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책임지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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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책임지는 용기

이상문 행정산업부 차장

  • 승인 2020-09-24 16:26
  • 신문게재 2020-09-25 4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이상문기자
이상문 행정산업부 차장
"나라에 변고가 있는데 책임지는 이가 없다면 허깨비의 나라가 아닙니까."

2017년 방영된 KBS대하사극 '징비록(懲毖錄)'에서 나오는 명대사다. 징비록은 '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해서 후에 환란이 없도록 조심하다'는 '시경'의 말을 인용해 영의정과 도체찰사로서 국정과 군무(軍務)를 총괄한 서애 유성룡이 '난(亂)'의 근본을 밝힌 책이다. 임진왜란이라는 대전란을 통해 국가 리더십 붕괴가 부른 총체적 위기와 비정한 국제정치를 낱낱이 해부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왕, 조정 대신들을 항상 의심하는 '의심병'을 가진 왕, 사사건건 반대하는 기득권층 등 조선 후기 무책임한 정치권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졌다.

대전지역 숙원사업 중 하나인 유성복합터미널 사업이 또다시 무산됐다. 4차례 공모를 거치면서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이가 없다. 단순히 민간사업자의 능력과 코로나19 라는 악재 탓만 한다. 사업 무산으로 허탈함에 빠진 시민들에게 고개 숙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도시공사 사장은 공모 무산 당일 3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대전시 실무를 책임지는 담당 국장은 4차 공모 과정에서 4명이나 거쳐 갔다.

민간 사업 방식을 선택한 것도 대전시다. 사업성을 높여 좋은 민간 사업자를 선택하는 것도 대전시의 몫이고, 공공성이 높은 사업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방지책도 대전시 일이다. 8000억 짜리 공공성을 가진 대형사업을 능력 검증이 안된 신생업체에 맡기는 일부터 잘못됐다. 10년간 유성복합터미널 사업을 진행하지 못한 것은 직무유기다. 안일하고 무책임한 행정이다.

결국 책임은 대전시 행정을 이끌고 있는 '허태정 시장' 몫이다. 전임자가 시작한 일을 이어받아 끌고 왔지만, 그동안 진행 과정을 결정하고 지켜본 사람은 허 시장이다. 지도자는 책임질 줄 알고,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난 잘못을 징계해 미래의 환란을 경계한다'는 국보 제132호 '징비록'의 절규가 가슴에 사무친다. 유성룡은 진실로 국정의 중요 책임자로서 능력의 한계와 직무수행 중의 잘못을 통감하고 나라와 백성에 사죄하는 마음으로 징비록을 썼다고 본다. 유성복합터미널의 미래는 과거 10년의 무산을 책임지는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민의 허탈한 마음을 달래고, 미래를 위한 반성을 하는 대전시장의 '책임지는 용기'를 보고 싶다.

이상문 행정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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