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조상들의 자가격리

  • 오피니언
  •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조상들의 자가격리

  • 승인 2021-02-23 10:46
  • 수정 2021-04-30 14:17
  • 신문게재 2021-02-24 18면
  • 금상진 기자금상진 기자
KakaoTalk_20200519_160803163
의학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수백 년 전 우리 조상들은 전염병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조선왕조실록에는 전염에 관한 기록이 1천 건이 넘게 기록되어 있다. 1,893권 888책에 달하는 기록에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이다. 역병으로 얼마나 많은 백성이 고통 속에 살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조상들의 노력이 얼마나 방대하고 다양하게 진행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시대 전염병 치료에 대한 기록을 찾던 중 흥미로운 기록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전염병을 앓고 있는 가족들을 치료하고 돌본 기록이 담겨 있는 성재일기(惺齋日記)라는 문헌이다. 저자는 16세기 무렵 경북 안동지역의 양반 금난수(琴蘭秀·1530∼1604)다. 기자에게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에서 몇 대손은 올라가야 찾을 수 있는 직계 조상님이다.



1579년 3월 기록에는 전염병이 3개월 넘게 기승을 부렸던 시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금난수의 큰아들 금경이 전염병에 걸렸고 금난수는 말을 보내 집으로 데려오도록 했다. 다른 아들들은 다른 거처로 보내 집안에서 병에 퍼지지 않도록 했다. 큰아들에게는 혼인한 지 1년도 안 된 아내가 있었다. 집에 와서도 차도를 보이지 않는 남편을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려 했지만, 금난수는 며느리를 아들에게서 격리했다. 아들의 병세가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며느리를 자신의 서얼 아우인 금무생의 집으로 거처하도록 했다. 며느리까지 전염병에 희생시킬 수 없었던 금난수의 의지였다. 제법 부유하게 살았던 금난수의 큰 집은 아들 금경 한 명만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금난수는 자신의 집을 자가 격리의 공간이자 치료공간으로 활용했다. 감염자들은 집에서 자가 격리 겸 치료를 받도록 하고 감염되지 않는 사람들을 철저히 격리한 것이다.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여종 두 명이 전염병에 걸리자 가족들을 각자의 공간에 분리하고 자신은 서재로 거처를 옮겨 병세를 관장했다는 기록도 있다. 큰아들의 감염된 때와 같은 시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전염병에 대처하기 위한 세심한 노력이 돋보인다. 전염병을 하늘이 내린 저주라 여기며 무당을 불러 굿판을 벌였던 것이 그 시대의 생활상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매우 이성적이고 침착했던 행동이었다.



조선시대 다른 기록에도 비슷한 내용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전염병에 걸린 가족들을 멀리 사는 친척 집에 보내거나 역병에 걸린 고을 전체를 봉쇄하고 일부 사찰에서는 병자들을 불러들여 스님들이 죽을 끓여 먹였다는 기록도 있다. 전염병으로 인한 국난을 서로 연대하며 돌봄으로 극복하려는 모습은 현재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코로나 백신 접종이 곧 시작된다는 소식이다. 백신이 만병통치약이 될 순 없지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이 조금은 보이는 것 같다. 수백 년 전 우리 할아버지 아니 우리 조상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코로나의 어둡고 긴 터널도 슬기롭게 극복해낼 것이라 기대해 본다.
금상진 기자 jodpd@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충남경찰 인력난에 승진자도 저조… 치안공백 현실화
  2. 대전시와 5개구, '시민체감.소상공인 활성화' 위해 머리 맞대
  3. 세종시 '학교급식' 잔반 처리 한계...대안 없나
  4. [한성일이 만난 사람]여현덕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인공지능(AI) 경영자과정 주임교수. KAIST-NYU 석좌교수
  5. 세종시 재정 역차별 악순환...보통교부세 개선 촉구
  1. 세종시 도담동 '구청 부지' 미래는 어디로?
  2. 더이상 세종시 '체육 인재' 유출 NO...특단의 대책은
  3. 세종시 '공동캠퍼스' 미래 불투명...행정수도와 원거리
  4.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5. 세종시 교통신호제어 시스템 방치, 시민 안전 위협

헤드라인 뉴스


전기 마련된 대전충남행정통합에 이재명 대통령 힘 실어줄까

전기 마련된 대전충남행정통합에 이재명 대통령 힘 실어줄까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으로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새로운 전기를 맞은 가운데 17일 행정안전부 업무보고에서 다시 한번 메시지가 나올지 관심이 높다. 관련 발언이 나온다면 좀 더 진일보된 내용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역대 정부 최초로 전 국민에 실시간 생중계되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의 2주 차 부처 업무보고가 16일 시작된 가운데 18일에는 행정안전부 업무보고가 진행된다. 대전과 충남은 이날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이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한 추가 발언을 할지 관심을 두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에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하기 위해..

[기획시리즈] 2. 세종시 신도시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2026년은?
[기획시리즈] 2. 세종시 신도시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2026년은?

2026년 세종시 행복도시 신도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을까.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하 행복청)이 지난 12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거치며, 내년 청사진을 그려냈다. 이에 본지는 시리즈 기사를 통해 앞으로 펼쳐질 변화를 각 생활권별로 담아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행정수도 진원지 'S생활권', 2026년 지각변동 오나 2. 신도시 건설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변화 요소는 3. 정부세종청사 품은 '1~2생활권', 내년 무엇이 달라지나 4. 자족성장의 거점 '3~4생활권', 2026년 던져진 숙제..

‘의료 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 위한 지역의사제 국무회의 의결
‘의료 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 위한 지역의사제 국무회의 의결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소위, ‘지역의사제’ 시행을 위한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출산과 보육비 비과세 한도 월 20만원에서 자녀 1인당 20만원으로 확대하고, 전자담배도 담배 범위에 포함해 규제하는 법안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54회 국무회의에서는 법률공포안 35건과 법률안 4건, 대통령령안 24건, 일반안건 3건, 보고안건 1건을 심의·의결했다. 우선 지역 격차 해소와 필수의료 확충,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공포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딸기의 계절 딸기의 계절

  •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 `족보, 세계유산으로서의 첫 걸음` '족보, 세계유산으로서의 첫 걸음'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