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취재기록-63]그들만의 카르텔 깨고, 정점에 섰던 한 무용가의 춤 이야기

[10년간의 취재기록-63]그들만의 카르텔 깨고, 정점에 섰던 한 무용가의 춤 이야기

'이 사람을 주목하라'⑴…박영애 무애(無碍)무용단 대표
국립무용단 뛰쳐나온 박영애 무용가, “나만의 춤 정체성 찾고 싶었다”
고(故) 이매방 선생 제자 박영애, 경력단절 무용전공자들게 재능기부 레슨

  • 승인 2023-07-07 01:21
  • 수정 2023-07-07 09:32
  • 손도언 기자손도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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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애 무용가'…23년 국립무용단에서 활동한 그는 자신의 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우리나라 최고의 무용단을 뛰쳐 나왔다.
10년간의 취재 기록팀은 매월 국악계인 명창, 명인, 명무 중 가장 이슈가 됐던 인물을 선정해 인터뷰 하는 시간을 갖는다. 바로 '이 사람을 주목하라'다. 첫 번째 인물은 국악계에서 셋별처럼 떠오른 인물은 아니다.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오면서 스승에게 전수받은 가르침과 우리나라 '전통의 가치'를 지켜가는 무용가다. 박영애(무애(無碍)무용단 대표) 선생 얘기다. 박 선생은 지역의 한 대학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우리나라 최고의 무용수들이 모인 서울 '국립무용단'에 입단해 20여년 간 한국춤으로 관객들과 호흡했다. 지역의 이름없는 젊은 춤꾼이 현재 최고의 무용단인 국립무용단에 입단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 수준이라는 게 국악계의 설명이다. 중앙무대의 카르텔과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는 고단한 과정을 모두 견뎌내야만 최고의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날 수 있다는 얘기다. 국악계는 이런 경우를 이렇게 표현하곤 한다. 국악계는 국악 가문이거나, 아니면 천재 국악인이거나, 돈이 많거나 등이어야만 좋은 환경에서 춤을 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선생은 천재 국악인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시대의 신재효 라고 불리는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장은 박 선생의 춤을 자유로운 '한 마리의 나비'로 표현했을 정도다.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의 에너지와 손끝의 정교함, 그리고 춤의 섬세함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노 관장은 "얼마전 2023 음성 염계달 국제 판소리 축제에서 박영애 선생의 이매방류 살풀이 춤은 모두가 반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전통춤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한국무용의 경쟁력과 그리고 대중화, 세계화는 언제쯤 올 것인지에 대해 물어봤다. '내 길은 내가 간다'라는 그의 다짐처럼 그의 춤 세계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채 자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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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애 무용가'…그는 "우리의 전통춤은 성격과 성품, 행동, 습관 등 오랜 시간동안 삶 속에서 축적돼 나온 최고의 예술의 세계"라고 말했다.
◆일문일답



▶무용의 시작은?

"중학교 1학년때 무용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한 달 간 무용학원을 다닌 것이 무용과의 첫 인연이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간곳은 서양 무용학원인데, 처음에 발레로 시작했다. 그리고 고3 2학기 때, 한국무용으로 전공을 바꿔 김도희 선생님께 한국무용을 배웠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 발레단은 3개인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한국무용단은 17개정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무용을 전공한다면 어디든 입단할 수 있겠다 싶어서 한국무용을 선택한 것 같다. 운명이라기보다 눈치가 빨랐던 것 같다(웃음)"



▶지역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해 국내 최고의 무용단에 입단했다.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전공을 했다. 교사자격증을 따서 교직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다가 무용단 시험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서울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시험을 봤는데, 한 번에 합격했다. 지금 생각하면 기적같은 일이다. 지역 대학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무용단에 합격한 것이다. 운 좋게 한번에 최종적으로 통과했는데, 그때가 대학졸업 전인 1998년 12월 말이다."

▶얼마나 국립생활을 하셨나.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단원으로 정확히 23년이다. 2021년 12월31일까지였다."

▶최고의 직장인데, 왜 그만뒀나. 결정적 이유는?

"2009년에 고(故) 이매방 선생님(국가무형문화재 승무, 살풀이춤 보유자)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전통춤은 창작무용처럼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성격과 성품, 행동, 습관 등 오랜 시간동안 삶 속에서 축적돼 나온다. 국립무용단의 춤은 2013년부터 국립극장 시즌제의 도입으로 점차 외국무용, 현대무용이 국립무용단 레퍼토리로 공연되기 시작했고, 국립무용단의 춤은 신무용과 전통춤의 재창조라는 단체의 설립기조를 잃고 점점 현대무용으로 변화돼 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주말에는 전통춤을 추고, 평일에는 무용단 생활을 하다 보니, 전통춤 기량에 발전이 더딘 게 느껴졌다. 나의 춤에 대한 고민은 전통춤을 잘 추고자 함에 있었고 전통춤에 대한 깊은 정체성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춤(살풀이춤, 승무)을 올 곧게 전승하기 위해 과감하게 퇴사를 결정하게 됐다"

▶퇴사 이후, 현재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나.

"현재는 박영애 무애(無碍) 무용단을 운영하면서 전통 춤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또 (사)이매방 춤보존회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승무와 살풀이춤을 중심으로 이매방 선생님의 춤을 전승하고 있다. 그리고 경력단절 무용전공자들을 모집해서 다시 춤을 출 수 있도록 재교육을 돕고 있다. 재교육은 재능기부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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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애 무용가'…그는 "우리의 전통춤은 자신을 위로하고 달래주는 '치유'"라고 말했다.
▶박영애에게 '춤'은 무엇인가.

"저를 가장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기술이자, 자신을 위로하고 달래는 치유의 힘이고 제가 살아온 시간의 궤적 자체인 것 같다"

▶전통무용은 판소리와 관현악기 등보다 더 생소한 느낌이다.

"전통춤 대부분은 홀춤(혼자 추는 춤)이라고 생각한다. 오롯이 자신과의 싸움이다. 싸움은 평생동안 이어진다. 그래서 대중들이 나만의 춤을 몰라줘도 아쉽지가 않다. 나만의 춤을 추는 행위에 매우 만족하는 것 같다. 그래서 춤의 대중화가 더딘 것 아닐까 생각한다. 춤은 올바른 마음에서 시작된다. 바른 마음으로 오랜 시간(최소 10년 이상) 전통춤을 춰야만 춤 자체가 곱다. 결국 춤추는 것 자체가 다른 것을 잊게 한다. 다른 생각을 하면 춤에도 변형이 생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모든 전통무용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춤의 대중화를 위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춤을 교육하면 춤 자체가 단순해지고, 춤의 기교가 사라진다. 물론,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또 직업무용단의 역할도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나라 직업무용단의 무용수들은 각 대학에서 키워진 우수한 인재들이 입단하고, 각각의 기량은 매우 뛰어난 데 비해 안무가 지나지게 획일적이어서 무용수 개개인의 만족도와 춤 기량을 펼쳐보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 무용수이기 이전에 개인의 역량과 개성을 존중하면서 작품을 안무하고 지도한다면 무용수들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지도자에 대한 호감은 물론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신뢰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는 곧 직업무용단의 공익활동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뛰어난 기량과 수준 높은 작품으로 무대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춤출 수 있는 공연환경을 만든다면 시민들에게 춤과 공연작품이 각인되고, 감동을 선사함으로서 '다시보고 싶은 우리춤'으로 공연장을 찾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직업무용단의 공연 활동이 시민의 문화 향유와 전통춤 대중화를 위해 중요하고, 그 구성원(무용수)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춤출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전통무용의 대중화와 세계화는 언제쯤이라고 보나.

"다른 사람의 춤을 인정하고 함께한다면 대중화와 세계화는 올 것이다. 정말, 전통 춤을 추구하는 춤꾼들과 전통무용의 복합 예술적 재미와 다양성을 이끌어 내는 사람들(직업무용단, 콘텐츠 개발자)이 철저하게 분업화가 돼 함께 전문성을 발휘한다면 대중화와 세계화는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전통춤 교육이 국악교육과 함께 학교교육 시스템으로 들어간다면 대중화와 세계화는 더 앞당겨 질 것이다."

▶무용만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무용의 경쟁력은 '치유'라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스트레칭과 등산, 걷기, 달리기 등의 움직임으로도 기분이 한결 좋아질 수도 있지만 무용은 나와 내 정신이 솔직하게 마주하는 시간이다. 몸과 마음(정신)의 일체를 실현하고 더 나아가 호흡이 원활해진다면 카타르시스를 느껴 더 없는 신체적, 정신적 만족을 체험하게 된다. 또 정서적 만족 이외에 신체로 표현되는 아름다움은 그 어떠한 미적인 부분을 흉내 낼 수 없을 것이다. 미래세대 AI와 로봇이 생활, 산업구조를 변화 시킬 때, 인간의 몸과 감성으로 추어지는 무용은 결코 로봇과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분야일 것이다."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나.

"무용예술계에서 앞으로 10여년 치열하게 열심히 살고 60세 이후에는 작은 소망이지만 자연을 벗 삼은 연습실에서 동료들과 후배,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춤을 통해 인생을 가꾸는 삶을 살고 싶다"

▶후배(전통무용)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최근 전통무용을 전공하는 후배들과 젊은 세대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무용 전공자라면 전공과 상관없이 반드시 우리의 전통춤을 최소 3년이상 추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의 전통춤은 구전심수(口傳心授·말로 전하고 마음으로 가르친다)로 전해지는 전통예술 영역이다. 그래서 마음이 좋은 스승, 춤 잘 추는 스승, 개인의 환경에 따라 춤의 기교나 색깔이 크게 차이가 난다."

▶끝으로 한마디?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전통춤을 감상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길 기대한다.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잘 추는 한국무용이 '우리의 전통춤 이구나'가 아니라 무용가들이 녹여내는 삶(춤)에 대한 진실성, 진정성을 감상할 수 있는 관객들이 많았으면 한다."
손도언 기자 k-55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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