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계절의 책장을 넘기며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계절의 책장을 넘기며

김명순 대전문인총연합회장

  • 승인 2022-05-11 13:28
  • 신문게재 2022-05-12 19면
  • 한세화 기자한세화 기자
김명순
김명순 대전문인총연합회장
아침마다 먼 산을 바라본다. 뿌옇던 산이 푸르스름하더니 연초록 옷을 갈아입고 산 벚꽃 수를 놓았다. 이제는 초록 세상으로 변해 송홧가루 날리며 아카시아 향내 풍긴다. 아침마다 수밋들 강변을 걷다 보면 물고기가 첨벙대며 사랑을 나누고 민들레는 벌써 씨앗을 날려 자식들을 시집·장가 보내고 있다.

밭에 나가면 겨우내 움츠렸던 양파와 마늘이 꼿꼿이 하늘을 바치고 오가피 울타리는 새순을 내어 몸을 감추고 머위는 잎을 내 땅바닥을 덮고 있다. 감자 싹이 올라오고 개구리가 울고 산새들 노랫소리 들으며 밭일을 하다 보면 세월은 계절을 낳아가며 소리도 없이 빨리 흘러간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생활 시절엔 아침 일찍 출근하여 일하느라 자연이 변하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정년 후 생활은 일이 없어도 세월이 빠르게 간다. 인생 나이 오십 대는 50Km 속도로, 육십 대는 60Km, 칠십 대는 70Km로 달려간다는 말이 실감 난다. 자연 속에서 살다 보니 계절 감각이 예민해져 세월의 속도를 더 느끼는 것 같다.



사계절이 분명하게 바뀌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참 다행이며 행복하다. 예전 열대지방에 연수를 가서 오래 머문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새롭고 신기했는데 참 지루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거리를 나가도 산천을 바라봐도 늘 그 나무 그 색깔이다. 하루는 밤낮으로 돌아가는데 어제나 오늘이나 자연의 변화하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옷도 일 년 내내 여름옷을 입고 살면 된다. 우리나라는 계절마다 자연의 색이 다르고 기후가 달라 먹거리도 계절마다 다르고 철마다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다양한 변화에 적응하며 사는 즐거움이 있어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자체가 큰 복이다.

우리나라는 같은 언어문화를 가지고 있어 소통이 빠르고, 사계의 변화가 뚜렷한 기후를 가지고 있어 부지런한 나라이다. 어려운 역사적 고통이 있었지만,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셔 세계 으뜸 문자가 되었다. 자음과 모음이 결합하는 2진법 문자가 디지털문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게 되어 일의 능률을 배가시키고 있다. 변화 감각에 민감한 한국인의 특징이 세계문화를 주도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산업 발달의 주도국가가 되고 케이팝 열풍이 가요, 영화, 웹툰, 문학, 오락 등의 장르에서 세계인의 호응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 모든 장르에서 세계문화의 변화 속도에 맞추어 발전하고 있는데 정치는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의 학습 매체도 종이책에서 디지털 텍스트로 바뀌고, 학습 방법도 강의실 수업에서 미디어 채널로 바뀌었다. 그런데 정치인들의 의식은 아직도 페이퍼북에 갇혀 그들의 언어 표현을 보면 원시적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투명한 미디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 사회의 특징은 투명성과 신속성에 있다. 어떤 사실과 감정을 감추려 해서는 안 되며 감출 일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신뢰가 생명인 세상에서 어떤 사실을 입으로만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말에는 단어 속에 담긴 의미 이상의 것이 들어있다. 말을 할 때 나타나는 음성의 음색과 표정 속에 감정이 들어 있어서 듣는 사람은 듣는 순간 진위를 판단할 수 있다.

텔레비전이 정치 뉴스에 덮여 국민이 성숙한 문화 뉴스를 만나기가 어렵다. 성숙한 정치로 국민이 편안한 마음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밭에 나가고 자연 속에 묻혀 살기를 좋아하는 것은 정치 도피 행위인지도 모른다. 미디어 시대에 미디어의 역기능은 개인 유튜브 방송이 난무하여 비상식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저속한 방송을 통해 시청자의 정신세계를 혼란하게 하는 것이다. 성숙한 시민은 미디어의 콘텐츠를 분석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지나친 정치적 비판의 방송은 방송자가 빌려 쓰는 단어와 음성 속에 담긴 감정만으로도 판단할 수 있다. 방송인이 지나치게 흥분된 어조로 말하거나 비상식적인 어휘를 구사할 때는 경계해야 한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시끄러워도 자연에 묻히면 인간의 언어가 아닌 모습과 색깔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세월은 흘러도 계절이라는 책장을 펼쳐가며 우리에게 읽어보라고 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날씨]대전·충남 1~5㎝ 적설 예상…계룡에 대설주의보
  2. 대전시장 도전 許 출판기념회에 與 일부 경쟁자도 눈길
  3. '대통령 세종 집무실', 이 대통령 임기 내 쓸 수 있나
  4.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5.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1. 천안법원, 정지 신호에도 직진해 사망자 유발시킨 30대 중국인 벌금형
  2.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3. 대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열려
  4. '물리적 충돌·노노갈등까지' 대전교육청 공무직 파업 장기화… 교육감 책임론
  5. 대전충남 행정통합 발걸음이 빨라진다

헤드라인 뉴스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김민석 국무총리와 더불어민주당 충청권 의원들이 대전시와 충남도 행정통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격 회동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얼마 전 충청권을 찾아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해 긍정적 메시지를 띄운 것과 관련한 후속 조치로 이 사안이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김 총리와 민주당 충청권 의원들이 15일 서울에서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갖는다. 김 총리와 일부 총리실 관계자, 대전 충남 민주당 의원 대부분이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회동에서 김 총리와 충청권 의원들은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대전 원도심 재편의 분수령이 될 '대전역 철도입체화 통합개발'이 이번엔 국가계획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1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초 철도 지하화 선도지구 3곳을 선정한 데 이어, 추가 지하화 노선을 포함한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종합계획' 수립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종합계획 반영 여부는 이르면 12월, 늦어도 내년 상반기 중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당초 국토부는 12월 결과 발표를 예고했으나,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발표 시점이 다소 늦춰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실제로 전국 지자체들은 종합..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