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우리도 이런 사람으로 살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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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우리도 이런 사람으로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 승인 2023-08-1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일요일 오후 도솔산의 솔향이 그리워 산책길을 나섰다. 솔향 향긋한 소나무 숲 중간 중간에는 상설된 운동기구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려는 몸부림들이라 예서제서 야단법석이었다.

매달리고, 돌리고, 비틀고, 밀고, 당기고 뛰는 모습들이 우리 삶의 축소판인 듯도 싶었다.

어쩌면 건강하게 살려는 인간 본능의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건강은 역시 남녀노소 없이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 0순위에 해당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싱그러운 오솔길 솔향을 음미하며 한참을 걸었다. 소나무 갈참나무 그늘 밑엔 가지런히 마주한 길쭉한 의자 두 개가 있었다. 거기엔 약속이라도 한 듯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세상사 이야기들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입담 좋은 할머니 한 분이 출가한 딸 자매가 해외 관광 여행 시켜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언성이 즐겁고 흥이 나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신바람이 나 있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할머니 자랑이 끝나자 또 다른 할머니 한 분이 3대독자로 애지중지 키운 당신아들 얘기를 하시는 거였다. 아들 며느리는 맞벌이 부부로 서울서 직장생활을 한다고 했다. 어느 날 손자 하나 있는 게 그렇게 보고 싶어, 열무김치며 오이김치랑 간식거리 봉지 위에 삼대독자 먹일 보약 한 제도 챙겨 놓았다. 배낭에 여백이 있었는지 손수 만든 매실효소 한 병도 함께 자릴 하고 있었다. 가방이 무겁기는 했지만 보고픈 손자 생각에서 그랬는지 발걸음을 서둘러 아들 집으로 재촉했다고 했다.

살고 있는 아파트는 어떻게 물어물어 찾았는데, 집에 아무도 없어 경비실에다 맡기고 왔다는 얘기였다. 아파트 현관 키 비밀번호만 알려줬더라도 짐 보따리 아들집에 들여놓고 오는 건데, 그냥 왔다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말하는 어조로 보아 며느리가 무척이나 원망스럽고 미웠던 거 같았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할머니 한 분이 조용조용히 말을 꺼냈다. 산수(傘壽)쯤 돼 보이는 노파였는데, 그냥 앉아있는 자리가 편치 않았던 게 분명했다. 얘기 핵심은 매달 용돈 보내주는 아들 며느리 자랑이었다. 돈 잘 버는 아들 부부가 매달 용돈을 50만원씩이나 보낸다며 자랑스러운 표정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주변에서 하는 얘기를 다 듣고 있던 고희(古稀)쯤 돼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았다.

얘기는 다름 아닌 큰아들 작은아들 집에 갔다가 온 이야기였다.

할머니는 큰며느리 집에 갔다가 가슴 따뜻한 며느리의 마음을 보고 왔다고 했다.

아파트 현관문의 비밀번호가 할머니 댁 당신네 집하고 다르지 않고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뒷동에 살고 있는 작은아들 집 아파트도 가보았더니 그 집도 현관문 비밀 번호가 당신네 집하고 똑같이 해놓았더라는 거였다.

할머니가 오실 때 언제라도 자유롭게 문을 열고오시라는 뜻인 셈이었다. 할머니는, 아들 며느리 부부가 너무나 고맙고 애착이 갔다고 말씀하셨다. 현대는 워낙 외울 게 많은 세상이어서 연세 많은 할머니께서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하고 헤매는 것을 걱정하는 자식들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으리라.

말을 마친 후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노파는 그 어떤 할머니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자식들이 할머니께 해외여행 시켜드린 다거나 용돈 드린 얘기는 없었지만 그 어떤 할머니보다도 행복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두 아들의 아파트 현관문 비밀번호가 당신네 집의 거와 같은 할머니는 가장 흐뭇한 표정으로 행복해 하고 있었다.

딸이 해외 관광을 시켜줬다는 할머니보다도 표정이 밝게 웃고 계셨다.

아니, 아들이 용돈을 많이 준다던 또 다른 할머니보다도 더 환한 얼굴이었다.

아파트 현관문 비밀번호!

우리는 어떤 번호로 살고 있는가?

시모 댁 현관문 비밀번호와 우리 집 번호를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

아니면, 상관없이 되는 대로 사는 것이 좋은 것일까 ?

사소한 배려가 사람의 마음을, 든든하게도, 흐뭇하게도 하는 거라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겠는가?

우스갯소리겠지만, 영어로 된 어려운 아파트 이름이어야 시어마니가 찾아오지 못한다고, 그런 아파트에 사는 며느리들 얘기가 제발제발 낭설이요,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시어머니가 언제 가더라도 마음 놓고 문을 열 수 있게 해 놓는 그런 며느리의 마음으로 살면 사랑받고 사는 며느리가 되지 않을까?

아파트 현관문 키 비밀번호가 고부간에 같은 집! 그건 아들의 마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슬기로운 며느리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어느 자식 누구에게 물어봐도 부모님께 효도해야지, 불효해야 한다는 자식은 그 아무도 없다.

허나, 정작 사는 모습은 그렇지 않다. 부모님들이 좋아하는 삶보다는 아쉬움이 많은 세상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위 일화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부모님한테 해외여행도 시켜드리고 용돈도 드리는 효도를 하고 있는가?

게다가 아파트 현관문 키 번호까지 같게 하는 효를 하고 있는가?

이 어느 것도 아니라면, 생각지도 못한 무지몽매 속에서 헤매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고부간 두 집의 아파트 현관문 키 번호가 같게 사는 것 !

정작, 우리 이런 사람으로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남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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