 건너기 시작했다. 마침 발 아래 바닥신호등도 초록불이 들어왔고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하던 보행자들은 신호를 놓치지 않고 길을 건널 수 있었다. 그러나 횡단보도 반대쪽 바닥신호등은 여전히 적색 신호를 유지한 상태였다. 서구 둔산초등학교 앞 사거리에서도 횡단보도 시작점에 설치된 바닥신호등 5곳 중에 2곳에서 LED 일부에만 불이 들어오거나 적색과 녹색 신호 모두 표시되지 않은 채 꺼져 있었다. 시민들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역투 펼치는 한화이글스 새 외국인 투수 짐머맨 역투 펼치는 한화이글스 새 외국인 투수 짐머맨

  • ‘우린 더위 몰라요’…한화생명볼파크 썸머 페스티벌 ‘우린 더위 몰라요’…한화생명볼파크 썸머 페스티벌

  • 충청 유니버시아드 빛낼 굿즈들 충청 유니버시아드 빛낼 굿즈들

  • ‘머드에서 놀자’…보령머드축제 개막 ‘머드에서 놀자’…보령머드축제 개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