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자격보다 품격

  • 오피니언
  •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자격보다 품격

  • 승인 2021-03-03 23:31
  • 수정 2021-05-09 16:37
  • 신문게재 2021-03-03 18면
  • 원영미 기자원영미 기자
1280890031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나는 커서 의사 될래." 7살 짜리 막내가 뜬금없이 털어놓은 장래 희망이다. 의사 꿈을 말하는 아이에게 나는 "의사가 되려면 공부도 진짜 잘해야 하지만, 먼저 착한 사람이 돼야 해"라고 말해주었다. 아픈 사람을 가장 먼저 나서서 치료해 주고 아무리 힘든 수술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의사'라는 단어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내 보물들의 탄생 순간을 함께한 산부인과 원장님이다. 2012년 초봄, 첫 아이를 낳던 날. 초산인 데다 양수가 먼저 터지는 바람에 분만 촉진제를 맞고 무려 23시간여 만에 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때 나는 아이 손가락과 발가락이 정상인지 보다 "선생님 감사합니다!"란 말부터 했다. 죽을 것 같은 고통에서 나를 해방시켜 준 원장님이 너무 고마웠기 때문이다. 제발 수술해 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원장님은 새벽 4시가 넘은 시간까지 꼬박 대기하며 직접 첫 아이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2년 뒤 둘째까지 무사히 받아 준 원장님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분이다. 감사한 마음을 항상 갖고 있다.

그런데 '의사가 되고 싶다'는 아이와의 대화를 돌이키면서 모든 의사가 '똑똑하고 착한 사람'이란 이미지를 심어준 것 같아 후회 비슷한 감정이 들었던 것은 최근이다. 의료법 관련 범죄가 아닌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취소할 수 있게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지난달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논의됐지만 결국은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살인·강도·성폭행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사의 면허는 무조건 취소된다. 형이 끝난 뒤에도 최대 5년까지 면허를 재발급하지 않는다. 의사 면허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법사위보다 앞선 19일 보건복지위는 전체회의를 열고 이 법안을 의결했다. 그러자 의사협회는 성명서를 내고 즉각 반발했다. 국회의 개정안 논의를 '의사 죽이기'로 규정하며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법안 통과를 막겠다고 맞섰다. 급기야 코앞으로 다가온 코로나19 예방백신 접종 보이콧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이를 보는 많은 사람의 시선은 싸늘했다. 변호사 등 다른 전문직 자격증은 강력범죄를 저지르면 자격이 박탈되고 성범죄자 교사도 교원 자격증이 박탈된다고 하는데, 왜 의사는 자격증을 박탈하면 안되는 것일까. 살인자(의료행위 중 과실 제외)가 면허가 있다고, 죗값을 다 치렀다고 해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를 계속할 수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의사가 될 때 반드시 하는 맹세를 '히포크라테스 선서'라고 한다. 어떤 내용이 있는지 궁금해 찾아보니 여러 구절 중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할 것', '어떤 경우라도 인간의 생명을 가장 존중히 여길 것'이 눈에 띄었다. 코로나 위기인 지금이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 해야 할 때다. 강력범죄자 의사의 '자격'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걸맞은 '품격'을 잃지 않았으면.
원영미 디지털룸 2팀 차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칠곡 왜관철교, 주민들 쉼터 역할
  2. 대전 중수청, 세종 임시 개청 후 옛 대전세무서 부지로 이전 추진
  3. [르포] 선풍기도 없는 40.2도 정산부스… 폭염 속 공영주차장 근로자
  4. 대천해수욕장, 126명 안전요원 총출동
  5. 돌아오는 온통대전…자치구 지역화폐와 연계·통합 가능할까
  1. "서산 한우 관광 메카 만든다", 서산 운산 농어촌관광휴양단지 조성 본격 시동
  2. 학교 믿고 입주했는데…입주민 "교육청 중재 나서라"
  3. 음주운전 사고 후 경찰관까지 폭행한 60대… 차량 압수
  4. 충남 당진 드론공원, 국토부 지정 공원 선정
  5. 대덕특구 공동관리아파트 R&D 맞춤형 심사 대상될까…예타 폐지 새기회

헤드라인 뉴스


[르포] 대청호 녹조 시작점 추소리 가보니…걷어내도 짙은 초록빛

[르포] 대청호 녹조 시작점 추소리 가보니…걷어내도 짙은 초록빛

5일 오전 11시 충북 옥천군 군북면 추소리 대청호 수역. 수면은 평소 물빛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짙은 초록색으로 변해 있었다. 녹조가 뒤덮은 물 위로 오리들이 유유히 지나갔고 물가에는 각종 부유물이 떠다녔다. 수변 주변으로는 수많은 파리가 날아들었다. 플라스틱 컵으로 수면의 물을 떠보니 연한 초록빛을 띠었다. 물을 다시 쏟아낸 뒤에도 컵 안쪽에는 녹색 흔적이 남았다. 추소리 수역은 매년 여름이면 녹조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곳이다. 이날도 작업자들이 녹조방제선에 올라 수면을 뒤덮은 녹조를 걷어내고 있었다. 방제 작업은 하루 두..

`우린 비급여만` 건강보험 미청구 의료기관 대전 65곳 충남 31곳
'우린 비급여만' 건강보험 미청구 의료기관 대전 65곳 충남 31곳

건강보험 요양급여를 단 한 차례도 청구하지 않고 비급여 진료만 하는 이른바 '건보 청구 0원 의료기관'이 대전과 충남에서 10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비급여 진료만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의료기관은 대전 서구와 충남 천안에 집중되어 있고, 성형외과보다 일반의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건강보험 미청구 의료기관'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25년 기준 대전 의원급 의료기관 65곳과 충남 31곳이 연중 건강보험을 한 차례도 청구하지 않은 것으로..

학교 믿고 입주했는데…입주민 "교육청 중재 나서라"
학교 믿고 입주했는데…입주민 "교육청 중재 나서라"

학교 신설 대체 이전을 전제로 추진된 한화포레나 유성 아파트 단지 내 초등학교 기부채납 공사가 중단되면서 입주민들의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학교 개교를 믿고 입주를 결정한 입주민들은 5일 대전교육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공사 재개와 개교 일정 정상화를 촉구하며 교육청의 적극적인 중재를 요구했다. 한화포레나 유성 입주민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학교 공사 중단으로 학생들의 학습권과 통학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며 "교육청과 시행사는 더이상 책임을 미루지 말고 학교를 정상적으로 개교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충청권 식수원을 보호하라’…대청호 녹조 제거하는 방제선 ‘충청권 식수원을 보호하라’…대청호 녹조 제거하는 방제선

  • ‘전문 간호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전문 간호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 폭염에 도로 위 피어오른 ‘아지랑이’ 폭염에 도로 위 피어오른 ‘아지랑이’

  • ‘폭염에도 일을 쉴 수 없어요’ ‘폭염에도 일을 쉴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