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두 집의 옻순과 머위가 어머닐 그립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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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두 집의 옻순과 머위가 어머닐 그립게 합니다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 승인 2023-09-01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5월이라 그런지 산과 들이 온통 신록의 물결로 파도가 일고 있었다.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파도를 보노라니 어렸을 적 생각이 났다. 뻐꾹새 울음소리를 들어가며 밭둑에 앉아 쑥도 뜯고, 머위도 채취하던 그 때 그 시절이 떠올랐다. 옻순과 머위가 제철인, 요즘 같은 때에는 으레껏 밥상엔 어머니 솜씨가 들어간 머위 무침과 옻순이 올랐고, 밥상 한 편엔 옻순을 찍어 먹을 초고추장이 놓여 있었다. 태생이 농촌이라 그런지 나는 나물국 중에도 쑥국과 아욱국을 좋아했다. 그리고 유달리 쓴 나물을 좋아하여 어머니 음식 솜씨가 묻어나는 씀바귀 무침, 머위 무침을 즐겨 먹었다. 식성은 변한다는데 웬일인지 지금까지 나한테는 변한 게 그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지금 이 나이에도 내 어렸을 적 어머니가 해 주셨던 옻순과 머위 무침을 좋아하고 있으니 말이다.

모임 총무한테서 전화가 왔다. 옻순이 제철이라 옻순을 먹자는 얘기였다. 지인 A퇴임교사가 옻순을 가져오기로 했으니, 다음 주 월요일은 시간을 비워 놓으라는 얘기였다. 흔쾌히 그러자고 약속을 했다. 옻순을 먹기로 한 날짜가 돌아왔다. 헌대, 갑자기 어딜 갔다 와야 할 일이 생겼다. 고민을 하다 모임에 못 가겠다고 전화를 했다. 그 좋아하는 옻순 생각이 간절했지만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이틀이 지났다. 세종서 사시는 서옥현 선생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마침 옻순 철에, 옻순을 좋아하는 내가 생각나서, 서 선생님 형님께서 재배하시는 옻나무 옻순을 좀 따왔다는 거였다. 서 선생님 저녁 모임이 유성서 있었는데 나한테 옻순 주시려고 일부러 시내버스를 타고 갈마동까지 행차하신 거였다. 고맙기 그지없었다.



검정비닐 봉지 속에 들어 있는 옻순을 많이도 가지고 오셨다. 검정 비닐봉지 속에는 나를 생각하는 서 선생님의 정성과 사랑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옻순과 머위가 눈시울을 붉히게 하고 있었다. 인근에 옻순 좋아하는 용복 형님이 계시기에 절반 정도를 비닐봉지에 담아 갖다 드렸다.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이렇게도 행복감을 갖게 하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무르녹이고 뭉클하게 하게 하는 것은 따로 없는 게 틀림없었다.

또 며칠이 지나고, 외출로 집에 없는, 오후 6시 가까운 시각에 셋째 동생 제수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우리 형제들이 태어난 시골 고향 마을에서 농사일로 소일하고 있는 셋째 동생(행정공무원 퇴직) 부부가 대전 우리 집을 향하고 있다는 거였다. 내가 좋아하는 머위와 옻순을 싣고서, 동생은 운전을 하고 조수석엔 제수씨가 말벗이 돼 우리 집을 오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 집엔 내가 좋아하는 머위와 옻순이 봇물을 이루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생존해 계실 때, 나는 옻순과 머위를 좋아했기에 제철엔 머위 무침과 옻순이 매일 밥상에 오르다시피 했다. 두 집에서 가져온 옻순과 머위를 바라보니 어머니 생각이 간절했다.

서옥현 선생님과 셋째 동생 부부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정성과 사랑을 가져왔다. 풋풋한 옻순과 머위 봉지에 그 정성과 사랑을 포장하여 묶고 싸매고 해서 들고 온 것이었다.

순간 울컥하는 행복감이 만들어내는 그 귀한 액체가 볼을 적시고 있었다. 불현듯 내 어렸을 적 머위 무침을 해 주셨던 어머니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 나타났다.

약속이라도 한 듯 머위와 옻순으로, 어머니와 같이 했던 그 시절 어머니의 이런 저런 영상이 주마등 같이 스쳐가며 날 어렵게 하고 있었다. 꽁보리밥에 푸성귀가 더 많던 그 시절, 어머니 진지 그릇은 먹다 남은 찬 밥 덩어리, 내 중학교 입학시험 전날엔 목욕재계하시고, 장독대에 정화수 한 그릇, 쌀 한 대접 놓으시고 손이 닳도록 비시던 우리 어머니!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고 서슴지 않으셨던 모성애의 표본,

몸빼바지 사철 입고, 콩밭, 고추밭, 깨밭, 마늘밭 매는 호미질로,

지문이 다 닳아 보이지 않았던 우리 어머니!

못이 박힌 앙마딘 그 손가락이 선하여 날 울립니다.

농사일로 검게 탄 그 얼굴 !

고된 괭이질 호미질로, 군살이 돋고 못이 박힌 손가락,

봄여름, 가을겨울, 가리지 않고 입으시던 당신의 몸빼바지 !

아, 그 어느 것도 버릴 것 하나 없는 당신의 훈장감이셨습니다.

세상에서 어떤 훈장보다 값진, 자식과 가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5월 8일 어버이날,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이제 철이 조금 들었는지 가슴이 미어지고 아파옵니다.

못 살던 그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꽁보리밥, 머위 무침, 열무김치에, 옻순, 초고추장 찍어 들던 그 때가 좋았습니다. 다소곳한 정이, 사랑이 있던 그 시절이 사뭇 그리워집니다. 밥 먹다 형, 동생 다툰다고 울 엄니 아빠한테 혼나던 그 시절을 잊지 못하는 건 왜일까요?

두 집에서 가져온 옻 순과 머위 무침을 번갈아 입에 물어 보지만, 깨물지도 못하고 울컥합니다.

어머니 생각에 미어지는 마음, 그리는 마음으로 어렸을 적 어머니를 떠올려 봅니다.

가엾음에 사무치는 마음이었던지 정인보님의 < 자모사 > 한 편이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히 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되고 말아라.

두 집의 옻순과 머위가 어머닐 그립게 합니다.

옻순과 머위로 우리 어머니 사랑을 그리며 살 수 있다면… 평생 부디 부디, 이 옻순 머위를 입에 달고, 살게 하소서.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남상선
남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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