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달라지는 대전역마을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달라지는 대전역마을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 승인 2021-03-08 08:29
  • 수정 2021-03-08 08:32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송복섭 교수
송복섭 교수
십수 년 전 대전살이를 시작할 즈음의 일이다. 출장을 떠날라치면 으레 대전역에 차를 주차하고 KTX를 이용해야만 했다. 지금이야 선상주차장을 포함해 공용주차장이 여러 군데 생겼지만, 당시에는 대전역 주변으로 주차 사정이 만만치 않았다. 수업을 마치고 촌각을 다투듯 바삐 출발해야 하는 사정도 있고, 여러 시간이 소요되는 일정상 주차비도 꽤 부담됐다. 그때 누군가 솔깃한 정보를 일러줬다. 철로변 공용주차장이 있는데 값도 저렴하고 역과 가까워 바쁠 때 이용하기 그만이라는 것이다.

어느 날 일러준 대로 차를 몰고 길을 찾아 나섰다. 그때만 해도 내비게이션이 보편화하지 않은 터라 말로 들은 정보를 거리에 대응해가며 감으로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타난 골목이 나를 아연실색게 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끝도 모를 긴 골목이 그저 앞으로만 진행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순간, 말로만 듣던 역 앞 무서운 동네 얘기가 떠올랐다. 길이 좁아 차를 되돌릴 수도 없고, 애초에 그 골목에 볼일도 없었는데 누가 자신의 구역을 침범했다고 시비라도 걸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혹여 있을지 모를 해코지까지 연상됐다.



그러나 전진하면 할수록 그 골목은 매력으로 넘쳐 보였다. 폭은 좁지만 둘러싼 건물이 높지 않아 소위 휴먼스케일 공간을 이루고, 집 앞에는 널린 빨래와 함께 플라스틱 화분에 정성스레 가꾸는 듯한 꽃과 채소가 예쁜 경관을 만들며, 70년대쯤 만들어진 것 같은 간판들이 정겨운 정취를 만들고 있었다. 물론 해코지도 당하지 않았고 시비를 거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공연한 선입견이 불안과 걱정을 키운 것뿐이었다.

얼마 뒤,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내가 체험한 ‘대전역마’을 풍경을 전하면서 복고풍 영화를 촬영하는 장소로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와 대전역에서 가까운 이점을 살려 커피숍과 간이음식점들로 가득한 거리로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새로운 발견 삼아 자랑스럽게 낸 주장에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대전시민에겐 그곳이 혐오의 대상이며 조만간 재정비촉진사업으로 공간을 일소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그 후로 십여 년이 지났다. 대규모 개발사업은 이뤄지지 않았고, 그 사이 공용주차장이 생겼으며 민간건물 몇 채가 낡은 건물을 헐고 들어섰다. 어느 자리 회의를 마치고 돌아서는 내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십여 년 전 생뚱맞은 아이디어에 면박을 준 것이 본인이며, 그때는 엉뚱하다고 생각했으나 도시재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진 것처럼 자기 생각도 변했고 지금쯤은 그 생각대로 추진해봄직도 하다는 것이었다.

작년부터 대전역 일원 도시재생뉴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혁신도시 사업도 대전역세권지구에 지정됐다. 쪽방촌 도시재생이란 이름으로 공공주택사업도 이 지역에서 추진한다. 그동안 민간단체에서 봉사 차원으로 운영하던 프로그램들에 공적 지원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쪽방 주민들의 심리치료와 직업교육, 자활을 지원하는 생활지원센터도 운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쪽방이란 이름 대신 대전역마을이라 고쳐 부를 것을 제안한다. 이 동네 원래 이름이 대전역마을이었다고 하는데, 슬그머니 쪽방촌이란 명칭이 똬리를 틀었다. 대전역마을은 다른 지역에 비해 주민들 간의 유대가 강하다고 한다. 굳건한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개발 후에도 마을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숙제가 우리에게 남겨졌다.

그동안 대전역마을 주변으로 의미 있는 변화들이 일어났다. 공공미술사업으로 마을이 좀 더 예쁘게 단장됐고, 젊은 감성의 커피숍도 여럿 등장했다. 지지난 주에는 한남대학교 건축학과 대학생들이 대전역마을을 변모시키기 위한 9박 10일간의 워크숍을 마치고 결과물을 내놓았다. 화려한 이미지와 멋진 모형들의 이면에는 이 마을의 정겨운 모습이 지켜지기를 희망하는 바람도 담겨있었다.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최대 30만 원 환급' 상생페이백, 아직 신청 안 하셨어요?
  2. 화성시, 거점도시 도약 ‘2040년 도시기본계획’ 최종 승인
  3. 갑천에서 18홀 파크골프장 무단조성 물의… 대전시, 체육단체장 경찰 고발
  4. 애터미 '사랑의 김장 나눔'… "3300kg에 정성 듬뿍 담았어요"
  5. 대전 불꽃쇼 기간 도로 통제 안내
  1. "르네상스 완성도 높인다"… 대전 동구, '주요업무계획 보고회'
  2. 코레일, 겨울철 한파.폭설 대비 안전대책 본격 가동
  3. 대출에 짓눌린 대전 자영업계…폐업률 7대 광역시 중 두번째
  4. 대전권 14개 대학 '늘봄학교' 강사 육성 지원한다
  5. '대덕특구 사이언스센터' 딥테크 혁신성장 허브로 자리매김

헤드라인 뉴스


국내기업 10곳 중 7곳 이상 "처벌·제재로는 중대재해 못줄여"

국내기업 10곳 중 7곳 이상 "처벌·제재로는 중대재해 못줄여"

국내 기업 10곳 중 7곳 이상이 정부의 노동 안전대책에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조사됐다. 처벌과 제재 중심의 정책으로는 중대재해 예방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국내 기업 262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새 정부 노동안전 종합대책에 대한 기업 인식도 조사' 결과를 25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9월 발표된 노동안전 종합대책과 관련해 기업들의 인식과 애로를 파악하기 위해 진행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동안전 종합대책에 대해 알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 중 73%(222곳)가 정부 대책이 '중대재해 예방에..

충청권 국회의원 전원, ‘2027 충청U대회 성공법’ 공동 발의
충청권 국회의원 전원, ‘2027 충청U대회 성공법’ 공동 발의

충청권 여야 국회의원 27명 전원이 ‘2027 충청 유니버시아드대회’(U대회) 성공 개최를 위한 국제경기대회 지원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수현(충남 공주·부여·청양)·국민의힘 이종배(충북 충주) 의원은 25일 국제경기대회 조직위원회가 대회 운영에 필요한 기부금품을 직접 접수·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국제경기대회 지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공동으로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현행 제도에서는 조직위원회가 기부금품을 접수할 때 절차가 복잡해 국민의 자발적인 기부 참여가 제한되고, 국제경기대회 재정 운영에 있어 유연성이 낮다..

국내 최대 돼지 사육지 충남서 ASF 첫 발생… 도, 긴급 차단방역
국내 최대 돼지 사육지 충남서 ASF 첫 발생… 도, 긴급 차단방역

국내 최대 돼지 사육지역인 충남에서 치사율 100%(급성형)에 달하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처음으로 발생했다. 충남도는 ASF 확산을 막기 위해 도내 양돈농가 등에 상황을 전파하고, 이동 제한 등 긴급 차단 방역에 돌입했다. 25일 도에 따르면, 총 463두의 돼지를 사육 중인 당진시 송산 돼지농가에서는 지난 17∼18일 2마리가 폐사하고, 23∼24일 4마리가 폐사했다. 농장주는 수의사의 권고를 받아 폐사축에 대한 검사를 도에 의뢰했다. 도 동물위생시험소는 폐사축에 대한 ASF검사를 진행, 이날 오전8시 양성 판정을 내렸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가을비와 바람에 떨어진 낙엽 가을비와 바람에 떨어진 낙엽

  • 대전시의회 방문한 호치민시 인민회의 대표단 대전시의회 방문한 호치민시 인민회의 대표단

  • 대전시청에 뜬 무인파괴방수차와 험지펌프차 대전시청에 뜬 무인파괴방수차와 험지펌프차

  • 주렁주렁 ‘감 따기’ 주렁주렁 ‘감 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